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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10년 김경태의 담담한 소회와 아빠로서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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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영 기자I 2017.06.30 12:52:03

2007년 '괴물 루키' 탄생...한국과 일본 제패 성공 신화 "시선은 여전히 큰 무대"..."아이들에게 골프는 직접 안 가르칠 것"

김경태는 꼭 10년 전인 2007년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그동안 잠시 슬럼프를 겪기도 했지만 성공적인 골프인생을 살았다고 자평했다. KPGA 민수용 제공 

[이데일리 골프in 김세영 기자]꼭 10년 전인 2007년 국내 골프계는 ‘괴물 신인’의 등장으로 들썩였다. 김경태(31.신한은행)였다. 그는 아마추어 시절 일본아마추어 선수권을 2회 연속(2005~2006년) 제패했고, 2006년에는 쟁쟁한 프로 선배들을 제치고 두 차례(포카리 에너젠 오픈, 삼성베네스트 오픈)나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도하아시안게임에서는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탔다.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2007년 프로 데뷔전(토마토저축은행 오픈)에서 정상에 오른 김경태는 그해 3승과 상금왕, 덕춘상(시즌 평균 최저타수상), 대상, 신인상을 차지하며 화려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2008년부터 일본으로 눈을 돌린 김경태는 2010년에는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일본프로골프투어(JGTO) 상금왕에 올랐다. 잠시 슬럼프를 겪기도 했던 그는 2015년 5승과 함께 상금왕에 오르며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일본 투어가 잠시 쉬는 틈을 타 국내 대회에 출전 중인 김경태를 28일 전북 군산 골프장에서 만났다.

- 2007년 데뷔했으니 올해가 꼭 10년이 됐네요. 그동안 한국과 일본에서 상금왕을 차지하는 등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물론 중간에 잠시 슬럼프도 있었고요. 지난 10년을 스스로 되돌아보면 어떤가요.

“조금 빨리 지나간 것 같아요. 국가대표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까 처음 데뷔했을 때는 아마추어 시절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저에게는 첫 우승이 굉장히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주목을 많이 받았는데 우승 덕에 프로 무대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죠. 사실 아마추어 때 너무 잘 하다보니까 프로에 가서도 잘 할 수 있을까라는 부담감이 심했거든요. 그런데 생각보다 잘 풀려나갔던 같고요. 물론 힘든 시절도 있었죠. 지금까지 많은 대회를 뛰었는데 좋았던 때보다 안 좋았던 때가 많았던 것 같아요. 모든 선수들이 마찬가지 일 거예요. 좋은 시즌을 보냈다고 하더라도 컨디션이 안 좋았을 때가 많아요. 그 시간을 잘 견디는 게 선수들이 해야 할 일이죠. 그러면서 바쁘게 10년이 지났어요. 그래도 지금까지 보면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10년 동안 좋은 시간들을 보낸 것 같아요. 결혼도 하고 아이도 생기고요.”

- 10년 동안 투어 생활의 점수를 준다면 스스로에게 몇 점이나 주고 싶나요.

“대략 80점 정도는 줄 수 있을 것 같네요. 항상 제 능력 이상으로 많은 걸 이뤘다고 느끼고 있어요. 반면 미국에 갈 수 있었는데 못 갔던 건 아쉬워요. 미국에 진출하면 초반에는 힘들겠지만 거기서 부딪치다 보면 분명히 제 실력이 향상되어 있을 거고, 직접 거기서 살아남는 방법도 터득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몇 번의 기회를 놓쳤죠. 그래도 잘 한 부분이 많은 것 같아서 80점 정도.”

- 미국 진출과 관련해 가장 아쉬웠던 때는 언젠가요.

“가장 아쉬웠던 해는 역시 2011년인 것 같아요. Q스쿨을 거치지 않고 갈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죠. 사실 Q스쿨에 가게 되면 정말 어렵다고 들었는데 그 해에는 제가 상금으로 갈 수 있었거든요. 상금이 약간 부족해서 실패했는데 사실 마지막 4개 대회를 못 나갔어요. 나가기만 했으면 충분히 찬스가 있었어요.”

- 그 당시 4개 대회를 못 나갔던 이유는 뭔가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어요. 4개 대회에 초청은 다 받았는데 타이틀 방어 대회도 있는 등 여러 이유로 출전을 못했죠. 그 해 컨디션도 좋았고, 나이도 어렸을 때라 정말 너무 아쉬워요. 그런 기회가 저한테 다시 올까 싶을 정도로 아쉬움이 컸어요. 그때 이후 심리적으로도 힘들었고요.”

