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감축 대신 '직원 빚 탕감'…매출 3조 '부활 드라마' 쓴 사모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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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의 기자I 2026.03.03 06:45:16

[기업을 살린 사모펀드들]③
적자의 늪에 빠진 대한전선 인수한 IMM PE
회사 살리려던 직원들 빚부터 탕감
본업 살리고 기업가치 제고 '반전 드라마'

국내 시장에서 사모펀드는 구조조정과 고용 불안의 상징으로 굳어지고 있습니다. 일부 부정적 사건이 잇따르며 시선이 차가워졌지만, 실제로는 기업을 살리고 키워낸 사례가 많습니다.

이데일리는 사모펀드가 인력 감축 대신 성장에 투자하며 기업가치를 끌어올린 사례를 집중 조명했습니다. 사모펀드에 인수됐다는 이유로 우려와 오해를 받았으나, 체질개선에 성공한 기업 사례를 통해 사모펀드의 전문 경영인 영입과 글로벌 확장, 고용 확대가 어떻게 실적 개선과 성장으로 이어졌는지를 살펴봤습니다.

이를 통해 투자 방식과 경영 전략이 기업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점을 짚으며, 사모펀드를 둘러싼 편견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성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이데일리 마켓in 지영의 김연지 기자] 쓰러져가는 회사를 살려보겠다고 지갑을 열었던 직원들이 빚쟁이가 됐다. 대한전선이 휘청이던 지난 2000년대, 직원들은 회사가 버티는 데 보탬이 되고자 유상증자에 참여해 우리사주를 샀다. 54년 연속 흑자를 내던 '내 회사'를 지켜보려던 선택이었다. 그러나 회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더 기울었고, 직원들에게 남은 것은 인당 수천만 원의 우리사주 매입 대출금이었다. 회사를 지키려던 마음이, 족쇄로 전락한 것이다.

채권단 관리 끝에 대한전선은 국내 사모펀드 IMM프라이빗에쿼티(IMM PE)에 팔렸다. 구조조정과 인력 감축, 자산 매각. 새 경영자인 사모펀드가 여러 선택지 중 어떤 경영 방식을 고를지 불안감이 높을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대한전선을 사들인 사모펀드는 의외의 이야기를 꺼냈다. 대한전선 경영진 및 직원들과 마주한 첫 타운홀 미팅, IMM PE는 '빚 탕감'을 선언했다.

"대한전선 직원들의 우리사주 대출금 약 45억 원을 회사가 대신 상환하겠습니다"

첫 인상부터 회사에 신선한 충격을 안긴 이 사모펀드는, 경영 기간 내내 대한전선에 '반전 드라마'를 써내려갔다. IMM PE의 경영 하에 대한전선은 채권단 자율협약 기업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글로벌 수주를 기반으로 성장 궤도에 복귀했고, 이후 중장기 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호반그룹으로 재매각된 무렵에는 15년 만에 매출 3조원을 회복했다.



적자의 늪에 빠진 대한전선…문어발 확장과 금융위기의 후폭풍

대한전선은 1941년 설립된 국내 최초 전선 회사로, 오랜 기간 국내 기간산업을 떠받친 기업이었다. 54년 연속 흑자를 내며 건실한 기업으로 불렸다. 그러나 대한전선의 창업주인 설경동 회장이 별세한 2000년대 중반 이후 경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무주리조트와 남부터미널, 해외 부동산 등 본업과 거리가 있는 투자들이 누적되면서 재무구조가 흔들렸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그 취약한 구조를 정면으로 때렸다. 결국 대한전선은 2012년 채권단 자율협약에 들어갔다. 주요 채권자를 중심으로 관리단이 파견되고, 임시 체제 하에 소극적인 경영이 이어졌다.

M&A 시장에 나온 대한전선을 지켜보던 IMM PE 눈에는 회사의 ‘수술이 필요한 부위’가 비교적 또렷하게 보였다. 회사를 무너뜨린 것은 본업과 거리가 먼 투자와 그로 인해 누적된 재무 부담, 그리고 체계적이지 못한 경영 구조였다. IMM PE는 경영만 제대로 하면 살릴 수 있는 회사라고 판단했다.

IMM PE는 기존 주주 지분을 사들이는 방식 대신, 유상증자를 통해 회사에 직접 자금을 투입하겠다고 제안했다. 회사에 당장 현금이 유입되는 방식으로 사들여 재무 구조를 먼저 바로잡기 위해서였다. 지난 2015년 9월, IMM PE는 약 3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하며 대한전선 지분 70.1%를 확보, 대주주로 올라섰다.



회생의 첫 단추, 구조조정 대신 '사람 투자'

대한전선에 입성한 IMM PE는 회생의 첫 순서로 '사람 투자' 부터 시작했다. 인수 직후 회사가 어려울 때 직원들이 떠안게 된 약 45억원의 우리사주 대출금을 회사가 부담해 정리한 것 역시 투자의 일환이었다. 회사를 지탱해온 사람을 살려놔야 경영전략이 통하고, 성과가 자연스럽게 뒤따를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경영진 구성도 인력감축과 전면 교체보다 재편에 방점을 찍었다. 대주주가 바뀌면 통상 최고경영자부터 교체하지만, IMM PE는 당시 영업을 이끌던 내부 인사를 직접 면담한 뒤 대표이사직을 유지했다. 회사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남기고, 재무·관리·우발채무 정리 등 구조를 바꾸는 역할 교체에 집중했다. 이를 위해 인수 직후 IMM PE의 딜팀이 현장에 상주하며 임직원 면담을 반복했다. 누가 앞으로 회사를 함께 이끌 수 있는지를 가려내는 데 방점을 둔 '100일간의 플랜'이었다.

