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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투자 '스토리텔링'의 위험[김학균의 투자레슨]

최은영 기자I 2025.02.13 05:00:00

사이클 반복하는 증시서 투자에 ''정답''은 없어
기업 미래가치 따져보는 가치투자도 마찬가지
가장 중요한 건 충분한 숙고, 신중한 행동
매력적 스토리로 유혹하는 종목·센터 주의해야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주식 투자는 결과가 중요한 게임이다. 복잡한 논리보다는 투자자 스스로에게 맞는 투자법으로 돈을 벌면 된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것이다. 투자에 정답은 없다고 보지만 나름의 원칙은 필요하다. 어떤 면에서 주식 투자는 ‘망해야’ 끝나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투자로 계속 돈을 벌고 있다면 그 좋은 걸 왜 멈추겠는가. 투자에서 넌더리가 날 정도로 실패해야 손을 뗄 수 있다. 시장으로부터의 비자발적 퇴출이다. 그래서 이익도 중요하지만 재기하기 힘들 정도의 치명적인 손실을 보지 않는 게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외상으로 주식을 거래하지 말아라’, ‘분산투자하라’ 등의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는 충고는 어쩌면 ‘공격’보다 ‘수비’에 초점을 맞춘 조언인지도 모르겠다.

주식시장은 늘 강세장과 약세장의 사이클을 오간다. 강세장에서는 주식을 보유하고 약세장에서는 현금을 들고 있으면 좋겠지만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주식시장의 사이클은 지나고 나면 명확해 보이지만 이를 사전에 알기는 어렵다. 오히려 상승이든 하락이든 새로운 추세가 시작됐음에도 투자자들은 기존의 관성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많다. 좋아 보이는 주식, 그래서 투자자가 보유하고 있는 종목의 주가가 하락하면 추가적으로 매수를 늘린다. 선호하는 주식이 하락하면 더 싸 보일 테니 이런 행동은 자연스럽다고 볼 수도 있다. 소위 물타기가 이뤄지는 셈인데 바닥인 줄 알았던 주가는 지하로 추락하곤 한다.

투자에 정답이 없다고 말했는데 물타기도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가치투자자 입장에서는 더 그렇다. 특정 기업이 미래에 벌어들일 것으로 기대되는 현금 흐름은 그 주식에 내재한 ‘가치’라고 볼 수 있다. 가치투자자는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이 가치를 하회할 때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가치투자자들은 시장의 전지전능함을 믿지 않는다. 시장은 대체로 효율적이지만 때로는 낙관이 과하고 때로는 비관이 과한 조울증 환자와도 같은 속성이 있다고 본다. 가치투자자의 아버지로 불리는 벤저민 그레이엄은 이런 시장의 속성을 ‘미스터 마켓’(Mr.market)에 비유했다. 시장에 대한 이런 해석은 최근 힘을 얻고 있는 ‘행동경제학’의 성과와도 맞물려 있다. 시장이 울증에 빠져 있을 때 주식의 가격은 가치를 크게 하회할 수 있다. 주가의 고점이나 바닥을 알 수는 없지만 주가가 적정 가치를 크게 하회할 때는 주식을 사야 할 때가 아닌가. 단지 가치에 대한 고려 없이 가격이 내렸다는 이유만으로 주식을 사는 것은 가치 투자와 전혀 관계가 없다.

방법론으로서의 가치 투자에도 한계는 있다. 가격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현재’의 값이다. 반면 가치는 불확실한 ‘미래’의 추정치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기에 미래에 대한 추정은 본질적으로 주관적이다. 여러 가정을 전제로 해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을 따름이다. 앞서 기업의 가치를 미래 현금흐름의 현재가치라고 말했다. 대략적이라도 이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현금흐름의 추정 기간, 그 기간 동안의 현금흐름 추정, 미래 현금흐름을 현재가치로 환산하기 위한 할인율의 결정 등이 필요하다.

먼저 현금흐름의 추정 기간에 대해 논의해 보자. 일반적으로 기업의 존속 기한은 영구적이라고 가정한다. 무한대의 기간에 걸쳐 실적을 일일이 추정할 수는 없으니 길어도 5년 남짓의 실적을 개별적으로 추정하고 이를 넘어서는 기간은 기업의 현금흐름이 일정한 비율로 성장한다고 가정한다. 구체적인 현금 흐름의 추정에는 기업 고유의 특성, 기업이 속한 산업의 성장성, 개별 국가 또는 글로벌 경제의 성장률 등이 고려돼야 한다. 할인율로는 무위험 이자율이나 기업의 재무적 특성이 반영된 회사채 수익률이 사용되곤 한다. 이렇게 산출된 기업의 가치는 ‘객관’의 영역인가, ‘주관’의 영역인가.

결론적으로 기업이 미래에 벌어들일 이익에 기반한 ‘가치’는 정확히 측정될 수 없다. 그나마 투자자가 잘 이해할 수 있는 종목에 투자해야 가치 측정과 관련한 오차를 줄일 수 있다. 또한 본질적으로 불확실한 개념인 가치보다 주가가 많이 쌀 때 주식을 매수해야 성공의 확률을 높일 수 있다. 벤저민 그레이엄이 제시한 ‘안전 마진’(Safty margin)이라는 개념인데 그는 기업의 가치 대비 가격이 현저히 쌀 때, 즉 충분한 안전 마진이 확보됐을 때 주식을 매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주식을 빈번하게 사고파는 것은 가치 투자의 관점과 배치된다. 투자자가 모든 것을 알 수 없기에 투자 대상이 많을 수가 없고 또 잘 아는 종목이라고 하더라도 안전 마진이 확보돼야 하기 때문이다. “투자 대상은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 내 인생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가 20번뿐이라면 그토록 부주의하게 주식을 살 수 있을까”. 워런 버핏의 말이다.

투자는 생각은 많이 하고 행동은 적게 해야 이길 수 있는 게임이지만 이를 지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너무도 자극이 많다. 무엇보다도 그럴듯한 스토리텔링이 투자자들을 유혹한다. 성장하는 산업과 괜찮은 사업 모델은 투자자들을 끌어들이지만 이런 기업들은 애초부터 비싸게 거래되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하지만 투자에 정답은 없다. 싼 주식을 사서 보유하며 인내하는 것도 투자고 올라가는 주식에 편승해 돈을 버는 것도 투자다. 결과가 중요하다. 조지 소로스의 말처럼 ‘달리는 마차에 올라타라. 남들보다 조금 먼저 내리면 성공’할 수도 있고 ‘좋은 주식은 평생 보유할 가치’가 있다는 워런 버핏의 조언을 따를 수도 있다.

다만 사이클이 없는 자산은 없다는 점, 본질적으로 계측하기 어려운 미래의 가치에만 과도하게 의존하는 주식의 경우 오를 때나 내릴 때나 주가의 변동성이 크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은 알고 있어야 한다. 성장 가치로 무장한 기업들의 부상은 투자자들이 가져야 할 일말의 경계심도 걷어내는 경우가 많아 더 치명적일 수 있다. 아무리 높은 가격을 지불해도 그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투자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대를 과도하게 반영하고 있다면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소한 변화에도 주가는 크게 조정을 받을 수 있다. 흔들리더라도 버텨야 할 경우도 있지만 애초에 가치가 아닌 스토리텔링에 매혹돼 주식을 산 경우라면 이런 선택을 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내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이 미래에 대한 기대를 얼마나 과대, 혹은 과소 반영하고 있는지 늘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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