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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유동근은 극 중 마크 로스코에 푹 빠져 있었다. 미술과 철학, 인간의 삶과 고민을 담은 쉽지 않은 작품답게 그의 답변 또한 작품과 연기에 대한 고민이 깊이 묻어났다. 유동근은 “‘레드’는 내 주변의 모습을 담아낼 수 있는 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인 작품”이라며 “매회 다른 연기를 하게 되는 연극만의 묘미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유동근은 1980년 TBC 23기 공채 탤런트로 배우로 정식 데뷔했다. 배우 데뷔 이전 극단 생활을 잠시 했지만 무대 스태프를 주로 맡았다. 배우 데뷔 이후에도 힘든 시간을 보냈다. 언론통폐합으로 TBC가 KBS2로 흡수 통합되는 과정에서 일거리가 줄었기 때문. 연극 무대에 선 시기도 그때였다. 유동근은 “시나리오 작가였던 유열 선생님이 엘칸토 소극장과 저를 연결시켜줬다”며 “이후 ‘호동왕자와 낙랑공주’라는 연극도 했는데, 그때 (아내) 전인화가 낙랑공주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1986년 공연한 연극 ‘호동왕자와 낙랑공주’는 유동근과 전인화가 처음 만난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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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그의 이미지는 사극 드라마 속 ‘왕’의 모습이다. 그런 그가 ‘레드’에선 예민함으로 똘똘 뭉친 화가로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동시에 왕과 같은 엄격함도 드러낸다. 특히 켄을 대할 때가 그렇다. 마크 로스코는 켄을 향해 “난 너의 아버지도, 정신과 의사도, 스승도 아나고 단지 고용주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극이 전개되면서 마크 로스코는 아버지이자 스승이며 친구처럼 켄에게 진심을 담은 조언을 전한다. 실제 유동근은 어떤 아버지일지 궁금했다.
“많은 분들이 제가 강한 이미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배우는 배역을 맡아서 하는 사람일 뿐이죠. 저도 집에서는 가족이 시키는 대로 합니다. 집사람이 이렇게 하라는 대로 하고, 딸이 이걸 입으라고 하면 입죠. 절대 집에서는 강한 아버지가 못돼요. 굉장히 여린 사람입니다. 하하하.”
유동근이 연기하는 ‘레드’는 다음달 19일까지 만날 수 있다. 오랜만에 연극을 경험한 만큼 앞으로도 무대를 자주 찾게 될지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무대에 설 계획은 없다”였다.
“며칠 전 이순재 선생님이 연출한 연극 ‘갈매기’를 보러 갔습니다. 선생님이 ‘어떻게 이 어려운 연극(레드)을 하냐’고 격려해주셨죠. 그러면서 다음에 작품을 같이 하자고 하셨는데, 저는 ‘아닙니다. 선생님, 제가 무슨’이라고 말했어요. 배우는 계획이 없어요. 배우는 뽑혀야 하는 직업이니까요. 배우는 자신이 맡은 배역에서 빠져나오는 시간을 갖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레드’ 생각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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