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PS 만약애(晩略哀)]선발 요원 김명제의 힘겨운 불펜 투수 적응기

정철우 기자I 2008.10.17 23:15:02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1999년 한.일 슈퍼게임 때 이야기다. 당시 방송 해설위원으로 맹활약 중이던 하일성 KBO 사무총장은 한국 올스타팀이 일본 에 밀리자 "선수 구성을 다르게 해야 한다. 선발이나 마무리 투수들만 데려오니 중간 계투에서 제 몫을 해줄 선수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 총장의 지적은 정확했다. 야구가 발전할수록 투수 분업화는 더욱 세분화 되는 추세다. 보직이 자잘하게 구분될 수록 각 분야별 전문성도 높아진다. 단순히 컨디션이 좋다고 중간 계투로 등판해 좋은 공을 뿌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그 무대가 한 시즌을 정리하는 포스트시즌이라면 더욱 그렇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위험 요소를 안고 있는 것 또한 분명하다.

17일 두산은 3-1로 앞선 7회 1사 1,2루서 정재훈 대신 김명제를 올렸다. 김명제는 부상에서 복귀한 후반기 불펜 경험이 있긴 했지만 팀에선 장기적인 선발 요원으로 기르고 있던 투수다.

김명제는 첫 타자 양준혁에게 좌전 안타를 맞고 1점을 빼앗긴 뒤 계속된 2사 2,3루서 폭투로 동점, 5번 최형우에게 2루타를 얻어맞고 역전을 허용했다.

좀 더 찬찬히 살펴보자. 김명제는 첫 타자 양준혁을 상대로 잇달아 볼 두개를 던졌다. 다음 타자가 교체된 현재윤이었지만 박빙 상황에서 누를 채워줘선 안됨을 감안하면 양준혁은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었다.

그러나 직구 두개가 잇달아 타깃을 벗어났다. 불펜 투수, 그것도 승리를 담보하는 필승 계투조에겐 변하지 않는 지상 과제가 한가지 있다. '절대 위기 상황에선 초구부터 무조건 승부구'가 그것이다.

공 하나, 볼 카운트 하나의 변화에 따라 경기 분위기와 던질 수 있는 공의 범위가 정해지는 것이 불펜 투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급 불펜 투수들은 자신이 마운드에 오를 즈음이면 머릿 속으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고 던질 공을 정해둔다.

선발 투수에겐 필요 없는 덕목이다. 경기 전체를 보아야 하는 선발 투수에겐 부담만 가중될 뿐이다.

두산은 포스트시즌서 지난해보다 중량감이 떨어지는 선발진을 보완하기 위해 투수 전원 대기령을 내려 놓은 상황이다. 다행히 대부분 투수들이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가을 야구의 험난함을 이겨낼 수 없다. 낯선 보직, 낯선 자리에 설 때 어떻게 헤쳐나갈지에 대한 준비도 필요하지 않을까.
 
*주(注) : 야구에서 결과론과 가정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결과만 놓고 따져보면 누구나 승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과론은 야구를 즐기 는 또 하나의 방법입니다. 모두 감독이 되어 경기를 복기(復棋) 할 수 있는 것은 야구의 숨은 매력이라 생각합니다. 만약애(晩略哀)는 치열한 승부 뒤에 남는 여운을 즐길 수 있는 장이 됐으면 합니다.

만약애(晩略哀)는 '뒤늦게 둘러보며 느낀 슬픔'이란 뜻입니다.


▶ 관련기사 ◀
☞삼성, 5시간7분 혈투 PO 2차전 승리...1승1패 균형
☞선동렬 감독 "내 미스 때문에 경기가 길어진 것 같다"
☞김경문 감독 "7회 김명제 교체는 감독 미스"
☞[베이스볼 테마록]삼성은 두산 도루 저지에 실패한 것일까
☞[16일] 두산 '발야구' 앞세워 PO 첫판 잡았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