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룡 변신 전병두의 '첫 선발 등판기'

정철우 기자I 2008.05.07 21:42:37
▲ 전병두 (제공=SK와이번스)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7일 잠실 SK-LG전은 양팀의 승패 못지 않게 관심을 끄는 것이 한가지 있었다. 이날 SK 선발로 예고된 전병두의 투구가 그것이었다.

전병두는 4일 전격적으로 KIA에서 SK로 트레이드되면서 최고의 화제가 됐던 인물. KIA 팬들은 "유망주를 너무 헐값에 넘겼다"며 분노를 금치 못했다.

전병두가 대표적 유망주인 것만은 사실이다. 140km대 중반의 묵직한 직구를 던지는 좌완 투수로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 대표로 뽑힐 만큼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고질적인 제구력 불안을 해소하지 못해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KIA가 결단을 내린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그러던 그가 트레이드된지 이틀만에 선발 투수로 나선다고 하자 모든 관심이 그에게 모아졌다. 비룡의 투수로서 첫 경험에 나선 전병두의 하루를 되짚어봤다.

네 뒤에 누가 있는지 잊지마
경기 전 잠실구장 원정 라커룸. 밥을 먹고 있던 조웅천은 전병두가 들어오자 조용히 불러세우더니 이런 말을 했다. "네 뒤에 누가 있다고 생각하냐?"
 
전병두가 머뭇 거리며 "야수..."라고 답하자 고개를 가로젓더니 "아냐. 다른 투수가 있어. 네가 못던져도 다른 투수들이 올라가서 막아줄거야. 알았지." 전병두는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런 말로만으로는 마음이 다 놓인 것 같진 않았다. 전병두는 30초 간격으로 라커룸을 세번씩이나 더 드나들며 냉커피를 벌컥 벌컥 마셔댔다.
 
조웅천은 "결국 야구는 스스로 하는 거다. 무슨 말을 해줘도 본인이 느끼지 못하면 소용없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말들이 몸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그럴때를 위해 조언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전병두와 궁합을 맞춰야 하는 포수 박경완은 어땠을까. 박경완은 "난 원래 경기 전에 선발투수와 별 말을 하지 않는다"며 슬몃 웃어보이기만 했다. 말보다 몸의 교감이 더 필요함을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세번째 스트라이크
1회말. 전병두가 마운드에 오를 차례가 됐다. 마운드에 선 전병두는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했다. 1번 이대형에게 스트레이트 볼넷, 2번 안치용에게도 두개의 볼을 연속으로 던졌다.
 
박경완이 한차례 마운드를 다녀왔지만 별무소용. 3구째 스트라이크를 던졌지만 또 두개의 볼을 더 던져 무사 1,2루가 됐다. 결국 가토 SK 투수코치까지 마운드에 가봐야 했다. 볼이 계속됐다면? 아마도 SK벤치는 투수를 바꿀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종렬에게 던진 3구째가 파울이 된 뒤, 전병두는 세번째 스트라이크를 꽂았다. 홈 플레이트를 향해서가 아니었다. 2루 주자를 잡기 위해 던진 공이었다.
 
전병두는 2루 주자 이대형을 견제구로 잡아냈다. 이날들어 가장 정확하게 날아간 공이었다. 앞으로 던지기만도 정신없을 전병두였다. 그러나 SK의 수비 포메이션은 전병두를 움직이게 했고 방심하고 있던 이대형은 아웃이 되고 말았다.
 
전병두의 표정이 조금은 펴진 듯 보였다. 이후 이종렬을 3루 땅볼로 솎아내더니 최동수마저 3루 땅볼로 막아내며 이닝을 마쳤다.
 
박경완 그리고 변화구
2회에도 전병두는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볼은 여기 저기로 흩날렸다. 그러나 덤벼드는 LG 타자들 덕에 하나씩 아웃 카운트를 잡아갔다. 2사 후 김정민 타석. 전병두는 경기 3번째 볼넷을 내줬다.
 
