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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데일리 스타in 정철우 기자] 류중일 삼성 감독은 선수들의 실패에 대해 좀처럼 직접 질책을 하지 않는다. 특히 한국시리즈 들어서는 좀 더 신경을 쓰고 있다.
그러나 1차전이 끝난 뒤엔 한 선수에게 한마디를 지적하고 넘어갔다. 1차전 8회 번트를 성공시키지 못한 강봉규에 대해서였다. 삼성이 2-0, 살얼음 리드를 하고 있던 상황. 그러나 강봉규는 1,2구 번트 사인서 버스터 동작을 취하다 성공시키지 못했고 결국 병살타로 물러났다.
초구, SK는 100% 번트 수비로 압박해왔다. 그러나 두번째 공엔 압박만 하는 척 한 뒤 정상 수비 위치를 취했다.
류 감독은 "100% 번트 수비가 나온 초구에 버스터 동작을 취한 건 맞다. 하지만 2구째엔 SK 수비가 정상으로 돌아갔다. 그땐 버스터로 전환하지 말고 그냥 댔어야 한다. 이기기는 했지만 그런 미스가 없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마디 했다"고 털어놓았다.
단순히 번트가 아니라 그 속에서 작은 움직임까지 놓치지 않으려는 삼성의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
같은 번트 사인이 나와도 상대 수비의 움직임에 따라 순간적으로 변화를 주는 것이 한국시리즈를 임하는 삼성의 야구다. 그만큼 세밀하게 상대를 압박할 카드를 준비했다는 뜻이다.
그만큼 SK를 무너트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촘촘하게 짜여진 SK 조직력은 상대에게 좀처럼 틈을 허용하지 않는다. 반대로 틈이 보이면 매섭게 파고드는 것이 SK 야구다.
28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3차전은 왜 삼성이 보다 세밀한 준비를 해야 했는지, 또 준비한 것을 얼마나 잘 풀어가야 하는지를 보여준 경기였다.
0-0으로 맞선 4회초, 삼성은 무사 1,2루 찬스를 잡았다. 두명의 타자가 내리 볼넷으로 출루한 상황. SK를 압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다음 타자 신명철에겐 번트 사인이 나왔다. SK도 정상 번트 수비였다. 초구는 파울.
문제는 2구째에 발생했다. SK 투수 송은범이 던진 볼을 신명철이 골라내는 사이, 2루 주자 박석민이 2,3루 사이에 갇혔고, 결국 3루로 내달리다 아웃되고 말았다.
잘,잘못을 따지자면 박석민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옳다. 송은범이 2구째 던진 공은 그의 장기인 슬라이더였다. 강속구 투수의 힘 있고 예리한 슬라이더는 번트대기 매우 고약한 볼이다. 자칫 공이 뜨며 병살 위험이 큰 구종이다.
몸쪽 높은 직구와 함께 상대 번트를 무력화 하기 위해 쓰는 대표적인 구종이 바로 슬라이더다.
신명철은 송은범의 공이 슬라이더로 꺽이자 배트를 뺐다. 결과적으로 이 공은 볼이 됐다. 박석민이 전체적인 상황을 좀 더 신중하게 고려했다면 볼 카운트 1-1에서 무사 2,3루가 이어질 수도 있었다.
1-1은 상대 배터리가 볼로 유인하기 어려운 카운트다. 그만큼 삼성이 움직일 수 있는 여력이 많아질 수 있었다. 그러나 박석민이 포수 견제구에 아웃되며 큰 흐름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SK는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4회말, 박재상의 솔로포로 기선을 잡은 뒤 5회 최동수의 추가 솔로포가 터지며 분위기를 선점할 수 있었다.
'SK를 상대로 틈을 보이면 진다'는, 이제는 평범해진 진리가 다시 한번 입증된 셈이다.
*주(注) : 결과론과 가정(if)은 결과를 바꾸지는 못합니다. 결과만 놓고 따져보면 누구나 승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과론은 야구를 즐기 는 또 하나의 방법입니다. 모두 감독이 되어 경기를 복기(復棋) 할 수 있는 것은 야구의 숨은 매력이라 생각합니다. 만약애(晩略哀)는 치열한 승부 뒤에 남는 여운을 즐길 수 있는 장이 됐으면 합니다.
만약애(晩略哀)는 '뒤늦게 둘러보며 느낀 슬픔'이란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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