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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박미애 기자]임순례 연출·김태리 주연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입소문을 타고 롱런 중이다. ‘리틀 포레스트’는 순 제작비 15억원의 저예산 영화라는 점에서 100만 관객 돌파(14일까지 누적관객 120만명)의 의미는 특별하다.
△힐링무비
‘리틀 포레스트’는 한 청춘의 성장 스토리를 그린다. 임용 고시에 떨어지고, 도시의 일상에 지친 혜원(김태리 분)이 도망치 듯 고향에 돌아와 사계절을 보내면서 삶의 대한 태도를 바꿔가는 이야기다. 영화는 시골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스크린에 펼쳐낸다. 새롭게 돋아난 새싹을, 푸른 빛깔을 더해가는 녹음과 누렇게 익어가는 황금빛 볏논 그리고 하얗게 눈덮인 세상을 아주 가깝게(익스트림 클로즈업 숏) 또 아주 멀게(익스트림 롱 숏) 자연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해내 보여준다. 부드러운 은은한 질감의 수채화를 프레임에 옮겨놓은 것 같은 영상미에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 보고 있는 것만으로 몸은 풀어지고 마음은 정화된다.
음식도 자연과 더불어 힐링을 주는 요소다. 혜원이 고향에 돌아오자마자 한 일은 허기진 배를 채우는 것이었다. 혜원이 손수 쌀밥을 짓고 시래기 국을 끓이는 과정을 뜸을 들이듯 찬찬히 보여준다. 고향 집에서 첫 끼를 시작으로 김치수제비·배추전·아카시아 꽃 튀김·오이 콩국수·감자빵·파스타·떡볶이 등 주변에서 얻을 수 있는 제철 재료로 마법을 부리듯 끊임없이 시각과 청각을 자극하며 음식의 향연이 이어지는데 혜원이 친구들과 맛있게 먹는 모습을 지켜보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키게 된다. 특히 혜원에게 음식은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만이 아닌 단절된 관계를 이어주는 확장된 의미를 지닌다. 현대인의 삶도 마찬가지다.
밥 한 끼 해결하는 것이 어려운 요즘이다. 밥을 짓는 건 고사하고 먹을 여유조차 없어서 인스턴트 음식이 넘쳐난다. 혜원도 도시에서 생활하며 인스턴트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곤 했지만 아무리 먹어도 허기진 배를 채우지 못했다. 마음의 허기까지 해결하지 못해서다. ‘리틀 포레스트’는 제대로 된 한 끼 식사를 통해 마음의 허기를 달래고 삶의 여유를 돌아보게 한다.
△여성무비
‘리틀 포레스트’는 여성 감독이 연출하고,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다. 영화진흥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2013~2017) 총 제작비 10억원 이상 또는 최대 스크린 수 100개 이상의 영화(한국 상업영화)가 평균 73편인데 여성 감독이 연출한 상업영화는 평균 5편(6.8%)에 불과했다. 여성이 주연인 영화는 총 321편(애니메이션·다큐멘터리 제외) 중 77편으로 약 24%였다. 2017년에는 25.8%로 평균보다 높았는데, 이는 총 제작비나 개봉규모가 작은 상업영화가 다수 제작됐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50위권에 1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중 여성이 주연한 영화는 ‘아이 캔 스피크’ ‘장산범’ ‘악녀’ 세 편에 불과했다. ‘리틀 포레스트’는 남성 위주 영화가 넘쳐나는 충무로에서 여성이 연출하고 여성이 주연한 영화도 관객에게 매력을 어필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영화다.
서사를 이끄는 혜원을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감독 박찬욱)로 데뷔한 신예 김태리가 연기했다. ‘리틀 포레스트’는 김태리의 세 번째 장편영화다. 신분과 성별을 뛰어넘는 사랑을 쟁취한 ‘아가씨’의 하녀에서 ‘1987’(감독 장준환)에서 시대의 아픔에 눈을 뜨는 그 시절의 청춘을 거쳐, ‘리틀 포레스트’에서 고단한 삶에 지친 오늘날 청춘의 모습으로 스크린에 자리했다. 김태리는 ‘아가씨’부터 ‘리틀 포레스트’까지 언론과 평단, 관객을 골고루 만족시키며 ‘좋은 배우’로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 늘 배우, 특히 여배우 기근인 충무로에서 ‘리틀 포레스트’의 흥행이 반가운 이유다. 임순례 감독은 “한국영화산업에서 여성 영화인들이 점점 소외돼가는 현실에서 ‘리틀 포레스트’가 한국영화의 다양성에 일조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그런 점에서도 김태리의 향후 행보가 기대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