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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내내 김 총재의 얼굴에선 미소가 떠날줄 몰랐다. 아마 농구 얘기였다면 그렇지는 않았을터다. 프로농구는 최근 바람 잘 날이 없다. 농구 생각을 하면 머리가 아플 수도 있다. 어쩌면 인터뷰 자체가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책 얘기는 달랐다. 김 총재는 진심으로 책을 좋아하는 독서광이다. 그런데 취향이 재밌다. 고리타분한 고전이나 아니면 뻔한 자기계발서를 추천할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 총재의 독서 스타일은 ‘잡식성‘이다. 끌리는 책이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읽는다.
김 총재는 ‘베스트셀러 매니아’다. 영어 원문 소설을 직접 읽는 것을 좋아한다. 세계적인 작가인 존 그리샴, 시드시 셀던의 오랜 팬이다.
김 총재에게 책은 책장에 꽂혀 먼지만 쌓이는 장식품이 아니다. 늘 곁에 두고 시간 날 때마다 함께 하는 친구다. 국가대표 농구선수로 이름을 날렸던 20대 때부터 백발이 성성한 지금까지 책이 그의 곁에서 떠난 적은 없었다.
김 총재는 “햇볕 들어오는 조용한 공간에서 책을 읽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이 언제 나오나 기다리다보면 절로 행복해진다”며 껄껄 웃었다.
◇잠 줄여가며 책에 몰두했던 ‘독서광’
김 총재가 영문 소설을 ‘열독’하는데는 그가 걸어온 인생과정과도 무관하지 않다. 김 총재는 독특한 인생사를 걸어왔다. 배재고등학교를 다니다 2학년 때 키가 크다는 이유로 농구부에 불려갔다. 농구선수가 된 계기였다. 다행히 재능도 있었다. 농구선수로 승승장구했다.
고려대 법학과를 입학하고 나서 농구인생은 더욱 꽃을 피웠다. 당시만 해도 체육특기생 제도가 없었다. 일반 학생과 마찬가지로 입학시험을 치르고 성적에 따라 대학에 들어가야 했다. 공부를 못하면 대학에서 운동을 할 수도 없었다.
대학 입학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일과 중에는 공부를 놓을 수 없었다. 점심시간이나 수업이 끝난 뒤 동네농구 하듯 연습했다. 방학이 돼야 그나마 합숙훈련이 가능했다. 지금의 엘리트 스포츠와 비교하면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처럼 다가온다. 낭만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김 총재는 당시 미국인 코치에게 농구를 배웠다. 한국 전쟁 이후 미국은 경제, 사회는 물론 문화적으로도 한국에 많은 원조를 했다. 스포츠도 마찬가지였다. 각 종목에서 미국 코치들이 한국에 와서 선진 기술을 전달했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NBA 뉴욕 닉스의 전설적 감독인 레드 홀츠맨이었다. 홀츠맨 감독은 한국에서 와서 4개월 동안 대학선수들을 지도했다. 그전까지 주먹구구식으로 농구를 배운 선수들의 실력은 홀츠맨 감독을 만나면서 급상승했다.
문제가 있었다. 영어를 하지 못하면 미국인 감독과 소통할 수 없었다. 선수들은 농구도 농구지만 영어를 죽어라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다른 선수에 비해 실력이 뛰어나고 리더 역할을 맡았던 김 총재는 감독과 더 많은 커뮤니케이션이 요구됐다.
연습이 끝나면 숙소에서 밤늦게까지 영어 공부를 했다. 영어 신문과 원서를 닥치는대로 읽었다. 그런 생활이 수년간 반복되자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버렸다. 이후 미국인 코치는 떠났지만 책을 읽는 습관은 떠나지 않았다.
김영기 총재는 “지금은 선수들이 숙소에서 TV나 컴퓨터, 휴대폰 등으로 시간을 보내지만 그때는 딱히 할 만한게 없었다. 그래서 대표팀 합숙훈련에 들어가면 꼭 5권씩 책을 가져갔다. 동료들과 서로 책을 나눠서 보고 그랬다. 그러면서 선수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독서하는 습관이 깃들여진 것 같다”고 말했다.
◇선수 시절 독서 습관, 인생을 좌우하다
선수 시절 몸에 밴 독서 습관은 그의 인생을 좌우했다. 방열, 신동파 등 쟁쟁한 선수들과 함께 뛰었던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전체 득점 2위를 차지했던 김 총재는 은퇴 후 2년 뒤 곧바로 국가대표 사령탑에 올랐다.
감독을 맡은 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미국 농구 서적을 파고드는 일이었다. 선수 시절 미국인 코치에게서 배운 기술과 책을 통해 찾은 이론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선수들에게 지도했다. 당시 국내 농구에서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전술과 훈련 방법을 도입했다.
노력의 결실은 달콤했다. 1969년 아시아농구선수권(ABC) 대회 및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일궈냈다. 한국 남자농구가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낸 것은 방콕 대회가 처음이었다.
김 총재는 대표팀 감독에서 물러난 뒤 기업은행 지점장, 신용보증기금 이사 및 감사, 신보창업투자 사장을 지냈다. 성공한 금융인으로 승승장구 하면서도 농구를 잊지 않았다. 1997년 프로농구 출범을 이끌며서 전무이사와 부총재를 거쳐 3대 총재로 취임했다. 2004년 4월 총재직에서 물러난 뒤 10년 만인 2014년 8대 총재로 복귀했다.
◇그가 아프가니스탄을 주목하는 이유
김 총재는 최근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작가 겸 의사인 할리드 호세이니의 책을 ‘열독’하고 있다. 최근 미국 문학계에서 가장 핫한 작가 중 한 명이다. 대표작품인 ‘연을 쫓는 아이(The Kite Runner)’, ‘천 개의 찬란한 태양(A Thousand Splendid Suns)’ 등을 통해 자신의 고향인 아프가니스탄의 비참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김 총재는 “호세이니의 책을 보면 우리나라의 옛 모습이 그대로 들어있다”고 설명한다. 책에서 묘사되는 아프가니스탄의 모습은 ‘생지옥’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이는 불과 몇 십 년전 우리의 모습과 데칼코마니처럼 닮아 있다.
김 총재는 “전쟁이 계속되는 모진 세상, 종교 갈등에서 일어나는 싸움, 탈레반 지배 후 구습을 없애려는 폭력 등의 이야기들은 50~60년전 한국에서 일어난 상황과 너무 닮아있다. 남 얘기지만 남 얘기처럼 들리지 않는 이유다”고 말했다.
이어 “아프가니스탄의 젊은 세대들도 극한의 환경속에서 희망을 가지고 살고 있다. 우리도 힘든 시기를 겪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 젊은 세대들이 포기라는 말을 쉽게 꺼내는 것이 안타깝다. 소설을 통해 삶을 되돌아보고 희망을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김영기 총재.
1936년생으로 배재고,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1956년 제16회 멜버른 올림픽 농구 국가대표로 출전했고, 1969년 제5회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대회 국가대표 감독로 선임됐다. 1970년 제6회 방콕 아시안게임 농구 국가대표 감독으로 사상 첫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내는 데 기여한 지도자로 이름을 알렸고 1971년 대한농구협회 이사 1982년 신용보증기금 이사 1982년 대한체육회 이사, KOC 부위원장, 대한스포츠위원장 등을 거쳤다. 이후 1985년 대한농구협회 부회장 1991년 신보창업투자 사장 1999~2002년 KBL(한국프로농구연맹) 부총재 등을 거쳐 2002~2004년 제3대 KBL 총재로 선임됐다. 2014년 7월부터 제8대 KBL 총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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