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설→기소유 인상적 열연…4인의 응축된 에너지 폭발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곽선영·권유리·이설·기소유의 새 얼굴, 강렬한 에너지로 뿜어낸 균열의 앙상블이 선사할 웰메이드 심리 서스펜스. 손에 땀을 쥐는 예측 불가 전개와 미스터리, 폭발하는 클라이맥스까지. 장르의 미덕을 갖춘 심리 스릴러의 탄생. 영화 ‘침범’(감독 김여정, 이정찬)이다.
‘침범’은 기이한 행동을 하는 딸 소현(기소유 분)으로 인해 일상이 붕괴되고 있는 영은(곽선영 분)과 그로부터 20년 뒤 과거의 기억을 잃은 민(권유리 분)이 해영(이설 분)과 마주하며 벌어지는 균열을 그린 심리 파괴 스릴러다.
‘침범’은 20년 전 엄마 영은과 어린 딸 소현의 서사를 담은 이야기가 1부, 20년이 흐른 후 각자 말 못할 과거와 비밀을 품고 사는 ‘민’과 ‘해영’의 갈등을 2부로 나눈 듯한 스토리 구조가 눈에 띈다. 영화는 우연히 같은 일을 하며 한 집에 살게 된 ‘민’과 ‘해영’ 각자가 감춘 비밀, 이들이 숨기려 한 각각의 사정이 이들이 갈등을 빚으며 수면 위로 떠오르는 과정을 치밀히 그려 긴장감을 선사한다. 손에 땀을 쥐는 긴장과 내적, 외적 갈등, 인물들의 섬세한 표정, 심리 묘사를 통해 이들의 비밀이 마침내 20년 전 영은과 소현의 서사와 연결되는 절정부까지 상당히 집중력 있게 펼쳐나간다.
영화의 분위기부터 등장인물 면면은 상당히 차갑고 건조하다. ‘침범’에서 수영 강사 영은은 남편과 이혼 후 어린 딸 소현과 단둘이 살아가고 있다. 이혼의 원인은 딸의 기이한 행동에서 비롯됐다. 영은과 소현의 관계는 겉으로 볼 때 아무도 발을 담그지 않은 수영장 물의 표면처럼 평범하고 평온해보이나, 영은은 소현의 이상행동으로 심각한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 딸의 이상행동은 정신과 치료, 영은의 훈육에도 별 소득 없이 악화일로를 걷는다. 딸의 행동이 타인의 일상과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이 잦아지자 유치원까지 몇 번 옮긴다. 딸의 성장 속도가 남들과 다르고,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옆에서 치료를 돕는다면 나아질 것이라 믿던 영은의 믿음은 딸에 대한 두려움이 점점 커지며 흔들리기 시작한다. 결국 엄마인 자신조차 감당할 수 없을 수준이 된 어느날 기어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민’과 ‘해영’의 이야기는 영은과 소현의 일이 있고부터 20년이 흐른 시점에 벌어진다. 특수청소업체에서 일하는 ‘민’은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은 물론 자신의 진짜 이름도 잃어버린 채 살고 있는 인물이다. 자신이 지닌 개인적 비밀과 트라우마로 인해 사람을 믿지 못하고 이들이 다가올 수 없게 언제나 경계를 바짝 세운다. 자신을 따뜻하게 받아주고 오랜 기간 손발을 맞춰온 특수청소 업체 선배, 팀장 외엔 누구와의 소통도 거부했던 ‘민’의 삶에 어느 날 ‘해영’이 찾아온다. 자신이 일하던 특수청소업체에 예고 없이 찾아 들어온 해영은 당장 서울에 살 곳이 없단 이유로 ‘민’이 동료와 묵던 숙소까지 신세진다. 민은 자신의 무표정과는 정반대인 해맑은 얼굴로 악의없이 자신의 일상을 침범하는 해영의 존재가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다. 민과 해영의 공통점도 있다. 두 사람 모두 어린 시절부터 각자의 사정으로 부모 없이 홀로 삶을 꾸려왔다는 점이다. 민은 해영이 자신의 주변인물들과 친해지고 자신과도 가깝게 지내려 다가올 때마다 묘한 불쾌감을 느낀다. 해영이 민의 생활부터 개인사까지 일상을 침범하는 정도가 강해질수록 민과 해영의 갈등도 점점 더 극으로 치닫는다.
영화는 영은과 소현, 민과 해영 네 인물이 서로를 통해 심상치 않은 균열을 겪어가는 과정을 깊고 치밀하게 묘사해 긴장을 자아낸다. 여느 스릴러물과 달리 특별히 공포감을 자아내는 장면이나 잔혹한 장면의 묘사가 많지 않지만, 오로지 배우들의 표정 변화와 캐릭터의 에너지, 몸의 움직임으로 섬뜩한 서스펜스를 완성한다.
특히 20년에 걸친 갈등과 파국의 시초가 되는 딸 ‘소현’ 역을 연기한 아역 기소유 배우의 열연이 놀랍다. 촬영 당시 7세, 현재 9세인 기소유는 감정을 파악할 수 없는 평온한 표정으로 섬뜩한 기행을 저지르는 딸 소현의 모습을 성인 배우들 못지 않은 노련함과 섬세한 묘사로 섬뜩히 표현해낸다. 영화 ‘침범’을 통해 처음 스크린 주연에 데뷔한 배우 곽선영의 안정적 연기가 기소유의 열연을 안정적으로 지탱하며 극 전반의 처연하면서도 건조한 톤, 서늘한 긴장의 에너지를 완성한다. 딸의 기행을 지켜보며 느끼는 공포와 혼란, 그럼에도 놓을 수 없는 엄마의 모성(母性) 사이 영은이 겪는 내적 갈등도 입체적으로 그렸다.
권유리와 이설의 페이스오프 역시 인상적이다. 권유리는 메마르고 폐쇄적인 내면을 갖춘 ‘민’이란 캐릭터를 통해 소녀시대로 갖고 있던 기존의 밝은 이미지를 지우고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묵직한 열연을 펼쳤다. 이설 역시 해맑은 미소 뒤 미스터리한 비밀을 감춘 ‘해영’의 순수하면서도 위협적인 아우라를 밀도있게 그려냈다. 특히 극 후반부 민과 해영의 갈등이 극에 달해 숙소 안에서 펼쳐지는 원테이크 몸싸움 액션신에선 권유리와 이설 두 배우의 극과 극 색깔, 폭발적인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한편 ‘침범’은 3월 12일 극장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