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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정든 코트와 작별' 주희정 "아직도 꿈 꾸는 것 같아"(일문일답)

이석무 기자I 2017.05.18 17:27:28
프로농구 서울 삼성 주희정이 18일 오전 서울 강남구 KBL 센터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소감을 밝히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1997년 원주 나래 블루버드 연습생으로 입단한 주희정은 2016-2017시즌까지 20년 동안 삼성, KT&G, SK 거쳐 다시 삼성으로 돌아와 안 총 1천29경기에 출전해 3점슛 1천152개를 포함해 득점 8천564점, 어시스트 5천381개, 스틸 1천505개, 리바운드 3천439개를 기록했다. 2017.5.18superdoo82@yna.co.kr(끝)<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20년간 한국 프로농구 코트를 주름 잡았던 ‘명가드’ 주희정(39)이 선수 인생에 마침표를 찍었다.

주희정은 18일 서울 강남구 KBL 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은퇴를 결심하게 된 소감과 앞으로의 계획 등을 털어놓았다.

미리 준비한 은퇴 소감을 읽으면서 감정이 북받쳐올라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한 주희정은 “지금도 뭔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정리가 안 되는 것 같다”며 “농구에 미쳐 살아온 내게 그 어떤 것으로 대체할 수 있을지 지금은 생각나지 않는다”고 아쉬움을 숨기지 않았다.

특히 주희정은 자신이 농구선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뒷바라지를 한 뒤 하늘나라로 떠난 할머니를 떠올리며 “정말 효도다운 효도를 못한 것 같다. 평생 죽을 때까지 가슴이 아플 것 같다”며 “나중에 할머니 곁에 간다면 그때는 잘해드리고 싶다”고 말한 뒤 눈물을 흘렸다.

다음은 주희정이 은퇴 기자회견 일문일답.

-은퇴 소감은.

▲정신이 없어 머릿속에 다 담지 못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순간도 꿈을 꾸는 것 같다.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마음의 정리가 되지 않는다. 언젠가 나도 은퇴를 하겠지 막연히 생각했다. 막연히 농구가 좋고 미쳐서 지금까지 살아왔다. 대체할 무엇이 지금까지 생각나지 않는다. 농구공을 갖고 노는 것이 즐거웠던 초등학교 시절, 강동희 선수를 보며 꿈을 키웠던 중학교 시절, 하나 뿐인 할머니를 호강시켜주려 죽도록 열심히 했던 고등학교 시절, 간절하고 성숙했던 대학교 시절, 일찍 입문해 20년을 보낸 프로시절들. 이제는 과거가 됐다. 프로에 와서 더 발전하고 성장하는 주희정이 되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나 자신과 힘든 싸움을 이겨가며 여기까지 왔다. 농구인생에 후회는 없다. 항상 최선을 다했다.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농구에 대한 열정은 놓을 수 없을 것 같다.

-프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솔직하게 말해 프로 20년 동안 정말 생각나는 경기가 없다.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갔다. 많은 팀을 거쳤지만 삼성 시절 통합우승(2001년)이 가장 잊을 수 없었다.

-한 시즌 더 뛸 것으로 예상됐는데.

▲아직도 내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이 솔직히 믿어지지 않는다. 당장이라도 휴가 마치고 훈련을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제 조금씩 비우려고 준비하고 있다. 빨리 비워내야 한다. 미래가 더 빨리 다가올 것이다. 공허함을 사로잡으면 안 될 것 같다.

-은퇴 후 가장으로서 생활은 어떻게 하나.

▲지금 가장 머릿속에 생각나는 것은 아이들과의 약속이다. 아들이 1년 만 더 선수생활을 하면 안 되겠냐면서 울었다. 꼭 하겠다고 약속했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마음에 남는다.

-은퇴를 납득하지 못하는 분위기도 있는데.

▲프로이기 때문에 실력으로 먼저 보여줘야 된다고 생각한다. 프로 선수니까 후배들은 나이가 들더라도 눈치 보지 말고 프로답게 실력으로 보여주고 구단으로부터 인정 받았으면 한다.

-가장 애착이 가는 기록이 있다면.

▲운이 좋아서 많은 기록을 갖고 있다. 다 소중한 기록들이다. 1000경기 출전을 이룬 것이 첫 번째 애착이 간다.

