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의 `피에타`.."자비를 베푸소서, 날 포함한 것"

최은영 기자I 2012.07.19 23:09:10

19일 성당서 새 영화 제작보고회
"우리는 모두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

김기덕 감독의 새 영화 ‘피에타’ 제작보고회가 19일 오후 서울 정동 서울주교좌성당에서 열렸다. 김기덕 감독은 세계 3대 영화제를 석권한 거장으로 ‘피에타’가 그의 열여덟 번째 작품이다.(사진=한대욱 기자)
[이데일리 스타in 최은영 기자]김기덕 감독이 오랜 침묵을 깨고 다시 대중 앞에 섰다.

“영화를 찍고 싶었습니다. 좋은 영화, 재밌는 영화”

4년 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보인 김기덕 감독의 첫마디는 그랬다. “고맙다”는 인사를 거푸 했다. “먼 곳까지 찾아와줘서, 영화에 관심을 둬줘서, 질문을 해줘서, 영화에 투자를 해줘서, 장소를 빌려줘서 감사하다”고 연방 고개를 숙였다. 그는 더는 숨지도 피하지도 않았다. 모든 질문에 성심성의껏 진솔하게 답했다.

김기덕 감독의 열여덟 번째 영화 ‘피에타’ 제작보고회는 특이하게 성당에서 열렸다. 때문일까.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고해성사처럼 들렸다.

새 영화를 극장에 걸기까지 4년의 세월이 걸렸다. 2008년 ‘비몽’이 끝이었다. 김기덕 감독은 이후 ‘아리랑’ ‘아멘’을 찍기도 했지만 공식 상영은 하지 않았다. 극영화는 실로 오랜만이다.

영화 ‘피에타’는 악마 같은 남자 강도 앞에 어느 날 엄마라는 여자가 찾아오며 이들 두 남녀가 겪게 되는 혼란과 잔인한 비밀을 그린 작품. 영화 제목인 피에타는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란 뜻으로, 성모 마리아가 죽은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나 조각상을 일컫는다.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는 누구를 위한 구원인가. 19일 오후 서울 정동 서울주교좌성당에서 열린 ‘피에타’ 제작보고회 현장을 김기덕 감독 이야기를 중심으로 지상 중계한다.

- 관객에게 4년 만에 선보이는 영화다.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 소규모로 ‘아리랑’ ‘아멘’을 찍었지만 좋은 배우, 스태프들과 영화를 찍는 건 4년 만이다. 영화를 찍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찍지 못했다. 다음에 영화를 하면 좋은 영화, 의미 있는 영화,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 영화 제목을 ‘피에타’로 지은 까닭은.

▲ 무게가 있는 만만찮은 제목이다. 여러 제목 중에 ‘피에타’로 정한 것은 자비를 베푸소서 라는 의미 때문이었다. 현재를 사는 우리는 모두 신 앞에서 자비를 빌어야 하는 존재가 아닌가 싶다. 현대의 모든 큰 전쟁부터 작은 일상의 범죄까지,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모두 공범이며 죄인이다.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다. 극단적인 개인주의, 개인주의적 자본주의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의미로 만들었다.

- 조민수와 이정진, 캐스팅 이유는.

▲ 조민수는 오래전부터 팬이다.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배우란 것을 느끼고 있었다. 같이 작업하면서는 더욱 놀랐다. 장면 하나도 연기에 A안, B안, C안이 있을 정도다.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현장에서 한순간에 토해내는데 정말 훌륭한 배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정진은 백지 같은 배우다. 겉으로는 강하지만 안으로는 유아적인, 강도의 캐릭터를 너무도 잘 표현해줬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 다음에도 또 같이 작업을 하겠나.

▲ 단역도 많으니까.(웃음) 한국은 중견연기자, 허리가 좋다는 생각이다. 이런 훌륭한 배우들을 끌어내 영화를 찍는다는 건 축복이다. 조민수와는 그런 의미에서, 이정진은 백지의 영역이 아직 남았다는 생각이 들어 도전해보고 싶다.

- 국내보다 해외에서 인기가 더 좋다고 생각하나.

▲ 그렇다. 개인적인 생각보다, 내가 만든 영화들 ‘빈집’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등이 프랑스와 미국 등 해외에서 흥행이 더 잘됐다. 무엇보다 외국에서는 내 영화가 예술영화가 아니라 상업영화로 개봉된다. 프랑스 거리에 나가면 사인 요청을 받기도 한다. 고마운 일이지만 그 사실만으로 행복하기에는 좀 슬픈 것 같다. 베니스영화제에서 ‘빈집’으로 감독상을 탔을 때 학생들이 주는 상, ‘작은사자상’도 받았다. 이탈리아 영화 동아리에서 영화를 보고 주는 상이다. 이탈리아 고등학생도 이해하는 영화를 왜 한국에서는 이해를 못 할까 싶어 서운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내 영화를 불법 다운로드나 비디오로는 많이 보지 않을까. 적어도 그런 관객이 50만 이상은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사실 많은 분이 나에게 깊이 애정을 갖고 있다는 걸 안다. 한국에서도 내 영화를 좋아하는 때가 왔으면 좋겠다.

- 전작들을 보면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작품에도 야한 코드가 있다. 이유는.

▲ 나는 그것이 왜 꼭 나누어져야 하는 건지 배우지 못했다. 종교, 사랑, 정치, 경제가 다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 안에 무엇 때문에 무엇이 빠지고, 무엇 때문에 무엇이 들어가야 한다는 선입견이 내겐 없다. 종교야말로 인간과 밀접한 사랑의 표현이 필요하지 않나. 나는 섹스도 하나의 기도일 수 있다고 본다.

- 두문불출하다 오랜만에 공식석상에 나왔다.

▲ 지난해 칸에서 한국 기자들을 피하고 인터뷰를 거절하면서 속으로는 마음이 매우 아팠다.(김기덕 감독은 다큐멘터리 영화 ‘아리랑’으로 지난 2011년 칸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돼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분들이었지만 제 신념에 따라 발언을 하지 않았었다. 감독으로서 세운 두 가지 원칙이 있다. 하나는 영화로 말해야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자기 생각을 안 들켜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머리를 기르는 것처럼 내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고집스러운 면이 많았는데 지금은 ‘내 생각을 100퍼센트 객관화하거나 동의를 구하려 하지 말자’ 나 자신에게 주문한다. 물론 또 언제 변덕을 부려 숨을지는 모르겠다.

-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영화 제목이 자신에게 하는 말은 아닌가.(김기덕 감독은 한때 후배 장훈 감독과 갈등을 겪은 바 있다)

▲ 물론 나도 포함됐다. 좋아하는 말이 있는데 ‘과거로 돌아가지 말고, 미래를 기다리지 말고, 현재를 놓치지 말자’다. 이 말을 최근 3년간 되뇌며 살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만 생각한다. 10대에만 성장통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인생 전반에 성장통이 있다.

김기덕 감독과 주연배우 조민수, 이정진이 19일 오후 서울 정동 서울주교좌성당에서 열린 제작보고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한대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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