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박하다. 기발하다. 보는 내내 설렘으로 가득하다. 마치 오래전 사망선고를 받은 연애 세포가 기적처럼 되살아날 것만 같은 느낌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썸’타고 싶은 감정을 몽글몽글 피어오르게 하는, 지금껏 본 적 없는 신박한 로맨스가 극장가 관객들을 찾아 나선다.
5일 개봉하는 영화 ‘빈틈없는 사이’(감독 이우철)는 방음이 1도 안 되는 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게 된 뮤지션 지망생 승진(이지훈)과 피규어 디자이너 라니(한승연)의 동거인 듯 동거 아닌 이야기를 그린 철벽 로맨스다. 벽 너머를 오가는 기상천외한 소음전쟁 끝에 시간을 나눠 쓰는 동거 아닌 동거가 시작되고,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며 점점 미묘한 감정에 사로잡히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그렸다. 2016년 개봉한 프랑스 영화 ‘최악의 이웃과 사랑에 빠지는 방법’(감독 클로비스 코르니악)을 리메이크했다.
이 영화는 일단 소재부터 신선하다. 벽을 사이에 두고 펼치는 두 남녀의 신경전이 시종일관 웃음을 터트린다. 승진을 내쫓기 위해 귀신 소리를 내는 라니, 이에 지지 않고 시끄럽게 노래를 부르는 승진의 모습 등 벽간소음(?) 퇴치를 위한 두 사람의 눈물겨운 혈투가 빵빵 터지는 웃음을 자아낸다. 다행스럽게도 두 사람은 극적 합의에 성공해 시간을 나눠쓰는 신박한 합의안을 도출하지만, 각기 다른 상황에서 오는 예측불허 상황이 계속해서 발생하며 새로운 웃음을 만들어낸다. 그 과정에서 콩트 혹은 명랑만화 같은 느낌이 드는 구간도 있지만, 그런 요소들을 촌스럽지 않게 잘 표현했다. 특히 층간소음 문제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란 점에서 특정 장면에선 묘하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두 사람은 같은 공간을 공유하면서 점차 사이가 가까워지고, 자연스레 관계를 확장해 나간다. 그 결과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그 누구보다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이로 발전한다. 외모를 볼 수 없다 보니 서로에 대한 편견이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사람 그 자체로만 바라보는 모습이 꽤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그 중심에는 두 주연 배우인 이지훈과 한승연이 있다. 두 사람의 케미는 두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탁월했다. 마치 주거니 받거니 오랜 호흡을 맞춰온 콤비처럼 ‘찰떡 호흡’을 자랑했다. 캐릭터 싱크로율도 대단하다. 100%, 아니 200% 그 이상의 싱크로율을 보여줘 극에 한껏 몰입할 수 있었다.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허당 캐릭터인 승진 역의 이지훈은 마치 실제 본인의 모습을 작품 속에 투영한 듯했다. 말투, 표정, 행동 하나하나가 승진 그 자체였다. 과거 DSP미디어에서 쌓은 연습생 경험 덕분인지 뮤지션 지망생 역할도 충실히 해냈다. 특히 오디션 장면에서 2% 부족한 보컬을 선보이는 장면은 현실감을 높였다. 더불어 꿈을 향해 달려가는 이 시대 청춘의 모습도 공감되게 그려냈다. 그래서인지 더욱 승진의 삶을 이해하고 응원하게 됐다. 공감 가는 캐릭터를 완성한 이지훈의 연기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한승연은 공황장애를 겪고 있는 라니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몸짓, 손짓, 시선 처리까지 디테일하게 표현, 캐릭터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승진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과정도 납득 가도록 현실감 있게 연기했다. 처음엔 무심했지만, 점점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라니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표현하면서 관객들의 공감을 한껏 자아냈다.
깨알 조연군단도 빼놓을 수 없는 관전 포인트다. 먼저 ‘범죄도시3’ 초롱이로 주목받은 ‘천만 요정’ 고규필이 과일가게 사장 지우 역으로 등장해 보기만 해도 웃게 하는 치명적인 매력을 발산한다. 윤성 역의 김윤성 배우는 얼굴은 범죄형이지만 능력 있는 변호사로서 수상한 단서를 잡아내며 라니의 사건 해결을 주도하는 스마트한 면모를 뽐낸다. 이유준은 한의사 재영 역으로 본인의 병원에서 보약과 공진단을 훔치면서까지 승진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는 친근하고 정 많은 캐릭터를 완벽 소화했다. 일명 네 얼간이로 통하는 이지훈, 고규필, 김윤성, 이유준은 매 장면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관객들의 웃음보를 자극한다. 더불어 라니의 친언니 라경(정애연), 극의 유일한 빌런 동원창(임강성)도 웃음의 빈틈을 모두 다 메우며 극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영화는 두 인물을 둘러싼 다양한 에피소드를 끝없이 쏟아내며 지루할 틈 없는 112분을 완성했다. 로맨틱 코미디의 특성상 일부 장면에선 ‘유치뽕짝’한 요소도 있지만, 이지훈과 한승연 두 배우의 능청스러운 연기력이 이를 부담스럽지 않게 표현했다. 덕분에 두 시간 여 동안 기분 좋은 웃음으로 가득했다. 7월 5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