[이데일리 김혜선 기자] 지난달 9일 쿠르스크 지역에서 생포된 북한군 포로가 대한민국에 귀화하고 싶다는 심경을 밝혔다. 이들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투입된다는 사실을 모른 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훈련을 받았으며, 두 달 만에 전쟁터에 투입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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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씨와 백씨는 모두 외아들로 기존에 알려진 ‘폭풍군단’ 소속이 아닌 ‘정찰총국’ 소속 병사라고 했다. 올해 26세인 리씨는 2015년에 입대해 제대할 나이지만, 쿠르스크 지역으로 파병돼 동료 북한군을 모두 잃고 홀로 포로로 잡혔다. 지난해 7월 자강도 홍수 피해 복구 지원에 나섰던 리씨는 자대에 복귀했다가 ‘유학생으로 훈련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난 10월 러시아로 왔다고 한다. 리씨는 “유학생으로 훈련한다고 (러시아에 왔다)”며 “전투에 참가할 줄은 몰랐다”고 했다.
리씨는 자신이 포로로 잡히게 된 경위를 상세히 밝혔다. 그는 “1월 5일부터 전투에 참가했다. 먼저 앞장선 단위(부대)들이 모두 희생됐다”며 “무긴기와 포 사격 때문에 많이 희생됐다. 러시아에서 포 사격을 제대로 안 해줘서 무모한 희생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당시 리씨는 세 명과 ‘배후 타격조’로 투입됐다고 한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매복군에 걸렸고, 조장과 후임병이 총에 맞아 쓰러졌다. 리씨도 총에 맞아 필사적으로 은폐하다가 정신을 잃었다. 리씨가 다시 정신을 찾았을 때는 한밤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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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홀로 탈출하던 리씨는 결국 포로로 잡혔다. 그는 “당시에는 내가 팔도 못 쓰고 방탄복에 수류탄이고 칼이고 무장이 하나도 없었다”며 “내가 부상을 당했으니까 무거운 거를 못 들고 다니니까, 그런 상태에서 반항을 해도 내가 잡히는 건 분명하고. 혹시 수류탄이라도 있었으면 내가 자폭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자폭 지시를 받았느냐’는 질문에는 “인민군 안에서 포로는 변절이나 같다”고 답했다.
외아들로 평양에서 살던 리씨는 지난 10년간 군복무를 하며 단 한번도 부모님 얼굴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전화상으로는 이야기를 많이 해 봤는데 부모님은 한 번도 못 만났다”며 “솔직히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는 중환자다. 내가 포로가 된 것이 알려지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평양에 있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리씨는 “부모님이 못 견디게 보고 싶다”면서도 향후 계획에 대해서는 한참을 망설이다 “우선은 난민 신청을 해 가지고 대한민국에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기자에게 “내가 난민 신청을 하면 받아줄까요?”라고 묻기도 했다.
부내 내 북한 정보기관인 보위부 인사들이 ‘사상 통제’를 한다고도 전했다. 리씨는 “내가 전투하기 이전에 하는 말이 (우크라이나군) 무인기 조종사들 말입니다, 그 무인기 조종사들이 몽땅 다 대한민국 군인이라고 그러더라고요”라고 했다. 북한 보위부가 ‘한국 군인과 싸움을 한다’는 거짓말로 병사들의 적개심을 키우고 있다는 얘기다.
리씨는 “제대 후 공부해서 대학을 다니려 했다”며 “인간으로서 체험해 볼 수 있는 악조건을 다 체험한 것 같다. 나도 부모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내 꿈을 이뤄보고 싶다. 나는 아직 나이가 젊다”고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