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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금' 씨가 말랐다…'금' 쓸어담는 미국

양지윤 기자I 2025.02.19 05:30:00

영란은행 금 재고 갈수록 줄고, 미국은 늘고
트럼프 관세위협에 안전자산 금 수요 폭발
월가 '대서양 횡단 골드러시'에 특급 수송작전
뉴욕 금값, 트럼프 프리미엄 당분간 이어질 듯

[이데일리 양지윤 기자] 영국 금융가 밀집지역이자 영란은행이 터를 잡고 있는 시티오브런던의 스레드니들 거리 지하의 금고에서는 지난달 금 151.41톤이 빠져나갔다. 이는 런던 금시장협회가 지난 2016년 집계를 작성한 시작한 이래 월간 기준 최대 감소폭이다.

최근 미국 뉴욕의 금값이 들썩거리며 전 세계가 긴장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 이후 트럼프발(發) 무역 전쟁과 이로 인한 세계 경제 타격에 대한 우려로 안전자산인 금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어서다. 이에 월가 은행들이 상대적으로 금값이 싼 영국과 스위스 등에서 미국으로 금괴를 대거 운반하면서 이른바 ‘대서양 횡단 골드러시’도 거세지는 모습이다. 시장에선 금 재고 부족과 인출 지연이 심화하며 당분간 금 값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美 금 수요 폭발에 英 1월 재고 감소폭 최대

17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금시장협회(LBMA)가 집계한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1월 영국의 금 유출 규모는 140억달러어치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작년 12월에 견줘 1.7% 감소한 수준이다.

이와 반대로 미국의 금 보유량은 늘고 있다. 미국 시카고파생상품거래소그룹(CME Group) 산하 금속선물거래소 코멕스(COMEX)가 1월 말 현재 보유한 금 현물 규모는 927.92톤으로, 2022년 8월 이후 최대치로 추산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 대선이 있었던 지난해 11월 말 이후 뉴욕의 금 재고는 578.56톤이 증가한 것으로 파악된다.

미국과 영국의 금 재고량이 엇갈린 흐름을 보이고 있는 이유는 뉴욕과 런던의 금값 차이가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오후 9시40분 기준 미국 뉴욕상업거래소(COMEX·코멕스)에서 4월 인도분 금 선물 가격은 전 거래일보다 20.40달러(0.7%) 오른 온즈당 2921.10달러에 거래됐다. 금 선물 가격은 지난해 27% 오른 데 이어 올 들어서도 10% 더 오르는 등 가파른 상승세다. 특히 지난 11일에는 온즈당 2968.50달러까지 오르며 3000달러 진입을 코앞에 뒀다. 반면 이날 런던의 금 가격은 2900.55달러로 뉴욕 금값보다 20달러 이상 낮은 수준을 보이며 비정상적인 가격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산 제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결과로 분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따른 경제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로 미국 내에서 안전자산인 금을 찾는 수요가 계속 늘어나면서 코멕스에서 거래되는 금 가격에 이른바 ‘트럼프 관세 프리미엄’이 붙고 있는 것이다.

이에 월가 은행들은 뉴욕과 런던의 금값 차익을 노리고 런던 금융가 지하에 보관된 금을 실어 나르는 이른바 ‘금괴 수송 작전’에 나서고 있다. 영국은 세계 최대 금 거래 중심지로, 영란은행과 금융사 밀집 지역인 런던 스레들니들 거리 지하에는 8000억달러어치 이상의 금이 보관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과 런던에 본사를 둔 HSBC 은행이 이런 움직임을 주도하고 있으며 다른 월가 은행들과 헤지펀드도 동참해 런던과 스위스 금고에 보관된 금을 꺼내 뉴욕으로 옮기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JP모건이 이달에만 40억달러어치 금을 뉴욕으로 운송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들은 런던 외에도 일부는 스위스 정제소에서 뉴욕 선물 계약 기준에 맞춰 재가공한 뒤 들여오고 있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트럼프 관세위협에 美 금 블랙홀…고공행진

미국이 세계 금 시장의 블랙홀로 떠오르면서 이런저런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금괴를 뉴욕으로 옮기려는 수요가 몰리면서 영란은행 지하 금고에서 금을 꺼내는 데 4~8주가 걸리는 등 대기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이에 금 대여 금리도 급등해 일부 투자자들은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인도에선 1월 금 대여 금리가 전달보다 두 배로 오르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것은 물론 금 품귀 현상으로 주얼리 업체들도 생산비 상승 압박을 받고 있는 형국이다.

일각에서는 영국에서 금 인출에 최대 두 달 정도가 소요되면서 금고에 실물 금이 없는 것 아니냐는 음모론마저 나오고 있다. 이날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이자 정부효율부(DOGE)의 수장인 일론 머스크도 미국 정부가 보유한 금 보유고에 대한 조사를 시사하면서 이 같은 음모론에 불을 지폈다.

금 값이 고공행진하는 가운데 각종 잡음이 일고 있지만, 올해 세계 금 거래량과 총 거래금액 등도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울 것으로 보인다. 세계금협회(WGC)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금 거래량(장외거래 포함)은 총 4974톤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4분기 거래만 전년 동기 대비 1% 증가해 분기 최고치를 경신했다. 금 총 거래금액도 작년 4분기에만 1110억 달러, 연간으로는 3820억달러에 달했다. 이 역시 사상 최고치였다.

올해의 역시 글로벌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 증가로 각국 중앙은행과 금 상장지수펀드(ETF) 투자자들이 금을 위험 헤지 수단으로 삼으면서 수요를 견인할 것으로 금협회는 내다봤다. 이에 금 장신구에 대한 가격 상승 압박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WSJ는 “최근의 골드러시는 세계 무역을 재편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국제 시장에 어떤 파장을 일으키는지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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