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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속을 모두 알 수는 없겠지만 포수 양의지의 속이 가장 시커멓게 타 있을 가능성이 높다. 포스트시즌 들어 집중력이 한층 강해진 롯데 타선을 상대로 투수들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또 한가지. 팀 마운드 사정이 갖고 있는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두산은 홍상삼-프록터로 이어지는 필승조를 빼면 확실한 불펜 카드가 부족하다는 것이 가장 큰 약점이다. 반대로 강한 선발진을 보유하고 있지만 포스트시즌에서 선발 투수들만의 힘으로 경기를 끌고 간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투수의 능력이나 컨디션을 떠나 그 투수를 이끌어야 하는 포수의 고민은 더욱 크기 때문이다.
김정준 SBSESPN 해설위원은 “어쩌면 이번 포스트시즌에선 SK 박경완 보다 두산 양의지가 더 고민이 많을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박경완은 한국 포수 중 가장 많이 머리를 쓰는 포수로 이름 높다. 치열한 고민 끝에 결정 된 볼배합은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 박경완을 넘어설 만큼 양의지가 고민이 깊을 수 있다고 분석하는 이유는 뭘까.
김 위원은 “불펜 투수들이 스타일별로 포진해 있어 선발 투수가 5회만 던져주면 됐던 SK와 7회까지 버텨줘야 하는 두산의 차이”라고 설명했다.
“선발이 5회만 던져주면 된다”는 뜻은 상대 팀 타자들과 두 타석씩만 만나면 된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7회까지 던져야 한다”면 그 타석이 한번 더 늘어난다. 그만큼 한 투수의 공이 타자들에게 익숙해 질 기회가 늘어남을 의미한다.
세 타석을 모두 똑같은 승부구로 상대할 수는 없는 일. 매 타석 배합을 달리하고 승부를 다르게 걸어야 한다는 부담은 그 횟수가 늘어날 수록 포수에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1,2차전서 홍상삼이 내리 홈런을 허용, 두산의 불펜 활용폭은 더욱 좁아질 수 밖에 없었다. 3차전 선발 이용찬과 그를 리드해야 하는 양의지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졌다.
결과는 썩 좋지 못했다. 이용찬은 주무기인 포크볼이 롯데 타자들에게 집중 공략을 당하며 4.1이닝 만에 마운드를 내려갔다. 1차 작전은 실패였던 셈.
그러나 두산의 투수 운영은 물론 양의지의 부담까지 가볍게 해 줄 구세주가 나타났다. 신인 사이드암스로 투수 변진수가 주인공이었다. 변진수는 두산이 3-2로 앞선 5회 2사 1,3루 위기서 마운드에 올라 홍성흔을 우익수 플라이로 막아내며 이닝을 종료시켰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6회와 7회를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팀 승리에 든든한 발판을 놓았다. 변진수가 흔들렸다면 두산의 구상 자체가 무너졌을 터. 다음도 기약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과감하게 타자를 윽박지르는 변진수의 승부수는 두산 벤치에 큰 활력을 불어넣었다.
앞으로의 경기에 대한 기대도 크게 끌어올렸다. 양적으로 부족했던 불펜 운영에 힘을 더할 수 있음을 증명하면서 선발 투수가 짊어져야 할 이닝을 줄여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양의지도 이 계산을 머리에 넣는다면 한결 수월한 볼배합이 가능할 것이다.
과연 변진수가 만들어낸 변수가 이후 시리즈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매우 흥미롭다.
*주(注) : 결과론과 가정(if)은 결과를 바꾸지는 못합니다. 결과만 놓고 따져보면 누구나 승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과론은 야구를 즐기 는 또 하나의 방법입니다. 모두 감독이 되어 경기를 복기(復棋) 할 수 있는 것은 야구의 숨은 매력이라 생각합니다. 만약애(晩略哀)는 치열한 승부 뒤에 남는 여운을 즐길 수 있는 장이 됐으면 합니다.
만약애(晩略哀)는 ‘뒤늦게 둘러보며 느낀 슬픔’이란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