- 그래서 이후 슬럼프가 온 건가요.

“아무래도 그렇다고 봐야죠. 물론 그 다음에도 랭킹이 높아 미국 대회에 많이 출전했지만 아무래도 한 번 기회를 놓치다 보니까 꼭 잡아야 된다는 부담감이 있었어요. 처음에는 배운다는 마음으로 가서 성적이 좋았는데 이제는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가다 보니까요. 또한 투어 멤버가 아니다 보니 대회 수에도 제한이 있었고요. 꼭 그 대회에서 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쟁쟁한 선수들 사이에서 해야 한다는 부담감 등이 작용했죠. 목표 의식이 없어지다 보니까 거기서 좀 힘들었던 것 같아요. 잘 안 되기 시작했죠.”

김경태의 골프 인생 중 2014년은 가장 힘든 시기였다. 그해 일본에서 20개 대회에 참가해 한 번도 톱5 안에 입상하지 못했다. 2013년에도 ‘무관의 해’를 보냈지만 당시에는 준우승 1회를 포함해 우승 기회도 여러 차례 있었다.

- 그런 후 2015년 일본에서 5승을 거두면서 부활을 했어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2014년도가 제 프로 생활 중 성적이 가장 좋지 않았어요. 운동선수들에게는 마음가짐이 중요한데 일본 투어도 오래되니까 마음이 편해지고, 해이해 진 거죠. 그래서 6년 정도 같이 해온 캐디도 바꿨어요. 저에게는 가족과 같은 분이었거든요. 이후 제가 운전도 직접 하면서 투어를 다녔어요. 다시 처음부터 한다는 마음으로 해보자 그랬죠. 마침 그해(2015년 1월) 결혼도 했고요. 다시 정말 신인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이었어요. 기술적인 도움도 받긴 했지만 처음 일본에 왔던 마음가짐으로 하다보니까 확실히 목표 의식도 생기더라고요. 그런 게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김경태가 인터뷰를 하는 도중 웃고 있다. KPGA 민수용 제공 

- 작년에 이어 올해도 PGA 투어에 도전한다고 했어요. 선수들에게 PGA 투어란 어떤 의미일까요.

“글쎄 뭐, 다른 종목도 마찬가지겠지만 결국은 최고의 선수들과 같이 경기를 할 수 있다는 게 큰 것 같아요. 운동도 그렇고,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이 길에는 끝이 없잖아요. 물론 본인의 실력을 빨리 파악을 하고, 자신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목표를 가지고 도전해야 한다는 생각을 몇 년 전부터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 게 없으면 아무래도 마음이 흐트러질 수 있거든요. 제 최종 목표는 미국으로 잡았는데 그런 최고의 무대에 가서 우승을 한다면 정말 성취감도 클 거고요. 골프를 하다 보면 많을 걸 느껴요. 제가 처음에 미국 몇 개 대회만 출전하고 다시 한국이나 일본에 돌아오면 코스가 쉽게 느껴지더라고요. 잘 안 되는 것 같은데 성적은 상위권에 있어요. 한국이나 일본이 만만하다는 게 아니라 큰 무대를 경험하면서 확실히 제 실력이 늘었다는 걸 느꼈어요. 그런 순간에 ‘아, 가야겠구나’라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힘들더라도 큰 무대에서 살아남으면 ‘저도 쟁쟁한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구나’라는 느낌도 들 거고요. 그런 부분에서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아요.”

- 그동안 PGA 투어 대회에 많이 출전했잖아요. 그 선수들과 경기를 하면서 앞으로 어떤 부분을 좀 더 보완해야 한다고 느낀 게 있나요.

“제 경우에는 사실 많은 분들이 ‘거리’라고 말씀하세요. 물론 거리가 많이 나가면 유리한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제 생각에는 거리보다는 그린 주변 플레이인 것 같아요. 정말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메이저 대회는 거리가 필요해요. 러프에서는 힘도 있어야 하고요. 그런데 일반 대회에서는 거리가 크게 중요하지 않더라고요. 제 거리로도 정확히만 보낸다면 충분히 파 온을 할 수 있어요. 항상 롱 아이언이나 우드를 치는 것도 아니고요. 저도 충분히 쇼트 아이언으로 공략할 홀들이 많아요. 저보다 거리가 짧은 선수들도 많이 봤고요. 그래서 거리는 크게 신경 안 써요. 대신 그린 주변 어프로치나 퍼팅, 그리고 현지 분위기 적응 등이 중요하다고 봐요.”

