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37㎞ 사망사고의 진실…아내·아들이 진범이었다[그해 오늘]

한광범 기자I 2023.02.04 00:02:30

정읍 50대 공무원 사망 사건…살인 후 교통사고 위장
보험금 목적 범행…해외도피로 8년 만에 진실 밝혀져
1심서 무기징역→2심서 '유족 선처'에 징역 15·22년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2015년 2월 4일, 전주지방법원 정읍지원의 한 법정에서 수의를 입은 채 피고인석에 서있는 백모(당시 60세)씨, 김모(당시 37세)씨에게 나란히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이들에게 적용된 ‘존속살해’ 혐의를 유죄가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백씨 모자가 재판 내내 강력 부인했던 8년 전 사망 사건이 이들의 계획적 살인이라는 점이 인정되는 순간이었다.

정읍 50대 남성 살인사건의 범인인 아내 백모씨와 아들 김모씨. (사진=SBS ‘궁금한 이야기 Y’ 갈무리)
사건은 8년 전 발생했다. 2006년 12월 25일 밤 9시께, 전북 정읍의 칠보삼거리에서 정읍시청 공무원이었던 김모(당시 54세)씨 가족이 타고 있던 SUV 차량이 A씨가 운전하는 승용차 범퍼를 추돌하는 사고가 났다.

사고 직후 신고를 받고 밤 9시 11분 현장에 충돌한 경찰은 조수석에 타고 있던 김씨가 의식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곧바로 119에 신고했다.

119 구급대가 긴급히 현장에 도착해 상태를 확인했으나, 김씨는 이미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구급대원들은 김씨가 이미 사망한 것으로 판단한 후 밤 9시36분 전북의 한 병원에 김씨를 이송했다.

사고 직후 시신 인도돼 바로 화장

김씨 상태를 확인한 병원 의사는 호흡·맥박 등 생체징후가 전혀 없고 심장 박동도 없다며 ‘도착 당시 이미 사망’ 판정을 했다. 김씨 시신은 사고 부검 없이 사고 다음 날 박씨 아내인 백씨에게 인도돼 27일 화장됐다.

김씨 가족들은 보험회사들에 보험금 지급을 요청해 6억원이 넘는 돈을 받았으나, 일부 보험사는 ‘보험사기’를 의심하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실제 교통사고로 보기엔 이상한 정황이 다수 있었다. 당시 김씨가 탔던 차량의 속도는 시속 37㎞ 정도에 불과했고, 에어백도 터지지 않았다. 추돌에 의한 차량 손상 역시 모두 범퍼만 파손된 정도였다.

조수석에 탔던 김씨가 사망했음에도 차량을 운전한 김씨의 아들과, 뒷좌석에 탔던 백씨는 가벼운 부상만 입은 상태였다. 또 평균 월급여가 260만원에 불과했던 김씨 앞으로 매달 총 보험료만 180만원에 달하는 보험 20개가 가입된 점도 사건에 의구심을 갖게 하는 배경이었다.

경찰은 타살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에 나섰지만 이미 시신이 화장된 상태라 물증 찾기에 애를 먹다가, 2007년 5월 A씨가 백씨 명의 휴대전화로 백씨와 통화한 내역을 확인한 후 수사에 활로를 찾기 시작했다.

자신의 아들을 만나기 위해 부근을 갔다가 칠보삼거리에서 사고가 났다고 진술한 A씨와 백씨가 범행 전후로 수차례 통화를 한 것이 확인된 것이다.

하지만 백씨는 “A씨 얼굴만 알뿐, 전화번호도 모르고 통화한 사실도 없다”고 잡아뗐다. 경찰이 통화내역을 근거로 백씨에게 “A씨와 내연관계 아니냐”고 추궁하자, 백씨는 “몇 번 전화기를 빌려준 것뿐”이라고 이를 부인했다.

수사 본격화되자 경찰 매수 시도하기도

경찰이 자신과 백씨의 통화내역을 확보한 것을 알게된 A씨는 이후 경찰 조사에 응하지 않고 잠적했다. 그리고 백씨는 느닷없이 수사 경찰관들에게 수백만원의 뇌물을 건네려 했다.

