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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올림픽]이규혁의 역주와 아버지 록키 발보아

정철우 기자I 2014.02.11 12:47:43
이규혁이 10일(한국시간) 소치 해안클러스트 아들레르 아레나에서 열린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 2차 레이스를 마친 뒤 관중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오른쪽은 록키 발보아 포스터.
[이데일리 스타in 정철우 기자]4년 전, 밴쿠버동계올림픽이 끝났을 때 한국은 한참동안 축제에 들떠 있었다. 여왕 김연아의 대관식과 함께 이상화 이승훈 모태범으로 이어지는 빙속 삼총사의 금빛 질주까지. 한국 동계스포츠의 위상이 한껏 드높여진 대회의 뒷풀이가 길게 이어졌다.

이규혁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그에게 남은 건 ‘무관, 그러나 5번의 올림픽 도전’ 뿐이었지만 그는 후배들을 더 빛나게 하는 자리에 기꺼이 나섰다. 당시 이규혁은 환하게 웃으며 “실패를 극복하는 법은 내가 제일 잘 안다. 이제 후배들을 위해 그 힘을 쓸 것”이라고 했었다. 그렇게 우리는 그가 웃으며 자신의 첫 번째 인생을 정리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규혁은 그 순간에도 울고 있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무언가를 억누르지 못하는 자신을 원망하면서….

그의 진심은 한 방송사의 카메라에 잡혀 있었다. 밴쿠버 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이 모두 끝난 경기장을 홀로 떠나지 못한 채 서서이던 모습. 그리고 그는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실패를 참는 건 정말 자신 있었는데 이번은 정말 힘들다.”

그때 그는 어쩌면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아직 할 수 있다는 열정이 가슴 속에서 조금도 식지 않은 상황. 가만히 묻어두로 포기하려 해도 울컥 울컥 솟아 오르는 깊은 곳의 울림. ‘끝까지 한 번 더 해보자.’

그러나 세상의 눈이 그를 어떻게 바라볼지는 뻔했다. 4년 후 소치올림픽이라면 만 나이로도 서른 여섯이 된다.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로 뛴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나이였다. 후배들 자리나 막고 서 있는 걸림돌 취급을 받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규혁은 그 모든 비난을 딛고 다시 빙판에 섰다. 은퇴 선언과 자존심은 열정 아래로 접어두었다.

그리고 또 그는 실패했다. 10일(이하 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1,2차 합계 70초65의 기록으로 18위에 그쳤다. 그가 올림픽 메달에 가장 가까이 갔던 1000m(토리노. 4위)가 남아 있지만 그 역시 메달과는 거리가 멀 것이다.

하지만 이규혁은 이미 승자의 길을 걷고 있다. 열정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도전, 끝이 무엇인지 알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진심은 보는 이들에게 충분히 전달됐기 때문이다. 그 보다 높이 올라 간 사람은 많아도 그 만큼 많은 울림을 전해준 이는 많지 않다.

영화 록키 발보아는 60에 접어 든 한물 간 챔피언 록키가 20대의 새파란 현역 챔피언에게 도전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영화다. 록키는 말리는 옛 스승에게 “내 가슴에서 야수가 울부짖고 있어요”라며 목놓아 운다. 그리고 조용히 도전을 준비한다.

장성한 그의 아들은 록키에게 소리친다. “당신의 아들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세요. 그런데 또 사람들이 조롱하는 아버지를 보란 말인가요. 당장 그만두세요.”

록키는 그런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가 얼마나 센 펀치를 날리느냐가 아니라 네가 수 없이 많은 펀치를 맞으면서도 앞으로 전진하고 하나씩 얻어가는 것이 진정한 승리란다.”

영화에서 처럼, 이규혁은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 이미 승리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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