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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출신의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이 최근 발간한 책 ‘대통령 탄핵 보고서’에 따르면, 박근혜는 1963년부터 1979년까지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서 생활했다. 1974년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사망한 후에는 퍼스트레이디 역할도 했다. 1979년 아버지의 사망으로 청와대를 떠난 박근혜는 1997년 정계에 복귀하기까지 잊힌 존재로 살았다. 이 시기에 최태민과 그의 딸 최순실은 박근혜를 도왔고, 최순실은 박근혜와 자매처럼 가까운 사이가 됐다.
박근혜는 1998년 국회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해 2012년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51.55%를 득표하며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과반 득표로 당선됐다. 그러나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의 7시간 행적 의혹과 2016년 최순실의 국정 개입 사실이 드러나면서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급격히 하락했다.
2016년 7월 이화여대가 ‘미래라이프대학’이라는 단과대학 설립을 추진하자 학생들의 반발이 일어났고, 이 과정에서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이화여대에 부정 입학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같은 해 10월 24일 최순실의 태블릿 PC가 언론에 공개되면서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의 설립과 운영 과정에서 최순실이 깊이 관여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진정성 없는 사과와 국민적 분노…결국 탄핵소추
최순실 게이트가 폭로된 다음 날인 10월 25일 박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그러나 이 사과는 최순실의 국정 개입 기간과 내용이 객관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아 진정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통령의 신속한 사과에도 불구하고 사태는 진정되지 않았고, 10월 26일부터 대학가의 시국선언이 이어졌으며, 10월 29일부터는 전국 각지에서 대통령 퇴진 시위가 열렸다.
11월 4일 두 번째 사과에서 박 대통령은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라며 특별검사의 수사까지 받겠다고 약속했지만 촛불은 잦아들지 않았다. 11월 14일 더불어민주당은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당론을 확정했고, 11월 17일 국회는 ‘국정농단특검법’을 통과시켰다.
11월 29일 3차 대국민 담화에서 박 대통령은 임기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고 했으나, 이를 탄핵을 피하기 위한 꼼수로 본 야당은 탄핵을 계속 추진했다. 12월 3일 탄핵소추안이 발의됐고, 12월 9일 국회는 재적의원 300명 중 234명의 찬성으로 탄핵소추를 의결했다. 당시 여론조사에서도 탄핵 찬성 81%, 반대 14%로 국민적 지지가 압도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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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박 대통령 탄핵의 사유로 헌법위반 5가지, 법률위반 8가지를 제시했다. 이후 헌법재판소는 2016년 12월 22일부터 2017년 2월 27일까지 17번의 변론기일을 통해 탄핵심판을 진행했다.
헌법재판소는 2017년 3월 10일 “피청구인 박근혜를 파면한다”라는 주문을 선고했다. 헌재가 인정한 위반 사항은 크게 3가지였다. 첫째, 공익실현 의무 위반으로, 박 대통령이 최순실이 추천한 인사를 공직에 임명하고,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설립 과정에서 사기업들에게 출연을 강요했으며, 최순실이 두 재단을 실질적으로 장악하도록 했다는 점이다. 둘째, 기업의 자유와 재산권을 침해한 점으로, 대기업들에게 재단 출연을 강요하고 롯데그룹, 현대차(005380), KT(030200), 포스코(POSCO홀딩스(005490)) 등에 최순실 관련 인물 채용이나 계약 체결을 요구한 것이다. 셋째, 국가공무원법상 비밀엄수 의무를 위반한 점으로, 정호성 청와대 비서관을 통해 최순실에게 대통령의 일정, 외교, 인사, 정책 등에 관한 문건을 유출한 것이다.
헌재는 “박 대통령의 위반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행위로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행위”라며 “국민으로부터 직접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대통령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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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욱 전 처장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의미를 ‘권력의 사유화’ 문제로 분석했다. 대통령이 권력을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한 공적 목적이 아닌, 자신과 측근의 이익을 위해 사용한 것이 핵심 문제였다는 것이다. 이는 헌법 제1조 제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공화국 원리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공화국은 집권자나 집권층의 부분적 이익이 아닌 국민 전체의 공적 이익을 추구하는 국가여야 하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에서 헌재가 제시한 탄핵의 두 가지 중대성 기준인 ‘헌법 수호 관점’과 ‘국민 신임을 저버린 관점’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에도 적용됐다. 헌재는 박 대통령의 행위가 단순한 정책 실패나 일시적 판단 오류가 아니라, 취임 이후 3년 이상 지속된 체계적인 헌법 위반이었다고 판단했다.
또한 박 대통령 탄핵은 대중적 탄핵의 성격이 강했다. 2016년 10월 29일부터 주말마다 열린 촛불집회에는 100만명이 넘는 인원이 모인 집회가 5번, 200만명 내외가 모인 집회가 2번일 정도로 강력한 국민적 분노와 퇴진 요구가 있었다. 이는 스캔들도 없고 탄핵에 대한 국민적 합의나 지지도 없었던 노무현 대통령 탄핵과는 확연히 다른 양상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민주화 이후 최초로 파면으로 이어진 대통령 탄핵 사례로, 대통령이 자신의 측근을 위해 국가 권력을 사유화할 경우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중요한 헌정사적 교훈을 남겼다.
*이어서 마지막으로 김진욱 전 공수처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에 대한 전망을 들어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