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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 전 감독은 2일 서울 용산구 소월로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에서 가진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 레전드투어 인 코리아’ 공식 기자회견에서 현재 한국 축구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이 행사 자체는 독일프로축구연맹이 차범근 전 감독의 업적을 기리고 분데스리가를 홍보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하지만 한국 축구가 어려운 현실에서 공개 석상에 나타난 차범근 전 감독의 표정도 밝을 수 없었다.
차범근 전 감독은 “요즘 축구선수 차범근이라고 말하기 민망하다. 아픈 현실 앞에서 축구인의 한 사람으로 죄송하고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다. 면목이 없다”고 솔직하게 밝혔다.
“분데스리가는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이고 건강한 리그다. 세계 축구의 실질적인 리더로서 독일 축구가 쌓은 경험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달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다”며 “많은 축구팬들이 한국축구를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상황에서 분데스리가와의 직접적이고 친밀한 교류가 필요하고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에 레전드 역할을 선뜻 받아들였다”고 덧붙였다.
차범근 전 감독은 분데스리가가 겪어온 과정을 설명하며 한국 축구의 변화를 강조했다.
그는 “독일은 2000년 유럽선수권대회에서 조별리그 탈락을 경험한 뒤 큰 위기에 빠져 진통을 겪었다. 하지만 이후 비판 과정을 거치면서 오늘날 건강한 시스템을 갖췄다”며 “우리도 새로운 시스템 구축에 깊은 고심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우리는 축구 선수가 되겠다는 어린이들이 줄고 팬들도 관심을 거두고 있다. 월드컵에 9회 연속 진출했는데도 상황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며 “언제까지 히딩크 감독을 그리워하고, 외국인 감독이 와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도 젊고 우수한 지도자들에게 기회를 주면서 시스템 구축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차범근 전 감독은 1970~80년대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며 이름을 날린 것에 대한 자부심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65년간 살아오면서 내가 가장 잘한 결정이 바로 40년 전 분데스리가에 도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아내가 당시 전 재산인 아파트를 팔아서 독일 체류 생활비를 도와줄 테니 1년 동안 죽으라 뛰어서 벤치 신세를 면하라고 얘기했다”며 “그때 나는 아무것도 없는 가난뱅이 축구선수였다. 잃을게 없었기 때문에 홀가분하게 도전할 수 있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아울러 ”분데스리가는 내게 너무 많은 것을 줬다. 지금도 고향처럼 기대고 있다“며 ”지금 한국 축구가 어려운 상황에서 독일축구협회에 많은 것을 기대하고 의지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차범근 전 감독은 ”K리그는 수년간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다. 2002년의 꿈같은 기억은 아직도 팬들로 하여금 기대를 버리지 못하게 하고 있다. 지금은 현실로 돌아와 꿈을 깨고 준비해야 하는 시기다“고 강조했다.
이어 ”독일은 다른 리그처럼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슈퍼스타를 영입하기보다 체계적이고 내실이 있는 관리를 하고 있다. 그런 자부심과 자신감이 충만하다. 분데스리가 팀은 물론 작은 마을의 작은 팀에서도 느껴진다“며 ”우리나라도 그 자부심을 빨리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차범근 전 감독은 ”일본은 조직적으로 선진시스템 배우고 일본화하는데 노력했다. 우리 아이들이 일본처럼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교육을 받는다면 지금보다 훨씬 잘할 것이다“며 ”우리는 굽히지 않고 버티는 강인함을 타고났다. 축구를 하기에 적합하고 긍정적이다. 독일인의 씩씩함과 투쟁능력과 비슷하다. 그래서 독일 축구가 우리 몸에 가장 맞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차범근 전 감독은 지난 8월 분데스리가가 선정한 ‘분데스리가 레전드 네트워크 앰배서더’에 이름을 올렸다. 독일프로축구연맹은 2일부터 4일까지 국내서 열리는 홍보행사를 갖고 이날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분데스리가 우승 트로피인 ‘마이스터 샬레’도 공개됐다.
차범근 전 감독은 4일 서울월드컵 경기장 팬타지움에서 독일프로축구연맹이 주최하는 분데스리가 뷰잉파티에 참석해 토크쇼, 경기 시청, 사인회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