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문화대상 이 작품]피터팬이 말한다, 출생은 강제 해결할 수 없다고

김보영 기자I 2025.02.04 06:00:00

제12회 이데일리 문화대상 심사위원 리뷰
연극 ''네버랜드''
루마니아 출산 강제 정책 배경, 공론의 장 마련

[황승경 연극평론가] 올해 입학하는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 32만 7266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가운데, 2027년에는 30만 명 선마저 무너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정부가 저출생·고령화 문제 해결을 위해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19년간 투입한 예산이 430조 원. 올해도 저출생 위기 극복을 위해 총력전을 펼치는 상황에서 연극 ‘네버랜드’(1월 10일~26일, 한성아트홀 제2관)는 우리에게 큰 담론의 장을 안긴다.

(사진=김정우)
‘네버랜드’는 불가리아 국경마을 루셰의 70대 자선사업가 안드레이 도프가 병상에서 처참히 살해당하는 장면으로 출발한다. 이 가운데 3명의 루마니아인이 등장한다. 안드레이의 입양 딸 테사(선유림, 권영은 분), 도프의 간병인으로 루마니아 거리의 부랑자 출신 벨(조희수, 오시후 분), 테사와 같은 고아원 출신에 현재는 루셰의 지역경찰로 근무 중인 페터(송민규, 문병설 분)가 주인공이다. 평소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던 지역유지의 살인사건이기에 언론은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집중 보도한다.

네버랜드는 아이들이 영원히 아이로 살아갈 수 있는 상상의 세계로 매튜 베리(1860~1937)의 희곡 및 소설 ‘피터팬’에 등장한 배경이다. 이 동화 속 주인공 피터팬과 아이들은 꿈과 재미로 가득한 환상의 나라 네버랜드에서 자라지 않고 영원히 아이인 채로 산다. 이는 시간이 흘러도 아이들이 영원히 네버랜드를 벗어날 수 없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연극 속 피터와 벨은 동화 속 피터팬과 팅커벨을 연상케 하는 인물들이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이들은 어린 시절 자신들만의 판타지 네버랜드를 구축해 위안을 얻었다. 삶의 이유이자 희망이던 네버랜드가 파괴되자, 이들은 성장하지 못하고 네버랜드의 족쇄에 영영 갇혀 버린다.

24년간 루마니아를 집권한 차우셰스쿠 정부는 법령 770호를 공표해 40세 이하 여성에게 아이 4명 이상을 강제로 낳게 했다. 할당된 아이 수를 못 채우면 무거운 세금을 부과했다. 반면 당시 교육, 의료, 주거, 복지 정책은 열악해 아이를 잘 키울 환경이 되지 못했다. 부유층은 여러 경로로 교묘히 법망을 피했고, 생계가 열악한 가정은 원치 않게 낳은 아이를 방치하거나 학대했다. 보호시설에 버려진 아이들은 정체성에 혼란을 느껴 탈선을 일삼았다. 그 결과 국가경쟁률은 날개 없이 추락하며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피터, 테사, 벨 세 주인공은 법령 770호 시기 태어난 ‘법령 세대’ 아이들이었다.

30년 후, 안드레이의 살인사건을 계기로 폐가처럼 방치된 ‘네버랜드’에 세 명의 인물이 모인다. 테사는 차우셰스쿠 출산정책 실행자였던 양아버지 안드레이의 과오가 영원히 덮어지길 원한다. 피터는 안드레이를 사냥하고자 했고 벨은 안드레이의 만행을 낱낱이 세상에 폭로하려 했다. 옥신각신하던 이들에게서 총소리가 울린다. 서로에게 방아쇠를 당겨야 하는 이 비극은 어디서 출발했는가.

정체된 무대를 보는 관객의 자아도 과거로부터 탄생한 새로운 가능성을 가진 미래의 유령처럼 요동친다. 세밀한 무대, 배우들의 탄탄한 앙상블이 인간의 잔인한 본성을 예술적 탄력성으로 표출하고, 비극적 운명의 외면적 악몽을 중층적으로 되짚는다.

우리나라의 저출산 현실에도 여러 결의 맥락이 존재한다. ‘네버랜드’는 그런 점에서 미래를 바라보는 창과 공론의 장을 마련한다. 경험없이 머리로 습득한 냉철한 지식이 몸과 가슴으로 체득한 문화를 이길 순 없다. 반문명성의 경계(境界·사물을 어떤 기준에 따라 구별하는 한계)와 문명적 경계(警戒·잘못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미리 조심하는 것)를 담은 작품이다.

(사진=김정우)
(사진=김정우)
(사진=김정우)
황승경 연극평론가.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