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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 마스터가 문경 오미자를 만났다…‘고운달’[전통주짐작]

김영환 기자I 2025.02.23 07:10:00

40년간 양조 산업에 근무한 이종기 대표
세계적 명주를 지양하며 탄생시킨 ‘고운달’
문경특산물인 오미자를 원료로 증류주 개발
전통 방식을 양조기술로 재해석한 우리 술

짐작은 ‘헤아림’을 의미하는 단어로 술과 관련이 있습니다. 헤아릴 짐(斟), 따를 작(酌). 술병 속에 술이 얼마나 있는지 헤아린다는 뜻으로 ‘술을 남에게 잘 따라주는 일’에서 ‘상대를 고려하는 행위, 사안의 경중을 헤아리는 작업’까지 의미가 확장됐습니다. 우리 전통주, 잘 헤아려보겠습니다.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이종기 오미나라 대표는 지난 1980년 동양맥주에 입사해 40년 넘게 ‘주류’에 천착해 온 ‘술박사’다. 2006년 디아지오코리아 부사장에서 퇴직하면서 그가 찍은 건 마침표가 아닌 쉼표였다. 퇴직 후 2년 후인 2008년 오미나라를 설립한 이 대표는 ‘세계 모든 애주가들이 감탄할 만한 명주’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제품 개발에 나서고 있다.

원료 선정부터 심혈을 기울였다. 이 대표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과실, 곡물을 대상으로 양조 실험을 거듭했다. 그렇게 찾은 술의 원재료가 ‘오미자’였다. 단맛, 신맛, 쓴맛, 짠맛, 매운맛 등 5가지 맛을 낸다는 오(五)미자는 선홍빛의 과육 색과 고급스러운 향이 어우러진 맞춤형 재료였다.

오미나라가 경북 문경에 터를 잡은 것도 오미자를 좇은 결과다. ‘좋은 소식을 듣는다’는 뜻을 가진 문경(聞慶)은 국내 최대 오미자 산지다. 자연환경이 깨끗하고 일교차가 높아 술을 만드는 데 제격인 고품질의 오미자가 생산된다.

그러나 개발이 처음부터 쉽진 않았다. 오미자는 당도도 높지 않고 산도가 높아 발효가 어려운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산도가 높으면 과육이 갈변 등 변질되기 쉬워서다. 발효 기간도 길어지기 때문에 제품을 만드는 데 시간이 더 들 수밖에 없었다. 사과, 포도 등 달고 산미가 덜한 과일이 술의 원료로 많이 활용되는 이유다.

이 대표는 “적합한 제조법을 찾기 위해 샴페인의 고장 프랑스 샹파뉴 지역을 9번 이상 방문해 현지의 샴페인 발효법을 배웠다”고 회고했다. 그렇게 총 17년간의 연구를 거듭해 이 대표는 오미자 증류주 ‘고운달’을 세상에 선보였다.

(사진=한국중소벤처기업유통원)
‘고운달’은 9월에 수확한 오미자를 착즙해 6개월간의 발효와 1년간의 숙성을 거쳐 와인을 만들고 이를 두 차례 증류해 완성된다. 이때 상압 증류방식을 활용하는데 알코올의 끓는 점보다 높은 80℃ 이상의 온도에서 직접 열을 가하는 방식으로 원재료의 맛과 향을 잘 살릴 수 있다.

증류가 완료된 원액은 이후 동서양을 대표하는 숙성용기 백자 항아리와 오크통에서 3년간 숙성 기간을 거친다. 최종적으로 블랜딩 과정을 거치면 소비자에게 판매할 제품이 비로소 만들어진다. 백자 항아리에서 숙성된 고운달은 화이트초콜릿, 허브향이 나며 부드러운 맛과 목 넘김이 특징이다. 오크통에서 숙성된 고운달은 삼나무 향, 초콜릿 향과 함께 쌉싸름한 끝맛이 좋다.

이 대표는 “항아리는 동양의 대표적인 숙성용기지만 한국의 증류식 소주는 곡물이 원료인 술”이라며 “과일인 오미자를 원료로 한 증류주를 항아리에서 숙성하는 것은 기존의 술의 종류에는 속하지 않은 새로운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오미나라는 문경 외에 전남 광양에도 양조장을 설립했다. 광양, 순천 등에서 재배되는 황매실로 새로운 도전에 나서기 위해서다. 매실 증류주 ‘섬진강바람’을 출시했고 매실 스파클링 와인 개발도 추진 중이다. 한국땅에서 나는 특산물로 한국을 대표하는 술을 만들겠다는 일념에서다.

이 대표는 “일본도 과거 희석식 소주 소비가 더 많았지만 지금은 증류식 소주가 희석식 소주의 판매량을 크게 넘어서는 등 지역 특산주의 대중화가 일어나고 있다라며 “우리나라도 인식 변화를 통해 조금씩 음미하면서 즐기는 문화가 변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오미나라 주류는 중소상공인 판로 개척을 위해 운영하는 세금포인트 할인쇼핑몰 등에서 구할 수 있다. 해외 판매도 적극적이다. 인천공항의 판판 면세점에서 고운달을 비롯해 오미자 와인 등을 판매하고 있다. 사과를 주 원료로 하는 ‘문경바람’은 미국, 중국 등지에, 오미자 와인인 오미로제는 싱가포르에 수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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