-후배 선수들에게 충고하고 싶은 이야기는.

▲학창시절부터 무식하게 훈련을 해왔다. 프로에 와서 슛이 없는 반쪽짜리 선수라고 불린 적도 있다. 무작정 열심히 했다. 요즘은 시대도 많이 바뀌었다. 그냥 막무가내로 노력하기보다 생각을 하면서 경기에 도움이 되는 훈련을 하길 바란다. 타 팀 선수가 잘하는 기술이 있다면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도록 배우고 느껴야 한다. 후배들에게 끊임없이 자기 개발을 위해 생각하고 노력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본인이 그리고 있는 지도자상이 있다면.

▲일단 명 감독님들의 장점만 배우고 싶다. 몇 년 전 NBA 중계를 봤다. 스티브 내쉬가 피닉스에 있을 때 봤는데 마이크 댄토니 감독이 있었다. 상대팀이 공격 횟수가 40번이면 피닉스는 70~80번 정도를 하는 것을 봤다. ‘저 부분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고 내가 원하는 농구 스타일이다’라고 생각 했다. 만약에 지도자로 돌아온다면 그 감독처럼 전술을 한국에 맞게끔 다이나믹하고 재미있게, 팬들이 즐거워 할 정도의 농구를 하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지도자다.

-떠오르는 인물 중 한 명이 할머니다. 할머니께 하고 싶은 말은.

▲너무나 정말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질병이 심각하신데도 불구하고 손자 하나 잘 키우기 위해 고생을 너무 많이 하셨다. 정말 효도다운 효도를 못한 것 같다. 평생 죽을 때까지 가슴이 아플 것 같다. 할머니에 대해서는 늘 생각한다. 매 경기 마음 속으로 ‘이기게 해달라’고 빌었다. 이제는 할머니 얼굴조차 머릿속에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매일매일 보고 싶고 매 경기 때마다 기도한다. 나중에 할머니 곁에 간다면 그때는 잘해드리고 싶다.

-목표 중에 이룬 것도 많지만 못 이룬 것도 있을텐데.

▲원없이 했다. 한 시즌, 한 시즌 지날 때마다 목표가 새롭게 생겼다. 기록적인 면을 말한다면 예전에는 트리플더블 10번을 채우고 은퇴하겠다고 했는데 못 이뤘다. 아쉬움보다는 미련이 남는다.

-위기의 프로농구에 던지고 싶은 메시지는.

▲팬들이 경기장에 많이 찾아주신다면 농구가 더 발전할 것이다. 그 전에 선수들이 재밌는 경기를 하면서 팬들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면 한국 농구가 발전할 것이다. 이기는 것이 첫 번째지만 선수들도 개인기량을 향상시킨다면 팬들도 많아질 것이다.

-앞으로 구체적인 지도자 수업 계획은 어떤가.

▲아직 구단과 상의한 것이 없다. 하나씩 준비해나갈 것이다. 당분간 아이들과 즐기겠다. 1학년 막내 아들이 농구를 상당히 좋아한다. NBA 농구도 꾸준히 시청하고 있다. 아들은 농구선수가 꿈이다. 초등학교 5학년이 돼도 변함이 없으면 꿈을 이뤄주겠다고 했다. 아빠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되고 NBA에 진출할 실력이 된다면 뒷받침하겠다.

◎주희정은 누구?

주희정은 고려대를 중퇴한 뒤 1997년 원주 동부의 전신인 나래 블루버드에 연습생 신분으로 입단해 이번 시즌까지 총 20시즌 동안 프로농구 코트를 누볐다. 20년 간 정규시즌 총 1044경기 가운데 1029경기에 출전했다. 부득이하게 경기에 빠진 날은 단 15일에 불과했다.

주희정은 KBL 최고의 스타였다. 1997-1998시즌 첫 신인왕에 오른 뒤 최우수선수(MVP)와 플레이오프 MVP에 선정되는 등 KBL의 최고 스타로 활약했다.

주희정은 정규리그 기준 최다 어시스트(5381개), 최다 스틸(1505개), 국내선수 트리플 더블 최다기록(8회), 3점슛 성공개수 2위(1152개), 리바운드 5위(3439개), 득점 5위(8564점)의 기록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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