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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정철우 기자] 한해를 정리해가던 한국 프로야구에 커다란 폭탄 하나가 떨어졌다. 선동렬 삼성 감독이 전격 퇴진한다는 소식은 하루가 지나도 여전히 큰 여진을 남기고 있다.
단순히 감독 한명이 떠나는 소식이 아니었다. 나름 준수한 성적을 남긴, 계약기간이 4년이나 남은, 한국 프로야구 최고 스타 출신 감독이 하루 아침에 경질됐기 때문이다.
선동렬 감독의 퇴진은 이것 말고도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들을 남겼다. 우리가 잠시 잊고 있던 한국 프로야구의 현실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한국 야구는 감독의 야구다
야구를 향해 심심치 않게 던져지는 화두가 한가지 있다. "야구는 선수가 하는 것"이라는 명제다.
지나치게 감독의 능력과 성향에 좌우되는 한국 프로야구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다. 실제로 메이저리그에선 감독의 능력 보다 선수를 어떻게 구성하고, 선수들이 얼마나 능력을 보여주는지가 더 높은 평가의 잣대가 된다.
그러나 한국 야구는 다르다. 아직 프로야구의 시스템이 정착되지 않은 탓에 감독이 어떤 능력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야구의 색깔이 크게 달라진다.
삼성도 그랬다. 선동렬 감독이 이끄는 삼성 야구는 분명 달랐다. 삼성 야구는 한때 뻥야구의 대명사였다. 투수력은 늘 허덕였지만 화끈한 방망이로 부족함을 채우는 야구였다.
하지만 선 감독 재임 6년간 삼성은 전혀 다른 팀이 됐다. 1점을 내면 상대를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이기는 야구를 했다.
선 감독 퇴진 이후 삼성 야구에 더 많은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다. 과연 삼성 야구는 어떻게 달라질까. 결과를 떠나 감독이 한 팀에 미치는 영향은 2011 내내 흥미로운 소재가 될 것이다.
◇돈? 두번째 문제다
선 감독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던 김응룡 사장과 김재하 단장이 모두 팀을 떠났어도 그의 경질은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계약기간이 4년이나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선 감독은 15억원이 넘는 연봉이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 상식적으로는 쓸데까지 써 보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삼성의 판단은 달랐다. 사실상 아무 플러스 요인 없이 큰 돈을 버리는 셈이 됐지만 돈은 결단에 별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물론 선 감독은 이후 4년 중 언제든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계산상으로는 큰 폭의 적자를 감수해야 한다.
아직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매김하지 못한 한국 프로야구는 거대 기업의 논리가 늘 우선한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한 대목이다.
적자 타령의 허무함도 이 부분에 포함된다. 모든 구단이 그렇지는 않지만 당장의 수익은 여전히 우리 프로야구에서 중요한 일이 아니다. 돈 쓴 만큼 성적을 내거나 그룹의 입맛에 맞는 운영을 해야 한다. 그것이 현실이다.
◇감독, 시키면 한다?
야구인들은 이번 사태에 큰 충격을 받았다. 삼성은 분명 꽤 탄탄한 팀으로 바뀌어 있었다. 잡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오늘 보다는 내일이 더 기대되는 팀이 됐다.
그러나 감독은 경질됐다. '그럼 뭘 더 보여줘야 한다는 건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야구인들이 많았다.
더 중요한 것은 다음 대목이다. 삼성은 30일 선 감독 경질(구단 보도자료는 용퇴)을 전하며 류중일 코치를 감독으로 선임한다고 밝혔다.
헌데 류 신임 감독의 몸값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 그저 감독을 맡기겠다고 통보하고 수락을 받았을 뿐이었다.
프로야구 선수와 지도자는 개인 사업자다. 고용과 피고용인의 관계인 것은 맞지만 엄연히 상호 계약 관계에 놓여 있다. 일반 기업의 승진 인사와는 다르다.
계약 기간과 계약금, 연봉이 어떻게 될지 먼저 상의하고 결정이 내려져야 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감독직 제안이 먼저였다.
바꿔 말하면 감독 시켜준다면 그저 넙죽 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이번에도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다.
물론 프로야구 감독은 모든 야구인의 로망이다. 8개 뿐인 감독 자리는 누구나 한번쯤 꿈꿔보는 일이다.
하지만 영광이 크다고 해서 절차까지 무시되도 되는 것은 아니다. 한 구단이 감독을 맡기겠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우가 어떻게 되는지 논의하는 것이 먼저다.
삼성만 그러는 것이 아니다. 또 감독에 대해서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코치를 선임할 때도 계약 조건에 대한 논의 없이 발표 먼저 나는 것이 일반화 돼 있다. 야구인을 대하는 기업의 자세가 늘 이러하다.
한국 프로야구를 아직 산업이라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비단 수익이 적어서만은 아니라는 걸, 선 감독의 퇴진이 또 한번 알려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