- 지난해에도 일본에서 3승을 거뒀는데, 올해는 아직 우승이 없어요. 올해 컨디션은 어때요.

“올해는 초반에 조금 안 좋았는데 우승만 없을 뿐 그렇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작년에는 출발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비교가 조금 되긴 하죠. 하지만 재작년에 5승 했을 때를 되돌아보면 꼭 그렇지 만도 않거든요. 그때도 6월에 첫 우승을 했어요. 그때와 올해가 조금 비슷해요. 올해도 뭔가 조금 조금씩 안 풀리고 있어서 그렇지 나쁘진 않다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투어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까 조급증 같은 건 없어진 것도 있고요. 계속 준비하고 기다리면 언젠가 기회는 올 거라고 믿어요. 골프는 그걸 잡느냐 못 잡느냐의 게임이기 때문에 기다려 봐야죠.”

- 지난 10년간 많은 걸 이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최고의 순간을 꼽는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모든 우승이 다 의미가 있지만 최근에 기억에 남는 우승은 2015년 첫 우승했던 대회에요. 타일랜드 오픈요. 2014년에는 사실 우승 기회도 없었거든요. 워낙 못하고 있을 때 우승한 거라 가장 기억에 남아요. 프로 데뷔전 우승도 아직 생생하게 기억이 나긴 하는데 그래도 힘든 시절은 아니었거든요. 계속 잘 하고 왔던 흐름을 이어갔을 때고요. 그래서 타일랜드 오픈이 각별해요.”

- 일본에서 13승을 하고, 국내에서는 아마추어 시절 2승을 포함해 6승을 거뒀어요. 우승을 한 후 혹시 눈물을 흘린 적 있나요.

“울었던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모든 분들이 우승을 하고 나면 어떻게 할 줄 모를 거라고 생각하시는데 그 희열을 느끼는 순간은 되게 짧아요. 그 후에는 덤덤하고요. 저는 예전부터 그런 생각을 했어요. 우승하고 그 다음 주에 컷을 당하는 선수들이 굉장히 많아요. 왜냐하면 인터뷰도 해야 하고 자기 시간도 없거든요. 그런 거에 지치고 긴장감도 떨어지는데 그러면 안 되겠다고 예전부터 생각을 해서 그냥 끝나고 나면 바로 잊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우는 등 이런 감정은 느껴본 적이 별로 없어요.”

- 원래 성격이 그런가요. 아니면 골프를 하면서 터득한 건가요.

“아무래도 골프를 하면서 성격이 여러 번 변했어요. 이 운동이 워낙 멘털이 중요해요. 온통 스윙이나 퍼팅 생각뿐일 때가 있는데 그럴 당시에는 보통 성적이 안 좋을 때에요. 저도 굉장히 부정적이었던 성격도 있었고, 어릴 때 소심하기도 했지만 운동을 하면서 변했던 것 같아요.”

김경태는 훗날 "꾸준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KPGA 민수용 제공 

- 훗날 은퇴 무렵 김경태 하면 어떤 선수로 기억이 남고 싶나요.

“아직 그 정도까지는 생각을 안 해 봤어요. 예전에 비해 여유가 많이 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그 정도 앞까지 볼 여유는 없는 것 같아요. 여전히 ‘어떻게 하면 제 실력이 좀 더 발전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은퇴 무렵을 생각한다면 글쎄요. 제가 큰 특징이 없잖아요. 장타를 치는 것도 아니고 퍼팅을 엄청 잘 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냥 조금씩 좋은 점들이 있는, 특징이 없는 정도에요. 임팩트가 없는 거죠. 지금까지는 슬럼프가 있기도 했지만 다른 선수들에 비하면 큰 무리 없이 10년 동안 꾸준하게 온 것 같아요. 은퇴 무렵에도 꾸준한 선수였다는 느낌을 받았으면 해요. 우승도 좋지만 계속 상위권에 있는 선수가 되고 싶거든요. 제 스타일도 살짝 그렇고요. 이 시합 버리고, 다음 시합 우승, 뭐 이런 스타일이 아니고요. 저한테 맞는, ‘항상 꾸준한 선수였다’는 기억. 그거 괜찮은 거 같아요.”

- 어린 시절에 혹시 롤 모델이 있었나요.

