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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노래처럼...태권도 역사에 '한 페이지 장식한' 박태준[파리올림픽]

이석무 기자I 2024.08.08 21:01:08
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 태권도경기장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태권도 남자 58kg급 시상식에서 한국 박태준이 부상으로 기권한 아제르바이잔 가심 마고메도프에게 어깨를 내어주고 시상대로 함께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 태권도경기장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태권도 남자 58kg급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한국 박태준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아름다운 청춘의 한 장 함께 써내려 가자/ 너와의 추억들로 가득 채울래 (come on!)/ 아무 걱정도 하지는 마, 나에게 다 맡겨 봐 /지금 이 순간이 다시 넘겨볼 수 있는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태권도 초신성’ 박태준(20·경희대)이 결승전을 앞두고 경기장 그랑팔레의 계단을 내려오면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었다. 그의 귀에는 가수 데이식스의 히트곡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노래 가사처럼 그는 한국 태권도 역사에 새로운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세계랭킹 5위인 박태준은 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태권도 남자 58㎏급 결승에서 가심 마고메도프(아제르바이잔·26위)를 상대로 부상에 의한 기권승을 거두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6년만의 男 금메달, 도쿄 대회 ‘노골드’ 아픔 씻어

여러가지 의미가 담긴 값진 금메달이었다. 우선 한국 태권도는 박태준의 금메달 덕분에 지난 2020도쿄 올림픽에서의 아픔을 씻어냈다. 태권도 종주국 한국은 태권도가 처음 정식종목이 된 2000 시드니 올림픽부터 2021년에 열린 2020 도쿄 올림픽까지 금메달 12개, 은메달 3개, 동메달 7개를 수확했다. 메달 총수는 22개였다. 금메달이나 메달 총수 모두 월등히 1위다.

태권도가 처음 정식종목이 된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 한국은 남녀 총 8개 체급 가운데 3체급이나 석권했다. 남자 80kg 초과급 김경훈, 여자 57kg급 정재은, 여자 67kg급 이선희가 금메달 주인공이 됐다.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선 여자 57kg급 장지원, 남자 80kg초과급 문대성이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역대 최고 성적인 금메달 4개를 수확했다. 여자 57kg급 임수정과 67kg급 황경선, 남자 68kg급 손태진과 80kg초과급 차동민이 금메달리스트로 이름을 올렸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선 여자 67kg급 황경선이 2연패를 달성하며 금메달 명맥을 이었고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선 여자 49kg급 김소희와 67kg급 오혜리가 정상에 올랐다.

2020 도쿄 올림픽에선 사상 처음으로 ‘노골드’에 그쳤다. 이다빈이 여자 67㎏초과급에서 은메달, 장준과 인교돈이 남자 58㎏급, 80㎏초과급에서 동메달을 딴 게 전부였다.

태권도의 세계화가 가속화되면서 해외 선수들의 실력은 한층 높아졌다. 반면 국내에선 오히려 선수들 저변이나 기량이 퇴보하고 있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실제로 여자부보다 세계적으로 선수층이 훨씬 두터운 남자부는 2008 베이징 올림픽을 끝으로 금메달리스트가 나오지 않았다.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도 한국은 2회 연속 ‘노골드’ 위기에 몰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대회를 앞두고 확실한 금메달 후보를 예측하기 쉽지 않았다. 대회 첫 주자로 나선 박태준이 금빛 발차기로 우려와 걱정을 날리면서 한국 태권도에 희망을 선물했다. 남자 선수가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것은 무려 16년 만이었다.

게다가 박태준이 출전한 58kg급은 한국과 유독 인연이 없었다. 당대 최고의 기량을 갖춘 선수들이 도전장을 던졌지만 금메달 문턱에서 번번이 주저앉았다.

박태준이 금메달을 따기 전까지 이 체급에서 역대 최고 성적은 2012 런던 올림픽에서 이대훈(대전시청 코치)이 따낸 은메달이었다. 당시 이대훈은 자타공인 가장 유력한 금메달 후보였지만 결승전에서 ‘라이벌’ 호엘 곤살레스 보니야(스페인)에게 패해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과 2020 도쿄 올림픽에서는 김태훈과 장준이 호기롭게 나섰지만 역시 동메달에 그쳤다. 하지만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20살 신예 박태준이 선배들의 아쉬움을 털어냈다.

◇“심판이 ‘갈려’ 선언하기 전까지 공격하는게 규칙”

사실 박태준은 금메달이 확정된 순간에도 마음껏 웃거나 기뻐하지 못했다. 결승전에서 맞붙은 상대 선수 마고메도프가 다리 부상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며 매트에서 뒹굴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태준은 한참이나 마고메도프 옆에서 그의 상태를 살핀 뒤에야 태극기를 들고 그랑팔레 매트 위에서 기쁨의 세리머니를 할 수 있었다.

이긴 박태준도, 패한 마고메도프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태권도 정신을 보여줬다. 마고메도프는 1라운드에 다리 부상을 당했음에도 계속 싸울 수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실제로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계속 위협적인 킥을 날렸다. 박태준 역시 흔들리거나 방심하지 않고 경기에 집중했다.

결국 마고메도프가 마우스피스를 뱉으며 더 이상 경기가 어렵다는 의사를 밝힌 뒤에야 결승전은 마무리됐다. 경기가 끝난 뒤 시상식에서는 박태준이 다리가 불편한 마고메도프를 부축하고 등장하는 훈훈한 장면도 연출됐다.

박태준은 공식 기자회견에서 “상대가 포기하지 전까지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상대에 대한 예의라고 배웠다”며 “심판이 ‘갈려’를 선언하기 전까지는 공격하는게 정해진 규칙이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했다”고 말했다. 마고메도프도 “이번에는(부상때문에) 결과를 얻지 못했지만 다음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얻고 싶다”고 패배를 인정했다.

박태준은 이제 겨우 20살이다. 앞으로 10년 이상 한국 태권도를 이끌어나갈 에이스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는 “내 선수 생활이 담긴 금메달”이라며 “”올림픽 금메달은 모든 스포츠인의 꿈이다. 뜻깊고 영광스럽다“고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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