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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이 김은 13일 강원도 평창 휘닉스 스노보드 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에서 최고 98.25점을 받아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클로이 김을 상대할 적수는 없었다. 전날 월등한 기량을 뽐내며 1위로 예선을 통과한 데 이어 결선에서도 다른 선수들을 여유 있게 제쳤다.
클로이 김은 결선 1차 시기에서 93.75점을 받아 일찌감치 금메달을 예약했다. 2차 시기 때는 경기 도중 넘어지는 바람에 41.50점에 그쳤지만 마지막 3차 시기에서 100점 만점에 겨우 1.75점 모자란 98.25점을 기록해 금메달을 확정 지었다.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결선은 총 3번 주행을 펼쳐 가장 높은 점수를 비교해 최종 순위를 가린다. 이번 대회에서 예선과 결선을 통틀어 90점 이상 점수를 받은 선수는 클로이 김이 유일했다.
우승을 확정 지은 순간 클로이 김은 성조기를 몸에 두른 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가족 및 관계자들과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특히 베뉴 시상대에 오를 때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클로이 김은 엄마 아빠가 모두 한국인이다. ‘김선’이라는 한국 이름도 가지고 있다. 클로이 김의 아버지 김종진 씨는 현금 800달러와 영한사전 한 개만 들고 198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했다. 식당일 등 온갖 허드렛일을 하면서 클로이 김을 키웠다.
클로이 김은 올림픽에 앞서 가진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혼란스러웠지만 지금은 두 나라를 모두 대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이해하고 있다”며 “내가 한국계라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또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내가 미국인이라는 점을 알아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한 “난 한국적인 환경에서 자랐다. 한국 음식도 많이 먹고, 부모님은 한국 노래도 알려주셨다”며 “한국과 미국 문화를 모두 몸에 익히면서 자랐고, 덕분에 타인을 수용하는 자세를 배웠다”고 한국계라는 사실에 대한 자부심을 전했다.
클로이 김은 4살 때 스노보드를 시작한 뒤 곧바로 두각을 나타냈다. 6살 때 전미선수권대회에서 3위에 올라 미국 스키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후 클로이 김은 스노보드 종목을 대표하는 ‘아이돌’이 됐다. 15살이던 2015년 동계 엑스게임에서 최연소 우승 기록을 세운데 이어 2016년에는 16살 이전에 3연속 엑스게임 정상에 오른 최초 선수가 됐다.
지난해 US 그랑프리에선 여자 선수 최초로 1080도 회전을 연달아 성공했다. 여자 선수 최초로 100점 만점을 거머쥐었다. ‘천재’라는 수식어가 클로이 김에게는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미국 사회도 클로이 김의 활약을 주목했다. 미국의 주요 매체인 ‘타임’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대 30명’ 명단에 클로이 김을 2015년부터 올해까지 3년 연속 선정했다.
ESPN은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발간한 특별호에서 클로이 김을 표지 모델로 내세웠다. 워싱턴포스트, NBC, US위클리 등도 경쟁적으로 클로이 김에 대한 특집기사를 크게 실었다. 미국 동계스포츠를 대표하는 얼굴이라고 해도 틀림없었다.
2000년 4월 23일에 태어난 클로이 김은 이제 겨우 만 17세 9개월이다. 올림픽 역사상 이 종목 최연소 우승자다. 종전 기록은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에서 켈리 클라크(미국)의 18세 6개월이었다.
남녀 스노보드를 통틀어서는 11일 남자 슬로프스타일에서 우승한 레드먼드 제라드(미국·2000년 6월생)에 이어 두 번째다. 클로이 김은 제라드에 이어 동계올림픽 사상 두 번째 2000년대생 금메달리스트로도 이름을 올렸다.
사실 클로이 김은 4년 전 소치 올림픽에서도 충분히 메달을 노려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나이 제한에 걸려 올림픽 출전을 이루지 못했다. 이번 평창 올림픽에서 4년 전 아쉬움을 씻으면서 최고 스타임을 확실히 입증했다.
클로이 김은 이날 결승 3차 시기를 앞두고 자신의 SNS에 “아침에 샌드위치 다 안 먹은 게 후회된다. 괜히 고집부렸다. 이제야 배가 고프다”고 적기도 했다. 스노보드는 ‘세계 최고의 여왕’이지만 보드를 벗으면 영락없는 10대 소녀 모습 그대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