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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중일 삼성 감독은 9일 잠실 두산전 선발 라인업에 처음으로 박해민의 이름을 넣었다. 박해민의 자리는 7번 타자 중견수. 류 감독은 경기 전 전광판에 뜬 라인업을 보며 “7번 타순이 반짝 반짝한다”고 했다.
박해민은 2012년 신고선수로 삼성에 입단한 우투좌타 외야수다. 지난 해엔 1경기에 나선 것이 전부. 올시즌도 대부분 경기 후반부 대주자로 뛴 경우가 많았다. 시즌 성적은 19경기서 타율 4할2푼9리, 7타수 3안타 1타점 6득점 1도루. 이날 선발출전하는 건 데뷔 후 처음이다.
경험많은 중견수 이영욱과 정형식을 두고 류 감독이 선발 중견수로 신인급의 박해민을 택한 이유는 그 두 선수가 부진하기 때문이다. 정형식은 1할6푼7리, 이영욱은 2할7푼3리를 기록 중. 류 감독의 기대치엔 못미치는 수치였다.
이영욱과 정형식에게 긴장감을 심어주겠다는 의도도 있었다. 류 감독은 “이영욱과 정형식이 더욱 정신을 바짝 차려야한다”면서 “박해민이 잘해준다면 그 두 선수도 자극을 받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물론 박해민은 실력이 충분히 있는 선수다. 박해민은 코칭스태프 사이에서 ‘제 2의 정수빈’이 될 수 있는 재목이라고 평가받는 선수기도 하다.
류 감독은 “해민이가 발도 빠르고 재치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결국 오늘 보여줘야 한다. 나도 박해민의 활약이 궁금하고 기대된다”면서 “오늘은 신인선수를 키우느냐, 죽이느냐의 갈림길에 있다”고도 말했다.
그만큼 박해민의 중견수 선발 출전이 류 감독에게도, 삼성의 향후 미래에도 큰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류 감독은 “도박아닌 도박을 한 번 해봤다. 신선한 선수가 나와서 잘 해준다면 지금 분위기에 더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결과적으로 류 감독의 한 수는 또 한 번 제대로 통했다. 박해민은 공수주에서 든든한 존재감을 보였다. 외야 수비는 정형식, 이영욱 못지 않게 안정감이 있었다.
특히 공격에서 눈도장을 확실히 찍었다. 4타수 2안타 2타점 1득점을 기록하며 승리의 발판을 놓았다.
2회 무사 1루 첫 타석에선 유희관을 상대로 초구부터 차분히 번트를 성공시키며 작전에도 능한 선수라는 걸 증명해보였다.
3-0으로 앞선 4회엔 유희관을 상대로 힘껏 방망이를 휘둘러 우측 선상을 타고 흐르는 3루타로 연결시켰다. 삼성에서 가장 빠른 발을 갖고 있는 박해민의 주력까지 볼 수 있었던 장면.
무엇보다 쉽게 도망가는 점수를 뽑아줬다는 점에서 의미는 더 컸다. 삼성은 박해민의 3루타 이후 이지영의 희생플라이로 가볍게 추가점을 얻었다. 사실상 두산의 추격의지를 꺾는 한 방이었다.
박해민은 세 번째 타석이던 5회에도 신인답지 않은 과감한 스윙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9회 이용찬을 상대로 터트린 2타점 적시타는 자신의 이름 석자를 확실히 각인시키기 충분했다.
류 감독은 박해민을 두고 “꼭 안타를 만들어내진 못하더라도 왼손투수의 볼, 변화구에 어떻게 따라가고 대처하는지를 보여주면 당분간 기회를 더 줄 수도 있다”고 했다. 탄탄한 삼성의 선수층을 감안하면 그에게 이런 기회는 많지 않았을지 모른다. 일단 박해민은 절호의 찬스를 아주 잘 잡은 셈이 됐다.
삼성은 최근 5연승 기간 동안 ‘잘 되는 집안‘의 분위기를 증명해보이고 있었다. 주전 3루수 박석민이 눈 다래끼 증상으로 빠지자 백업 김태완이 맹활약을 했다. 엔트리에서 빠질 위기에 있던 백상원은 결승타로 엔트리서 살아남았다.
어느 자리에 놓아도 제 역할을 다 해주는 선수들. 감독이 굳이 인상 쓰거나 나쁜 말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팀이 잘 돌아가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게 삼성의 힘이다. 9일 경기서도 박해민이 꼭 그랬다.
굳이 류 감독이 따로 말을 하지 않아도 이영욱과 정형식은 박해민의 플레이만 보고도 충분히 긴장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류 감독의 말대로 자극도 받았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경쟁체제. 삼성은 박해민의 폭풍질주가 또 한 번의 나비효과로 연결되길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