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초↓' 류현진, 강력한 'MLB 경기촉진룰'의 최대 수혜자

정재호 기자I 2014.10.13 15:47:12
[이데일리 e뉴스 정재호 기자] 1초라도 쥐어짜내려는 갈수록 각박해지는 세상에서 야구만큼은 별천지인 듯 시간제약이 없는 느긋한 스포츠로 통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시대의 흐름(?)을 마냥 외면하지는 못할 전망이다. 메이저리그(MLB) 사무국이 직접 나서 당장 내년부터 ‘시간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나서면서다.

지난 9월말 갈수록 늘어지는 경기시간을 잡기 위해 존 슈어홀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구단 대표가 이끄는 ‘경기 시간 촉진 연구위원회’가 발족했다. 이들은 오프시즌 동안 내년 이후 전반적인 경기 시간 단축과 경기 속도 개선 방안 등을 포괄적으로 논의하게 된다.

◇ 강력한 경기촉진룰, 이미 실행에 들어갔다

경기시간이 3시간 이상으로 늘어지면 관중이나 시청자들의 몰입도가 현저히 떨어져 결국에는 팬들의 외면을 부추기는 흥행의 악재로 작용한다.

선수들이라고 별로 좋을 게 없다. 162경기 정규시즌 대장정에서 10분은 그냥 10분이 아니다. 경기를 거듭할수록 피로도가 배가되고 쌓여 장기적인 경기력 저하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경기촉진 및 시간단축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사무국은 두 팔을 걷어붙이고 이미 실행 작업에 들어갔다.

초시계를 꺼내든 사무국의 주도 하에 한해 최고의 가능성을 선보인 각 팀의 내로라하는 유망주들이 모여 자웅을 겨루는 가을리그인 ‘애리조나 폴리그’에서는 지난주 경기시간과 관련된 2가지 중요한 테스트가 심도 있게 진행됐다.

류현진이 마운드에서 역투하고 있다. 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첫째 주자 없을 시 투수의 투구간격을 20초 내로 엄격히 제한하는 촉진룰과 둘째 이닝교대 시간을 2분05초(앞선 이닝이 종료된 뒤 1분45초 이내에 다음 이닝 첫 타자는 타석에 들어서고 투수의 첫 투구는 2분5초 내로 실시되어야 함)로 강력하게 적용한 것이다.

투수들이 투구와 투구 사이의 간격을 줄이고 타자가 이유 없이 타석에서 벗어나는 일 등 이 2가지만 잡아도 경기가 지루할 틈 없이 역동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다만 사무국의 이런 움직임은 ‘루틴(일상의 반복)’을 중시하고 루틴 내지는 버릇에 길들여져 있는 선수들의 경기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상당히 주목되는 일이고 상상이상의 큰 변수를 불러올 만한 룰로 오프시즌 각 구단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 1950년 ‘2시간31분’ → 2014년 ‘3시간2분’

과거 ‘노마 타임’이라며 타석에 들어서기까지 많게는 수십 가지의 예비동작이 필요했던 노마 가르시아파라(41)가 아닌 이상 타자야 조금 서둘러 타석에 들어서면 그만이지만 마운드에서의 동작 하나하나가 민감하기 그지없는 투수들의 경우 꽤나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에 케빈 슬로위(30·마이애미 말린스)와 커티스 그랜더슨(32·뉴욕 메츠) 등은 “이런 게 있다면 선수노조의 목소리도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무조건 반대하자는 게 아니라 우리도 직접 참여해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내고 싶다”며 노조를 배제한 사무국 측의 행보에 공개적으로 볼멘소리를 냈다.

어쨌든 사무국은 이번 기회에 1950년대 이후 약 30% 가까이 늘어난 야구경기 시간을 반드시 잡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2014시즌 메이저리그 ‘정규 9이닝’ 기준 경기당 평균시간은 3시간2분으로 1950년대의 2시간31분에 비해 엄청나게 늘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전통의 명문구단 보스턴 레드삭스는 3시간16분이나 돼 리그 평균보다 14분이 길고 1950년대와 비교해서는 무려 45분이 늘어나 있어 내년부터 강력하게 적용될 경기촉진룰에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는 구단 중 하나다.

샘 케네디 레드삭스 구단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어떤 의미에서 최대 피해자 될 수 있음에도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새로운 세계에 적응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세상의 모든 것들이 빨라지고 있는데 마냥 고객들에게 우리의 방식에 맞추라고만 강요할 수는 없다”고 13일(한국시간) ‘보스턴 글로브’와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사실 메이저리그 규정집의 ‘룰 8.04’에 따르면 주자가 없을 시 투수는 12초 이내에 투구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한 명도 제대로 지키는 선수가 없었을 뿐이다.

◇ ‘최대 수혜자’ 류현진은 정말 빨랐다

앞으로 초시계를 지닌 심판과 사무국의 주도 아래 엄격한 경기촉진룰의 시행이 불가피하다고 볼 때 규칙에 가장 근접한 투수 즉 최대 수혜자로 다름 아닌 류현진(27·LA다저스)이 꼽혀 눈길을 모으고 있다.

‘보스턴 글로브’는 지난 ‘LA 다저스 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내셔널리그(NL) 디비전시리즈(DS)를 예로 들며 “류현진은 3차전 맞상대였던 존 래키(36·카디널스)보다 훨씬 빠른 투구간격을 보여줬다”고 되짚었다.

류현진은 약 18초를 전후해 자신의 일을 처리한 데 반해 래키는 거의 일정하게 20~22초 사이의 투구간격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심지어 래키는 주자가 있을 시 30초를 넘기는 장면도 심심찮게 나와 “그에게 룰 북에 명시된 12초 규정이란 순수한 환상이나 다름없어 큰 타격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비단 래키뿐 아니라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거의 모든 투수에게 ‘12초 투구 룰’은 언감생심이었다는 점에서 굉장한 변수를 불러올 수 있다. 일단 시행되는 20초 이내라도 마찬가지다.

관련 자료를 공개한 케네디에 따르면 2014시즌 경기당 합계 투구수는 284개로 2003년과 거의 정확히 일치함에도 경기시간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건 투수들의 잡 동작(투구간격)과 멈춤 현상이 결정적이라는 분석이다.

케네디는 “2003년 평균 투구간격은 26.4초였다. 그리고 2014년에는 29.3초로 늘어났다. 이걸 경기당 총 투구수인 284개로 계산해보면 바로 지난 10년간의 차이인 16분(13.72분)이 나타난다. 투구수가 늘고 줄어드는 문제가 아니었다. 10년간 마운드에서 상당량의 정지시간이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고 꼬집었다.

류현진의 입장에서 보면 본인 스스로가 공을 잡자마자 얼마나 빨리 다음 공을 던졌는지 구체적이고 상대적인 수치로 절감하는 부분이 돼 반갑고 흥미롭다.

작년 일반적인 메이저리그 투수의 투구간격이 약 30초에 달했다면 류현진은 절반에 가까운 18초 내로 시원시원하게 공을 던졌던 셈이어서 당장 적용될 20초 룰은 물론이고 장기적인 12초 촉진 룰에 가장 근접해있음을 공인받았다.

한국프로야구를 넘어 꿈의 빅리그에서도 최정상급인 류현진의 투구간격이 강력하게 도입될 경기촉진룰의 영향을 가장 적게 받을 공산이 커진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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