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위원 리뷰
서울시발레단 ''대나무 숲에서''
강효형 안무 세계 집약한 무대
발레에 한국적 미감 더해
[한지영 무용평론가] 대나무는 거센 바람에도 쉽게 꺾이지 않는다. 강효형 안무가가 서울시발레단 신작 ‘대나무 숲에서’(In the Bamboo Forest·5월 15~17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를 통해 주목한 것도 흔들림이 곧 약함이 아니며, 비어 있음이 결핍이 아니라는 대나무의 철학이다.
 | | 서울시발레단 ‘대나무 숲에서’(사진=세종문화회관). |
|
서울시발레단 창단 당시부터 섭외 0순위였다는 강효형은 2017년 무용계 최고 권위의 ‘브누아 드 라 당스’ 안무가 부문 후보에 올랐고, 2024년 워싱턴 케네디센터와 파리올림픽 갈라 무대에서 기립박수를 받았다. 그는 한국적 감각을 작품의 움직임 속에 녹여내며 자신만의 안무 세계를 구축해온 안무가다.
‘대나무 숲에서’는 2009년부터 국립발레단 무용수로 활약한 강효형이 그 여정을 마무리하고 안무가로서 본격적인 행보를 선언하는 작품이다. 동시에 2015년 첫 안무작 이후 10년간 이어온 예술적 탐구가 집약된 결과물이기도 하다.
회색빛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은 남성이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프롤로그가 시작된다. 혼란을 품은 이 인물은 대나무 숲에 들어서고, 흔들리고 비워지며 정화에 이르는 여정의 중심에 선다. 2장 ‘죽(竹)’에서는 높게 솟은 대나무를 중심으로 5명의 여성 무용수들이 수직과 수평의 형태를 만들어낸다. 빠르고 올곧게 뻗어내는 하체의 에너지, 바람에 너울대는 폴드브라(port de bras·팔 동작), 대나무 숲처럼 빼곡한 군무의 전경이 펼쳐진다. 이때 무용수들은 대나무를 통과하는 바람이자, 동시에 나무의 단단한 뿌리 그 자체다.
 | | 서울시발레단 ‘대나무 숲에서’(사진=세종문화회관). |
|
3장 ‘비움’과 4장 ‘뿌리내림 그리고 성장’에서는 강효형 특유의 안무 스타일이 두드러진다. 줄곧 고수해온 포인트 슈즈를 벗어 맨발이 바닥을 딛는 순간, 누드톤 의상 위로 근육의 결이 도드라지고 몸은 날것에 가까운 존재로 드러난다.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가 툭 놓아버리는 호흡, 중심에서 단단히 뭉쳤다가 한동안 풀어내는 이완은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원초적인 몸의 언어가 된다. 한국 춤의 원리인 정중동(고요함 속의 움직임)과 좌우새(좌우의 균형과 흐름)가 포즈 사이사이 스며들며 발레에 새로운 생동감을 더한다.
박다울의 음악은 이 여정의 뼈대를 함께 구성한다. 그의 음악은 타격감 있는 리듬을 바탕으로 점차 고조되며 긴장감을 쌓아간다. ‘툭’, ‘탁’, ‘퉁’의 건조한 타격음이 공간을 채우고, 현의 마찰음과 잔향이 그 위에 겹쳐지며 더욱 풍부한 음향을 만들어낸다. 호흡감 있는 리듬의 반복은 매번 조금씩 다른 밀도로 이어지며 몸의 긴장과 이완을 조율한다. 음악은 무용수의 호흡과 움직임에 긴밀하게 맞물리며, 소리와 몸이 하나의 감각으로 전달되도록 한다.
컨템포러리(Contemporary)란, 전위의 다른 말이 아니다. 동시대의 사유를 담은 작가의 언어가 곧 장르가 되는 것. 이 작품에서 그 언어는 한국적 미감이다. 비어 있으되 꺾이지 않는 대나무의 철학, 풀업(pull-up·몸을 위로 끌어올리는 발레의 기본 원리)에 반하는 깊고 큰 호흡이 그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포인트 슈즈의 정밀함과 남녀 무용수 사이의 다채로운 파드되(2인무)가 포개진다.
이는 발레의 정체성을 끝까지 놓지 않는 안무 철학이자, 강효형이 국립발레단에서 쌓아온 움직임의 기반이다. ‘대나무 숲에서’는 한국적 미감과 발레적 언어가 필연적으로 만나 빚어낸 성과라 할 만하다.
 | | 서울시발레단 ‘대나무 숲에서’(사진=세종문화회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