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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월드컵에서 드러난 한국 축구의 불안요소로는 크게 3가지를 들 수 있다.
우선 리더의 부재를 꼽을 수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대표팀은 신구세대가 눈부신 조화를 이뤘다. 박지성, 설기현, 송종국, 차두리처럼 20대 초반의 젊은 선수들을 비롯해 안정환, 이영표로 대표되는 중간 연령대 선수들, 맏형 격인 30대 황선홍, 홍명보, 유상철, 최진철 등이 두루 포진해 있었다. 황선홍은 공격에서, 유상철과 최진철은 수비에서 젊은 선수들의 정신적 지주가 됐다. 리베로 홍명보는 이들 전체를 조율하며 한국 축구에 안정감을 불어넣었다.
지난 2010년 남아공 월드컵까지만 해도 박지성과 이영표가 리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번 축구대표팀에는 리더 역할을 해줄 선수가 없었던 게 패인 중 하나로 분석된다. 대표팀의 간판은 가장 어린 손흥민(21)이었고, 주장도 만 25세의 구자철이었다. 이번 대표팀의 평균 연령은 만 25세로 지난 9차례의 월드컵 출전 대표팀 가운데 가장 어리다.
스포츠에서 젊은 팀의 장점은 체력인 만큼 주로 공격에서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번 축구대표팀은 조별리그 3경기에서 3골을 넣었다. 이번 월드컵에서 경기당 2.8골(양팀 합친 수치, 27일 기준)이 터진 것을 고려하면 우리 축구대표팀의 공격력은 평균에 못 미침을 알 수 있다. 수비에서도 리더의 부재, 젊은 팀의 약점을 고스란히 드러났다. 2차전 알제리가 역습해오자 한국의 수비진은 제자리를 찾지 못하며 잇따라 실점을 허용했다. 공격수를 놓치며 상대에게 빈공간을 허용하는 문제점을 반복해서 노출했다. 상대의 공격패턴이 조금이라도 빨라지거나 틀을 벗어나면 그에 노련하게 대응할 고참 수비수가 부족했던 탓이다. 게다가 대표팀에서 나이가 많은 축에 속했던 골키퍼 정성룡(29)은 쉽게 골문을 내주며 첫출전한 김승규(23)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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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골 결정력 부재도 아쉬운 대목이다. 이는 곧 간판 스트라이커의 부재로 설명될 수 있다.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29일(이하 한국시간) 칼럼에서 한국 축구의 문제점으로 세계적인 스트라이커의 부재를 언급했다. 신문은 한국에서 스트라이커의 표본을 보여준 선수가 거의 없다는 식의 분석을 내놨다. 홍명보 감독의 지지를 등에 업고 원톱으로 출전한 박주영(28)은 이번 월드컵에서 ‘슈팅 0, 도움 0’의 처참한 경기력을 보여줬다. 홍명보 감독은 월드컵 2회 출전의 박주영에게 간판 스트라이커로서의 활약을 기대했지만, 박주영은 그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는 고참 선수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만 21세로 월드컵에 첫출전한 손흥민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게 했다.
한국의 스쿼드를 살펴보면 윙플레이어들은 자원이 넘쳐났지만, 믿음직한 스트라이커는 별로 없었다. 이는 1990년대 한국 축구에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던 ‘골 결정력 부재’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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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의 강한 질타를 받고 있는 홍명보 감독의 ‘의리 축구’도 생각해볼 문제다. 한국에서 정(情) 문화는 스포츠뿐 아니라 정치, 사회 등 각 분야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홍명보 감독은 결국 ‘정(情)’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활약도나 컨디션에 관계없이 자신에게 익숙한 선수들을 기용하는 우를 범했다. 거스 히딩크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그라운드에서의 선후배 유교문화를 없앴다. 유교문화, 정문화가 축구에서는 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홍명보 감독은 박주영, 정성룡과 관련해 지속적인 기용을 고집했다. 언론과 여론의 빗발치는 비난에 결국 3차전 이들 대신 김신욱(26), 김승규 카드를 꺼내 들었다. 벨기에와의 3차전에서 김신욱, 김승규는 적극적인 움직임과 선방으로 대표팀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감독의 판단에 따라 경기력이 크게 좌우될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한국 축구의 불안요소는 크게 이 세 가지로 압축된다고 할 수 있다. 세 가지에는 한국 축구의 육성과 한국 특유의 정서적인 문제까지 내포돼 있다.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서 시급히 해결돼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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