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기로서의 욱일기 [딴소리]

김영환 기자I 2022.12.04 09:00:00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1. 울릉도는 아름답지만 멀리 있는 섬이다. 살면서 한 번 가보았는데 배 타는 것에 취미가 없는지라 꽤 견디기 힘들었다. 포항에서 3시간 넘는 뱃길을 꼬박 졸며 갔던 기억이 있다.

섬에는 기가 막힌 물회집이 있다. 여태 먹어본 물회 중에 단연 으뜸이었다. 공항 건설이 한창인 울릉도에 하늘길이 열리면 재방문 의사가 있는데, 이 집 물회의 맛이 큰 이유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019년 2020 도쿄 하계올림픽대회 및 하계패럴림픽대회에서의 욱일기 경기장 내 반입 금지금지 조치 촉구 결의안을 발표하고 있다.(사진=이데일리DB)
그 물회집에서 몇몇 독도 전문가 학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울릉도에서 선연하게 보이는 섬, 맑은 날이었는데도 오며가는 길에 거친 파도로 인한 멀미가 고생시켰던 섬, 독도 이야기는 평소 갖고 있던 생각과 많이 달랐다.

조선시대 이전에 우리가 갖고 있던 독도의 자료는 기실 큰 필요가 없단 거였다. 샌프란시스코 조약 당시 미국의 미진한 태도 때문에 ‘법’의 영역으로 들어서면 우리가 딱히 유리할 게 없다고. 어차피 독도에 대한 실효 지배는 우리가 하고 있어서 그냥 조용히 우리가 갖고 있으면 된다는 게 요지였다.

2. 욱일기는 일본 해상자위대의 공식기다. 욱일은 아침해가 떠오른다는 의미다. 영어로 욱일기를 ‘Rising Sun Flag’이라 부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20세기 초반 일본 제국 시기에 군기로도 쓰였다.

기원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메이지 유신을 지나 1870년 무렵부터 일본 해군에서 처음 활용됐다. 제국주의의 맛을 본 일본이 대륙 침략의 야욕을 내뿜던 시기다.
‘철십자’를 단 독일 군복(사진=독일 연방군 SNS)
일본으로부터 강제 점령기를 당했던 우리로서는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는 문양이다. 이 때문인지 욱일기는 일제시대를 다룰 때 일제의 상징물로 빈번하게 등장한다.

최근 진행 중인 2022 카타르월드컵과 같은 스포츠 행사에도 자주 응원도구로 사용된다. 그 때마다 우리는 욱일기 사용을 FIFA나 IOC 등에 제소하곤 한다. 특히 지난해 열렸던 2020 도쿄 올림픽에는 욱일기에 맞서 ‘이순신 현수막’으로 맞불을 놓기도 했다.

3. 지난 10월에는 국회에서 때아닌 욱일기 논쟁이 있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한미일 동해 합동군사훈련에 대해 “일본 자위대를 군대로 인정해 욱일기와 태극기 함께 휘날리며 합동군사훈련을 한 것이 나중에 역사적으로 어떤 일의 단초가 될지 알 수 없다”고 거론하면서다.

이를 놓고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때도 일본 군함이 욱일기를 달고 부산항이나 인천항 등에 입항한 전적을 들었다. 요컨대 욱일기 문제를 여야 정쟁화 삼지 말란 경고다.
2007년 9월 인천항에 입항한 일본 해상자위대 연습함대 카시마함 위에서 자위대 장병들이 인천해역방어사령관(준장 김용환)에게 경례하고 있다.(사진=박대출 의원 페이스북)
실제 1998년과 2008년 부산에서 열린 국제 관함식에 일본 자위대 함정이 참석하면서 욱일기를 게양했고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욱일기 논란이 거세진 것은 요근래의 일이다.

월드컵에서 FIFA는 욱일기 사용을 자제시킨다. 그러나 욱일기라서가 아니다. FIFA는 욱일기에 비하면 그다지 논란이 되지 않는 한반도기도 막는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독도는 우리땅’ 세리머니를 펼친 박종우는 IOC로부터 동메달을 박탈받을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사실 욱일기가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기 시작한 건 이 즈음부터다. ‘독도 세리머니’는 막으면서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 욱일기 응원은 가능하냐는 문제제기가 잇따랐다.

4. 아쉬운 것은 이 같은 문제 의식이 한반도 내에만 갇혀 있단 사실이다. 우리는 카타르 월드컵에서 욱일기 응원이 제지됐다고 즐거워하지만 외신에는 Rising Sun Flag를 언급하는 기사를 찾기 어렵다. 우리와 비슷하게 일제로부터 침략을 당했던 중국도 욱일기를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서구 사회에서 금기시된 하켄크로이츠와 욱일기가 다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히려 일장기가 하켄크로이츠에 대응되고 욱일기는 독일군의 상징인 철십자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물론 꼭 맞는 비유는 아니다. 현재의 독일 국기조차 치워버렸던 메르켈 전 독일 총리와 다르게 일본은 제국주의와의 완전한 단절에 미적거린 사회다. 그렇더라도 애매모호한 개념의 ‘전범기’ 같은 우리만의 적개심으로 욱일기를 다그칠 일이 아니다. 우리 여야가 정쟁으로 비화시키는 것도 소모적 논쟁에 지나지 않는다.
메르켈 전 독일 총리가 독일 국기를 빼앗아 치우고 있다.
실제 욱일기가 일본 우경화의 상징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세계적 인식을 바꾸기 위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폴란드에게 있어 전범 독일의 군대를 상징하는 ‘철십자’는 우리에게 있어 욱일기와 유사한 대상이다. 우리에게 철십자는 어떤 의미인가. 아니 인지조차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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