보상과 평가의 기준도 다시 세웠다. 스톡옵션과 성과급 제도를 도입해 해외 수주와 수익성 개선 같은 결과에 보상이 직결되도록 했다. 구조조정이라는 칼을 꺼내들지 않아도, 보상과 평가 기준이 합리적으로 바뀌자 조직은 빠르게 재정비되기 시작했다.



‘재무 쥐어짜기’ 대신 ‘경영 재설계’…사모펀드 만난 대한전선의 5년 반

IMM PE가 대한전선에 들어와 가장 먼저 수술대에 올린 것은 불필요하게 비대한 사업 구조였다. 우수한 기술력을 갖고 있었지만, 각종 우발채무와 비핵심 자산이 얽힌 구조에서는 성장 전략을 제대로 펴기 어려웠다. 대한전선이 가진 우발채무의 상당 부분은 본업과 무관한 사업에 얽혀있었다. 리조트와 부동산, 터미널 개발 등에서 발생한 지급보증과 소송, 출자법인들과 관련된 책임들이 회사 전체를 옭아매고 있던 상황이었다.

IMM PE는 남부터미널과 무주리조트, 해외 부동산 자산을 매각하고, 36개에 달하던 출자법인을 절반 수준으로 줄였다. 자산 매각 과정에서 보증과 잠재 부실까지 함께 걷어냈다.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영업이 움직이고, 영업이 움직여야 성장이 가능하다는 판단이었다.

사업 전략도 본업에 충실한 방향으로 틀었다. 저수익 제품을 줄이고, 초고압·고압(EHV/HV) 케이블과 해저 케이블처럼 기술 장벽이 높은, 투자할 수록 회사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영역에 집중했다. 고부가가치 영역을 키우자 미국과 유럽, 오세아니아, 아시아, 중동 등 주요 글로벌 시장에서 대형 수주 요청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다음으로 손을 댄 곳은 브로커 의존도가 높은 해외 수주 구조였다. 중간 딜러를 거치는 구조 속에 수수료 부담이 높았고, 저가 수주 문제가 심각했다. IMM PE는 이런 구조가 수익성을 갉아먹는다고 보고 해외 지사를 통한 직접 영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틀었다. 발주처와 직접 거래하는 체계가 자리 잡으면서, 환율과 원자재 가격 변동을 감안한 원가 구조를 수주 단계에서부터 관리할 수 있게 됐고 저가 수주 비중도 자연스럽게 줄었다. 글로벌 수주에 다른 외화 자산 관리에서도, 환율과 원자재 가격 변동을 운에 맡기지 않도록 헤지 원칙을 세웠다. 환변동에 따른 투기적 성과를 기대하기보다, 제조업답게 이익을 고정해두는 방식이었다.

경영 방식을 차츰 개선한 결과, 대한전선은 지난 2020년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인수 당시 4500억원대에 달하던 우발채무는 1000억원대로 줄었고, 순차입금 비율도 250%에서 100% 수준으로 감소했다. 총차입금 역시 2014년 1조1373억원에서 2020년 5863억원으로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IMM PE는 약 5년 반에 걸쳐 대한전선을 정상화 시키고, 키운 뒤 전략적 투자자(SI)인 호반그룹에 재매각했다. 통상 짧게는 3년, 길게는 5~6년을 투자한 뒤 회수하는 사모펀드의 특성상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지만, 대한전선이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설비 투자와 자본 투입이 가능한 주인이 필요해서였다. IMM PE가 경영 기간에 다져둔 재무건전성과 체력은, 대한전선이 호반그룹에 재매각된 이후에도 이어졌다. 대한전선은 호반 편입 이후에도 추가 유상증자와 차입 구조 개선을 통해 재무 부담을 낮췄고, 2024년에는 매출 3조원을 넘어섰다.



우리가 모르는, 사모펀드의 다른 얼굴

대한전선을 재도약시킨 IMM PE 사례는 '사모펀드의 경영'에 대한 편견을 다시 보게 만든다. 사모펀드는 흔히 구조조정과 비용 절감의 이미지로 기억되지만, 기업 경영의 실제 현장에서는 그보다 훨씬 다양한 역할을 한다. 위기에 빠진 기업의 망가진 재무를 손질하고, 사업의 중심 전략을 다시 짜고, 무너져가는 조직을 다시 세울 수 있는 여건을 다진다. '잘 사고, 잘 팔아서, 잘 번다'는 사모펀드의 성패는 결국 인수하고, 투자한 기업의 성공과도 맞닿아 있다.

사모펀드는 영원한 주인은 아니다. 대신 병든 기업을 긴급하게 수술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상태로 회복되는 과정을 책임지는 자본일 수 있다. 대한전선에서 IMM PE가 보여준 경영은, 위기의 순간 '응급실 의사'에 가까웠다. 사모펀드를 보는 시야는 더 넓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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