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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만약애(晩略哀)]김경문 감독의 뚝심, 그리고 임태훈 VS 김재현

정철우 기자I 2008.10.27 22:12:25
▲ 임태훈 [사진제공=두산베어스]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SK가 3-2로 살얼음 리드를 하고 있던 7회말 1사 1루. 타석엔 김재현이 들어섰다.

이때 김경문 두산 감독은 흔들리던 정재훈 대신 임태훈을 선택했다. 다른 감독이었다면 좌투수를 기용했겠지만 김 감독 스타일은 이미 정평이 나 있는 사실 아닌가. 김 감독은 자신만의 길을 걸으며 두산을 강팀으로 거듭나게 했고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다.

김 감독은 한국시리즈가 열리기 전 좌완 원용묵을 깜짝 발탁하며 "SK를 상대로는 좌투수들(이혜천 금민철 원용묵)이 제 몫을 해줘야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경기 최대 승부처가 되자 평소 스타일대로 뚝심있게 밀어붙였다.

올시즌 임태훈과 김재현의 상대 성적은 4타수 1안타. 누가 특별히 좋았다고 할 수 없는 기록이다.

하지만 1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보면 다른 그림이 나온다. 임태훈은 지난해 SK와 한국시리즈서 고비마다 김재현에게 큰 것 한방을 허용하며 무너졌다.

2승2패로 맞선 5차전서 0-0이던 8회 무사 1루서 우월 3루타를 얻어맞고 무너졌다. SK는 8회에만 4점을 뽑아내며 승부를 갈랐다.

선발 등판한 6차전서도 김재현의 한방에 무릎을 꿇었다. 1-2로 뒤진 3회 김재현에게 우월 솔로포를 맞으며 맥없이 고개를 떨궈야 했다.

1년여의 세월이 흘렀지만 가장 큰 무대에서 가장 극적인 한방을 내준 상대를 쉽게 잊긴 힘들다. 게다가 그와 비슷한 상황에서 다시 마주서는 심정은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김 감독은 임태훈을 과감하게 다시 김재현에게 맞서게 했다. 김 감독이라고 그날의 기억을 잊었을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김 감독의 스타일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김 감독은 승부 뿐 아니라 선수 육성에서도 정면으로 붙어 싸워 이기는 걸 원한다.

그가 선수에 대해 평가할 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바로 "결국 자기가 싸워 이겨내야 한다"이다. 이 원칙은 김 감독 휘하의 모든 선수들에게 적용된다.

임태훈의 어깨가 무거웠으리란 걸 모를리 없었지만, 임태훈이 결국 그 벽을 넘지 못하면 미래도 담보할 수 없다는 강한 신념이 배어있는 기용이었다.

결국 김 감독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또 한번의 실패로 돌아왔다. 그러나 언젠가 같은 상황이 오면 같은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말이다.

임태훈이 그 승부를 이겨내는 날, 임태훈은 또 한단계 성장한 선수가 될 것이다.

김경문 감독은 경기 후 임태훈이 마운드에 오른 상황에 대해 "태훈이에게 여러모로 많은 교훈이 되는 시즌이 된 것 같다"고 답했다.

*주(注) : 야구에서 결과론과 가정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결과만 놓고 따져보면 누구나 승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과론은 야구를 즐기 는 또 하나의 방법입니다. 모두 감독이 되어 경기를 복기(復棋) 할 수 있는 것은 야구의 숨은 매력이라 생각합니다. 만약애(晩略哀)는 치열한 승부 뒤에 남는 여운을 즐길 수 있는 장이 됐으면 합니다.

만약애(晩略哀)는 '뒤늦게 둘러보며 느낀 슬픔'이란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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