A씨 잠적으로 수사에 진척되지 못하던 상황에서 경찰은 우선적으로 백씨의 뇌물공여죄와 아들 김씨의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죄 사건을 수사했고, 검찰은 이들을 재판에 넘겼다.

법원은 2008년 3월 백씨에겐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아들 김씨에겐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고, 형은 그대로 확정됐다.

살인사건 수사는 2009년 11월 A씨가 검거되며 다시 재개됐다. A씨는 검거 직후부터 “교통사고는 백씨 제의로 실행됐고, 교통사고 전에 이미 김씨는 죽어있었던 것 같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그는 “백씨에게 범행 제안을 받았고, 백씨가 범행 하루 전 아들 김씨에게 ‘네가 내려와야 실행에 옮긴다’고 말하는 통화를 들었다”며 “백씨가 ‘남편이 좋아하는 복분자에 약을 타서 주겠다’고 얘기도 했다”고 밝혔다. 백씨도 A씨와의 내연관계였다는 점과 남편 김씨에게 복분자를 먹였다는 점을 인정했다.

A씨 진술로 수사가 활기를 띠게 되던 상황에서 이번엔 사고 차량을 운전했던 김씨의 아들이 호주로 출국해 버리며 수사는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검찰은 일단 2009년 말 아내 백씨와 A씨를 보험사기 혐의로 우선 기소했다. 법원은 2010년 6월 백씨와 A씨에게 각각 징역 5년, 징역 1년을 선고했다. 백씨가 항소했으나 형은 2011년 1월 그대로 확정됐다.

그리고 2014년 4월 호주로 도피했던 아들 김씨가 호주에서 추방된 후 인천국제공항에서 입국 즉시 체포됐다. 검경은 일단 아들 김씨에 대해 보험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기는 한편, 살인 혐의에 대해선 재수사에 나섰다. 아들 김씨의 보험 사기 혐의는 1심에서 징역 5년형이 내려졌다.

수사 결과, 아내 백씨와 아들 김씨는 피해자와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다. 백씨의 경우 오래전부터 피해자와 사실상 별거를 하고 있었고, 아들 김씨의 경우 결혼 반대에 앙심을 품고 있었다.

끝까지 범행 부인…아내 2심서 “아들 아닌 내연남이 공범”

두 사람은 2006년 사고 당일 오후 6~9시 사이에 피해자를 살해한 후, 시신을 조수석에 태운채 칠보사거리로 이동해 A씨 차량과 고의로 접촉사고를 일으켜 교통사고로 위장을 시도했다.

아내 백씨와 아들 김씨는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교통사고로 인해 우연히 사망한 것이지, 피해자를 고의로 살해하지 않았다”며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법원은 백씨 모자의 주장을 일축하고 “살인이 맞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119구급대 도착 당시 생체징후가 전혀 없었고, 당시 촬영된 사진 속 피해자 모습이 이미 사망 몇 시간이 지난 것으로 추정되는 점 등을 유죄 판단의 근거로 삼았다.

1심은 백씨 모자에 대해 ‘존속살해’ 혐의가 인정된다고 보고 각각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보험금 편취를 위해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했음에도 여전히 변명에 급급한 태도로 일관하며 반성하지 않고 있다”고 질타했다.

백씨 모자 모두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아들 김씨의 보험사기 사건도 2심에서 병합돼 함께 진행됐다. 아들 김씨가 1심 때와 마찬가지로 범행 일체를 강력 부인하는 가운데, 백씨는 재판 도중 “남편을 죽인 것은 맞지만, 아들이 아닌 내연남 A씨와 공모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2심 재판부는 아들 김씨 주장과 백씨의 새 주장 모두 믿기 어렵다며 1심과 같이 존속살해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다만 양형의 경우 “피해자의 다른 유족들이 처벌을 원하지 않고 선처를 탄원하고 있다”며 백씨에게 징역 15년, 아들 김씨에겐 보험사기죄까지 더해 징역 22년을 선고했다. 형은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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