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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오른쪽 라인을 달리는 ‘10년차 선후배’의 대화는 훈훈했다. 8회 연속 올림픽행의 꿈을 이룬 이슬찬(23·전남)이 리우올림픽 최종예선 종료 직후인 지난달 31일 전남의 전훈 캠프에 복귀했다.
1일 밤(한국시각) 태국 방콕 SC파크호텔에서 ‘국대 출신 캡틴’ 최효진(33·전남)과 ‘올대’ 이슬찬이 나란히 앉았다.
최효진은 “슬찬이는 내가 제일 예뻐하는 후배”라며 웃었다. 이슬찬은 “효진이형은 고등학교 때부터 닮고 싶은 롤모델이었다”고 화답했다. “형이 우리팀에 온다고 했을 때 ‘어떻게 효진이형을 영입했지? 많이 배울 수 있겠다’ 했다”며 웃었다.
좋아하는 선수를 묻는 질문에도 이슬찬은 망설임없이 “효진이형!”을 외쳤다. 최효진이 쑥스러운 듯 후배의 어깨를 슬쩍 두드렸다. “형, 진짜에요. 고등학교(광양제철고) 때 인터뷰에서도 상주상무 최효진 선수가 롤모델이라고 했다니까요.”
올림픽대표팀 오른쪽 수비수 이슬찬은 ‘롤모델’ 최효진이 전남에 온 이후 폭풍성장했다. 3년간 선발이 전무했던 이슬찬은 지난시즌 무려 22경기를 뛰었다.
리우올림픽 최종예선,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 챔피언십에서 주전으로 우뚝 섰다. 2개의 도움을 기록했다. 카타르과의 4강전(3대1 승) 후반 43분 칼날같은 문전 킬패스로 권창훈의 결승골을 도왔다. 리우행을 이끌었다.
최효진은 이슬찬의 올림픽대표팀에서의 활약을 가장 기뻐한 선배 중 하나다. “뿌듯하다.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았다. 3년간 묵묵히 노력했다. 이런 선수는 많지 않다. 흔들리지 않고 의욕적으로 꾸준히 준비했다. 포기하지 않은 점이 대단하다”
이슬찬은 2014년말 전남과의 계약이 만료됐다. 전남을 떠날 뻔했다. 노 감독이 구단에 1년 재계약을 요청했다. 4월초 전북과의 첫 홈경기는 기회였다. 에닝요와 한교원을 꽁꽁 묶어내며 승리했다.
최효진에게도 기억에 남는 경기다. “슬찬이와 내가 함께 라운드 베스트일레븐에 선정됐었다”고 했다. “처음에 슬찬이가 들어왔을 때는 작은 것까지 세심하게 말해줬다. 전북전에서 큰 틀을 잡은 후로는 말 안해도 알아서 잘했다. 이해력이 빠르다. 이젠 ‘상대선수의 장단점, 이렇게 하자’ 정도만 얘기한다.”
최효진은 “우리 둘은 스타일이 비슷하다. 빠르고 다부진 축구를 한다”고 분석했다.
이슬찬의 ‘롤모델 예찬’이 재개됐다. “효진이형은 정말 빠르고 키도 저처럼 크지 않은데 공격적으로나 수비적으로나 정말 잘하신다. 국가대표도 하셨고, 포항에선 스트라이커로 뛰면서 골도 많이 넣으셨다.” 최효진이 손사래쳤다.
‘닮은꼴’ 10년차 선후배는 이제 제법 친하다. 이슬찬은 “TV에 나오는 형이 같이 축구게임도 하고, 밥도 사주고 한다. 이젠 ‘동네형’이 됐다”고 했다. “나는 ‘동네형’이 더 좋아.” 최효진이 미소 지었다.
국대 출신 선배로서 최효진은 ‘올대 후배’이슬찬에게 따뜻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동안 지켜보면 올림픽 갔다와서 계속 좋은 모습을 이어가는 선수들도 있지만, 그냥 평범하게 가는 선수들도 있다. 성인축구와는 다른 부분이 분명히 있다. 지금처럼 꾸준히 노력하고 겉멋 들지 않고 매년 성장해줬으면 한다”고 했다.
“안주하는 순간, 선수는 끝”이라는 말에 이슬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효진이 자신의 경험을 소개했다. “나 역시 잘 나갈 때 당연히 ‘내가 최고’라 생각하고 안주하는 시기가 있었다. 그때 만약 안주하지 않고 계속 도전했다면 더 좋은 위치에 갈 수 있었을 것같다.”
최효진은 이슬찬의 국가대표 가능성도 긍정했다.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같은 연령대에서 올림픽대표팀 붙박이를 하고 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고 했다.
최효진은 2008년, 첫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만 25세 때의 일이다. ‘롤모델’ 최효진의 길은 이슬찬이 가야할 길이다. “25살이면, 2년밖에 안남았네요”라고 확인했다. “효진이형처럼, 아니 효진이형보다 더 오래 뛰고 싶다”는 꿈을 이야기했다.
작은 키를 극복하는 스킬, 스피드 이야기가 나오자 ‘선배’ 최효진이 모처럼 발끈했다. “작은 키라도 1m70대와 1m60대는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나는 정확하게 1m72다. 슬찬이는 1m70으로 나오던데 좀 늘린 것같다”며 강력한(?) 의혹을 제기했다. 이슬찬이 푸핫, 웃음을 터뜨렸다.
절친 선후배지만 포지션이 겹친다. 새 시즌에도 경쟁을 피할 수 없다. 최효진은 “경쟁은 팀에 도움이 된다. 경쟁해야 한다. 우리 둘다 팀에 좋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존의 가능성도 언급했다. “슬찬이는 아래위, 좌우를 모두 소화해낼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라고 했다.
이슬찬 역시 “경쟁도 있겠지만, 지난 시즌 효진이형과 오른쪽 위아래로 함께 서는 경우도 많았다. 어느 포지션이 주어지든 많이 뛰고, 올림픽에 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최효진-이슬찬이 지키는 전남의 오른쪽은 신구 조화, 실력면에서 리그 최강급이다. 최효진은 “평가는 밖에서 하겠지만, 우리 오른쪽 사이드에 대한 자신감은 확고하다. 저희는 자신 있다”고 했다.
강력한 오버래핑, 날선 킥을 지닌 ‘팀플레이어’인 두 선수의 공격포인트에 대한 생각 역시 짜맞춘 듯 같았다. “공격포인트 자체보다는 팀을 위해, 팀이 필요로 할 때 도움이 되는 결정적인 장면을 만들고 싶다.”
휴식시간이면 ‘위닝일레븐’ 등 축구게임을 함께 즐긴다. 최효진은 “슬찬이가 제일 잘한다. 선배라고 봐주지도 않더라”며 웃었다.
호텔방으로 올라가던 최효진이 이슬찬에게 슬쩍 ‘팀플’을 제안했다. “새로 온 유고비치가 완전 잘한대. 이따 전화해. 우리 같이 한번 붙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