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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작은 문제작으로
방송 전 ‘화유기’는 하반기 기대작으로 손꼽혔다. 전역한 이승기의 복귀작이자 MBC ‘최고의 사랑’(2011)을 히트 시킨 홍정은 홍미란 작가-박홍균PD-차승원이 재회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제작발표회에서 이승기는 “이렇게 잠을 안 자면서 촬영하는 건 처음”이라며 “군대 정신으로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엔 흔한 너스레로 여겼다. 돌이켜 보면 출연진·제작진을 혹사 시키는 구조의 현장 분위기를 압축한 멘트였다.
2회 만에 현장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24일 방송한 2회에서 CG 작업으로 사라져야 하는 와이어, 크로마키 화면 등이 노출됐다. 방송 말미에는 10분 가까이 광고가 반복됐다. “다른 작품보다 요괴, 퇴마를 테마로 하는 만큼 CG 분량이 많고 난이도가 높았다”고 tvN은 해명했지만, 대중을 이해시키지 못했다. ‘화유기’는 4회 분의 대본이 나온 상태에서 두 달 전 촬영을 시작했다. 편성 시기를 늦추거나 작업량을 조정할 시간은 충분했다. 급기야 23일 새벽 촬영 현장에서 세트 작업을 하던 한 스태프는 3미터 높이에서 추락해 하반신이 마비되는 중상을 당하면서 비난 여론은 거세졌다.
◇‘사람 갈아’ 만드는 1회 90분
현재 방영 중인 tvN 드라마는 1회 분량이 제각각이다. 월화 미니시리즈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16’은 66분, 수목 미니시리즈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87분, ‘화유기’는 86분이다. 지상파 드라마의 1회 분량은 60분을 조금 넘는다. 미세한 차이가 있지만 적어도 70분을 넘지 않는다. 때문에 같은 회차로 구성되더라도 지상파 드라마와 tvN 드라마의 전체 분량은 차이가 크다. 16부작 지상파 드라마 기준 tvN 드라마는 사실상 6~7회 분이 추가된 셈이다.
방송사로선 방송 분량은 수익과 직결된다. tvN은 중간광고가 허용된다. 60분 미만은 중간광고가 1회 이내이지만, 60분 이상 90분 미만은 2회까지 가능하다. 시청자 선점에서도 효과가 있다.
제작진에게 늘어난 분량은 부담이다. 한정된 예산 안에서 일정 이상 완성도도 유지해야 한다. 결국 누군가의 희생이 뒤따른다. 스태프들이 혹사 당하사거나 위험한 상황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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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은 제작 및 방송 안정화를 위해 오는 31일 방송 예정이던 ‘화유기’ 4화를 차주로 연기했다. 이에 따라 30일 3화가 방송되고, 4화는 오는 1월 6일 오후 9시 방송될 예정이다. 결방을 택할 만큼 급박한 상황임을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완성도를 위해”라는 핑계 아래 불가피한 결방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화유기’ 외에도 수목 미니시리즈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27, 28일 본방송을 결방하고 스페셜 방송과 단막극으로 대체 편성했다. 지난 5월엔 ‘시카고 타자기’가 1주일 휴방했다.
tvN은 올해 개국 11주년을 맞았다. 어느새 지상파를 위협하는 오락 채널로 거듭났다. ‘도깨비’, ‘시그널’, ‘비밀의 숲’ 등 tvN은 지상파가 해내지 못한 성과로 이를 입증했다. 지난해에는 CJ E&M 드라마제작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해 드라마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을 설립하고 지난달 코스닥에 상장시켰다. 양적인 성장 이면엔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 공격적인 편성은 가려졌다.
한 방송 관계자는 “업계 질서를 흐릴 정도로 거액을 주고 스타 작가를 영입했지만 그만큼 스태프 처우를 챙겼는지는 의문”이라면서 “수치적인 성과도 중요하지만 방송사로서 채널이 지닌 책임감도 돌아볼 때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