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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도 몸이 좋지 않았다. 저녁까지 거른 남편에게 A씨는 흰 죽을 만들어줬지만, 두 시간 만에 남편은 병원으로 실려갔다.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은 남편은 집으로 귀가해 A씨가 건네준 찬물을 마셨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 남편은 그대로 사망했다.
당시 A씨는 남편의 부검에 동의했다. 그런데 숨진 남편의 부검 결과 사인은 ‘급성 니코틴 중독’이었다. 경찰은 A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그를 구속 기소했다. A씨가 남편에게 니코틴을 탄 미숫가루를 먹이고, 흰 죽과 찬물에도 니코틴을 넣어 먹게 했다고 본 것이다. 경찰은 전자담배를 피우는 A씨가 남편이 사망하기 며칠 전 니코틴 용액을 산 사실도 알아냈다.
1심 판결에서는 수사기관의 이러한 주장이 모두 받아들여졌다. 1심 법원은 “피해자의 사인은 급성 니코틴 중독으로 밝혀졌는데, 피해자가 흰죽을 먹은 뒤 보인 오심, 가슴 통증 등은 전형적인 니코틴 중독 증상이라고 볼 수 있다”며 “피고인은 액상 니코틴을 구매하면서 원액을 추가해달라고 했고, 이를 과다 복용할 경우 생명에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등 피해자 사망 전후 사정을 볼 때 제3자에 의한 살해 가능성은 작다”고 판단하며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에서는 ‘찬물’을 통한 범죄만을 유죄로 인정했다. 남편이 미숫가루를 먹었을 당시 니코틴 중독 증세가 있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찰은 초기 수사 당시 남편이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 채취한 혈액을 확보하지 못했고, 결국 이 혈액은 폐기돼 남편의 니코틴 중독 시점을 특정해내지 못했다.
다만 2심은 A씨가 주장하던 ‘남편의 자살’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는 3년간 만나던 내연남이 있었는데, 남편은 이 내연남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2심 재판부는 “모든 자살사건에 있어 유서가 발견되는 것은 아니나, 피고인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배우자의 외도문제 등으로 자살을 결행하였다고 한다면 유서를 남겼을 가능성이 상당하다”며 남편이 자살할 이유가 없다고 봤다.
그런데 대법원에서는 ‘찬물’을 통한 범죄마저 수사기관이 증명해내지 못했다고 봤다. 대법원은 “부검 결과나 감정의견 등은 B씨의 사인이 급성 니코틴 중독이라는 점과 B씨가 응급진료센터를 다녀온 후 B씨에게 과량의 니코틴 경구 투여가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증거방법으로서 의미가 있을 뿐 ‘A씨가 찬물에 니코틴 원액을 타서 B씨로 하여금 음용하게 했다’는 공소사실이 증명된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에 B씨에게 찬물을 준 후 밝혀지지 않은 다른 경위로 B씨가 니코틴을 음용하게 되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이 사건은 파기환송돼 다시 재판을 받게 됐고, 지난해 2월 2일 살인 혐의에 대한 최종 무죄 판결이 나오게 된다. 이날 재판에서는 직접 니코틴을 탄 찬물을 시음해보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니코틴을 찬물에 타서 마신다면 아주 소량으로도 혀가 아리고 역한 반응을 보이는데, 치사량을 먹이려면 몰래 먹일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향과 맛이 느껴진다는 게 A씨 측 주장이었다. 애초에 A씨가 구매한 니코틴 양으로는 남편의 몸에서 검출된 것 만큼 니코틴이 검출될 수 없다고도 주장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피해자 말초 혈액에서 검출된 니코틴 농도에 비추어 볼 때 흰죽과 찬물을 이용했다면 고농도 니코틴 원액이 필요해 보인다”며 “수사기관은 피고인에게 압수한 니코틴 제품의 함량 실험을 하지 않았고, 압수된 제품이 범행에 사용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검찰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법원에 재상고했으나 지난해 12월 24일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한 파기환송심 판결을 확정하며 최종 무죄 결론이 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