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빈첸 "인간이 싫었던 스무살 이병재, 음악으로 풀어냈죠" [인터뷰]

김현식 기자I 2020.07.24 16:28:28

첫 정규앨범 '유사인간' 발표
이미지 구현 위해 15kg 감량
"좋은 영향 주는 뮤지션되고파"

[이데일리 스타in 김현식 기자] “인간이란 종이 싫었고, 인간이 느끼는 감정도 싫었어요.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이 인간으로 살아가야 하는 ‘유사인간’인 상태였죠.”

올해로 스물 한 살이 된 빈첸(VINXEN, 본명 이병재)은 방황의 시간을 보냈던 ‘스무 살 이병재’를 돌아보며 이 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난 9일 발표한 첫 정규앨범 ‘유사인간’을 “힘들고 우울해 술에 빠져 살았던 스무 살의 이병재를 모아놓은 앨범”이라고 소개했다.

“현재에 살지 못했어요. 오늘을 살고 있으면서 과거를 생각하며 후회하곤 했죠. 매일 그랬던 것 같아요. 왜 그랬는지는 원인이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아요. 핑계를 대자면 우울증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나름 어린 나이에 방송으로 유명세를 얻고 난 뒤 혼란스러움을 겪은 영향이 컸던 것 같기도 해요.”

빈첸은 2018년 방영한 엠넷 고교 랩 서바이벌 프로그램 ‘고등래퍼2’에서 준우승을 차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받으며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나이 열아 홉. 빈첸은 앨범 소개글에서 수록곡 ‘블라인드’(BLIND)를 설명하며 ‘열아 홉이라는 나이에 갑자기 많은 걸 얻어서 혼란스러웠고, 스무 살에도 그 혼란함이 가시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그 시절이 마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검정색과 같았다’는 빈첸. ‘유사인간’은 그 시기에 만들어낸 14트랙으로 구성된 앨범이다. 빈첸은 “스물 한 살의 이병재가 들었을 땐 아픈 앨범”이라고 했다.

“앨범을 다 완성하고 나서 돌려 들어 보니 짠하더라고요. 제가 제 노래 듣고 그러는게 웃기는 일기도 하지만, 가사를 썼을 때의 감정상태나 상황을 가장 잘 아는 게 저니까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넌 진짜 원하는 거니 내 바닥 … (중략) / 짓밟힌 날들 사이로 난 꽃봉오리 피워 / 또 다시 짓밟히겠지만 볼륨을 키워 / 악마들의 소리에 천사가 죽지 않기를 … ’

빈첸은 스킷 트랙인 ‘꽃봉오리’를 통해 ‘악플러’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녹이기도 했다. 그는 앨범 소개글에서 ‘꽃이 피기도 전에 글자들에 많이 짓밟혔다’는 표현는 썼다.

“어린데다가 음악을 오래한 것도 아닌 이제 막 시작하는 애한테 TV에 나왔다는 이유로 어떻다 저렇다 하면서 인신공격을 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았어요. ‘꽃봉오리’ 가사는 그런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해요.”

빈첸은 ‘스투피드 나잇’(STUPID NIGHT)라는 곡을 통해선 한 달에 술값에 천만 원씩 쓰며 바보처럼 지내던 때의 이야기를 꺼내기도, ‘바람’이라는 곡으로는 인간이 없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을 당시의 심경을 고백하기도 했다. 또, ‘바다’라는 곡에는 슬럼프에 빠져 아무것도 못하고 있을 때 하염없이 천장을 바라보며 떠올린 옛 기억을 녹였다.

타이틀곡으로 꼽힌 ‘i’(아이)의 경우 부모님에게 평소 하고 싶었지만 하기 부끄러워서 못했던 ‘사랑해’라는 말을 하는 과정을 그린 곡이다. ‘가족’은 이번 앨범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 중 하나. 빈첸은 ‘바래’와 ‘회고록’이라는 곡에 부모님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부모님께는 여러모로 항상 미안하고 죄송스러운 마음이 있었어요. 음악하겠다고 학교를 자퇴할 때 마찰이 심하기도 했고요. 지금은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는 부모님께 고맙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기도 했고요. 엄마는 그 문자를 보고 우셨다고 하더라고요.”

‘유사인간’을 ‘정주행’해 듣다 보면 ‘스무 살 이병재’의 모습이 눈에 보인다. 그만큼 짜임새 있는 서사구조가 돋보이는 완성도 높은 앨범이다. 빈첸은 과하지 않는 적절한 선에서 솔직한 자기고백을 했고, EDM 프로듀서와 협업을 펼치는 등 다채로운 사운드를 시도하며 앨범을 듣기에 지루함이 없도록 했다.

그런가 하면 빈첸은 ‘유사인간’이라는 앨범 타이틀에 걸맞은 이미지를 구현하기 위해 두 달간 체중을 15kg이나 감량하고 재킷 촬영에 임하는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80kg까지 나갔었는데 65kg까지 뺐어요. 원래 살을 빼고 싶었는데 1년 넘게 못 빼고 있었는데 이번 계기로 다이어트에 성공했죠. 원래 팬들이 ‘뚱냥이’라고 불렀는데 요즘에는 ‘홀냥이’라고 하더라고요. (미소). 아, 그리고 흔히 인간이라고 하면 저희 시대처럼 옷을 걸치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잖아요. 그런데 전 1차원적인 맨몸의 인간을 떠올렸고, ‘유사인간’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서 러프하게 상의를 탈의한 채 재킷을 걸친 거예요. 아마 살을 못 뺐다면 제가 원하던 구현하는 이미지가 안 나왔을 것 같아요.”

“‘유사인간’을 마지막으로 사람 사는 것처럼 살아보려고 한다.” 빈첸은 첫 정규앨범을 낼 당시 소속사를 통해 이렇게 밝힌 바 있다. 인터뷰 말미에 빈첸은 “마음 공부를 한 덕분에 지금은 컨디션이 좋아진 상태”라면서 “예전에는 좋은 글귀를 보면 ‘네가 뭘 알아’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했지만, 지금은 만물이 다름을 인정하고 어디에든 배울 게 있다는 생각으로 지내고 있다”고 했다.

‘좋은 영향을 끼치는 뮤지션이 되고 싶다’는 새로운 다짐도 생겼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제가 상당히 우울한 이미지로 방송에 나왔었잖아요. 그런 노래도 많이 냈었고요. 그래서인지 제 팬 분들중에서도 우울증으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제가 그러다가 지금 나아졌잖아요. 앞으로 제가 어려운 시기를 이겨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팬 분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고 싶어요. 보고 느낀 바들을 음악에 잘 녹여내 보려고요,”

아쉽게도 첫 정규앨범을 내고도 코로나19 여파로 공연을 열기가 어려운 상황. 빈첸은 훗날 라이브 세션에 맞춰 공연을 선보일 수 있도록 연습에 임하고 있다고 했다. 또 발매 형태를 정하진 않았지만 만들어놓은 곡들이 많다면서 지속적인 관심과 응원을 당부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