이때 눈길을 끄는 것이 한가지 있었다. 변화구 구사비율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박경완은 김정민을 상대로 던진 8개의 공 중 초구 이후 7개를 연속 변화구로 요구했다. 다음 타자 김상현에겐 초구 변화구로 스트라이크를 잡아내기까지 했다. 이날 전병두가 던진 첫 초구 스트라이크였다.
 
'직구 제구가 흔들리는 투수에겐 변화구가 약'이라는 평소 지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힘이 너무 들어간 전병두에게 힘 빼고 던지는 밸런스를 찾아주기 위한 포석. 나름의 분명한 성과가 있었다. 전병두는 변화구로난 조금씩 스트라이크를 잡아갔다.
 
변화구가 그런대로 제구되니 어디로 튈지 모르는 직구는 또 다른 무기가 됐다. LG 타자들은 뭔가 노림수를 갖기도, 그렇다고 마냥 기다리기도 애매한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결국 이같은 분위기는 5회까지 이어졌고 전병두는 5개의 볼넷과 1개의 안타를 맞고도 5회까지 무실점으로 막아낼 수 있었다. 
 
한계 그리고 교체
박경완은 6회부터는 다시 직구 위주 볼배합을 가져갔다. 두바퀴가 돈 만큼 LG 타자들의 대응이 있을거라 여긴 듯 했다. 그러나 전병두는 여전히 직구 제구에 자신을 갖지 못했다.
 
이종렬과 최동수에게 9개의 공 중 볼만 8개를 던지며 연속 볼넷을 허용했다. SK 벤치는 교체를 선택했다. 전병두의 최종 성적은 5이닝 1피안타 7볼넷, 투구수 98개.
 
그리고 한가지. 경기 전 조웅천이 한 말은 사실(?)이었다. 전병두는 두명의 주자를 남겨놓고 마운드를 내려왔지만 윤길현과 정우람이 LG 타자들을 막아내며 전병두의 최종 성적 실점란을 '0'으로 새길 수 있게 해줬다.
 
평가
김성근 SK 감독은 "투수는 역시 포수 따라 달라진다. 1회 견제사를 잡은 것이 컸다. 너무 굳어있어 투수코치를 통해 맘 편히 하라고 했다. 3회부터는 몸이 부드러워지면서 변화구 구사가 잘됐다. 5회까지 하고 끊으려고 했는데 9연전에 대한 부담으로 밀고 갔다. 제구가 안된 것은 1회뿐이었다고 생각한다. 6회는 체력적인 부담이 컸을 것이다. 이건 비밀인데 경기 도중 단점 하나를 고쳤다. 그런 적응 능력을 충분히 갖고 있는 투수였다. 전병두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앞으로 로테이션에 포함시키겠다"고 평가했다.
 
박경완은 "처음에 올라갔을때 어차피 책임은 내가 지니까 부담 없이 하자고 했다. 사인 내는대로 가자고 했는데 잘 따라와줬다. KIA때 체인지업을 많이 던진 걸로 아는데 오늘은 커브와 슬라이더만 가지고 했다. 부담을 줄여주고 싶어서였다. 직구가 높이 올 땐 변화구가 도움이 되는데 그런 배합이 잘 먹힌 것 같다. 컨트롤만 잘 잡히면 정말 좋은 투수가 될 것 같다. 좋은 자질이 있다"고 말했다.
 
전병두는 "결과는 좋았지만 볼넷이 많아 만족하기 어려운 경기였다. 박경완 선배는 투수를 잘 아는 포수인 것 같다. 어찌됐건 이겼다는건 기분 좋다"는 소감을 밝혔다.  


▶ 관련기사 ◀
☞두산 유재웅 '남몰래 흘린 땀으로 차지한 데뷔 첫 주전'
☞[베이스볼 테마록]숫자로 확인해 본 고참의 숨은 힘
☞두산 전상렬 고참의 힘으로 만든 쐐기 만루포
☞SK가 '어린이날 3연전'서 얻은 것들
☞SK-KIA '2:3 트레이드 득실 계산'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