“롤 모델보다는 저희 나이 대에는 모두 타이거 우즈였죠. 제가 골프를 시작할 무렵 우즈가 프로 데뷔를 했잖아요. 우즈를 계속 보면서 자랐죠. 우상이었다고 할 수 있죠.”

- 지금도 기량을 부러워하는 선수가 있나요.

“그 때 잘 하는 선수들의 플레이는 꼭 챙겨 봐요. 그 선수들이 잘 하는 부분요. 뭘 어떻게 하는지 보려고 하는데 부럽다는 느낌은 없는 것 같아요. 골프는 개인 운동이다 보니까 남이 못해서 나에게 이득이 될 일은 없거든요. 확실히 투어 경력도 오래 되고, 나이도 삼십을 넘어가면서 남을 의식하는 게 더 없어진 것 같아요. 예전에도 별로 없었는데 더 그런 것 같아요.”

- 그러면 다른 선수들의 플레이를 방송 등을 통해 살펴보나요.

“라이브로 챙겨 보지는 않고, 재방송으로 많이 봐요. 특히 제가 나갔던 코스에서 다른 선수는 어떻게 공략을 하는지를 보죠. 스윙적인 부분보다는 어떤 식으로 플레이를 하나, 저런 상황에서 나라면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등을 고민하죠.”

- 남들에 비해 성공적인 골프 인생을 살았어요. 스스로 판단했을 때 본인은 노력형인가요, 천재형인가요.

“아버지가 골프를 하셨으니까 재능을 어느 정도 물려는 받았겠죠. 그런데 골프가 사실 운동 신경이랑 상관이 없더라고요. 골프 잘 하는 선수들과 축구도 해보고, 족구도 해봤는데 그렇게 공을 멀리 치고 잘 하는 선수들도 족구를 하면 아예 공도 못 차는 선수들도 있어요. 그래서 ‘운동신경이랑 상관이 없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저는 운동도 좋아했지만 노력을 남들에 비해 안 했던 건 아니에요. 프로가 되고 나서 남들보다 체력이 좋은 편이 아니어서 많은 시간을 연습을 하지는 못했지만 제 나름대로 짧은 시간 안에 해 왔던 것 같고요. 어쨌든 재능은 아닌 것 같아요.”

- 골프 선수라는 직업의 장단점은 뭐가 있을까요.

“일단 장점은 잔디에서 모든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면서 한다는 거죠. 이렇게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직업이 없다고 생각할 때가 많아요. 물론 잘 됐을 때 얘기죠. 이 운동을 잘 선택했고, 좋은 직업인 것 같아요. 하지만 단점도 있죠. 일본이 아무리 가깝다고 하더라도 일단 국내가 아니니까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어요. 친구들도 있긴 한데,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잘 될 때보다 안 될 때가 훨씬 많거든요. 그럴 때는 혼자 방에 있는데, 이제는 그런 시간에 익숙해져 있는 것 같아도 힘들 때가 있어요. 대신에 다른 직장생활에 비해 제가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봤을 때는 좋은 직업인 것 같아요.”

- 플레이가 잘 안 되고, 혼자 집에 있을 때 외로움이나 경쟁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나요.

“예전에는 사실 특별한 게 없었어요. 지금은 동료들과 얘기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말을 많이 하다 보면 풀리죠. 같이 대회에 참가했던 선수들이니까 서로에 대한 상황도 잘 알고, 잘 이해하고요. 지금은 예전같이 다음날 아침까지 화가 나는 그런 경우는 없는 것 같아요. 어릴 때는 화가 안 삭혀지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우승을 못했을 때도 그렇고, 마무리가 잘 안 되었을 때도 그렇고요. 지금은 말로 풀어요.”



현재 일본을 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김경태는 “집에는 짧으면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대략 한 달에 한 번꼴로 간다”고 했다. 지난 3월에는 둘째를 얻었다. “둘째는 이제 100일 조금 넘었어요. 첫 째는 이제 세 살이 됐는데 ‘아빠, 아빠’ 그래요. 정말 보고 싶죠.” 아이들에게 골프를 시키겠냐는 질문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오”라고 답했다.

“아이들에게는 절대로 골프를 안 시킬 거예요. 제가 해 봤으니까 얼마나 힘든지 알잖아요. 취미로 배운다고 해도 제가 가르치지는 않으려고요. 그래도 저희 아버지나 아내, 저, 그리고 아이 둘이 함께 라운드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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