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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충북 음성에서 출생한 고인은 원조 한류스타로 한 시대를 풍미한 코미디계 대부였다. 1960년대 초반 미국 유학길에 올라 오하이오 웨슬리언 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그는 1959년 국내에서 먼저 방송인으로 데뷔한 뒤 미국으로 넘어가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활약했다. 자신이 동양인으로서 받아왔던 성적, 인종차별적 발언들을 툭툭 받아치고 넘기는 특유의 유머와 농담이 현지 관객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1977년 산타 모니카 코미디 클럽에서 NBC ‘투나잇쇼’의 호스트로 저명한 방송 진행자였던 자니 카슨에게 발탁됐고, 당시 현지 최고 인기 토크쇼였던 ‘자니 카슨의 더 투나잇 쇼’에 아시아인 최초로 출연해 유명세를 탔다. 그가 ‘투나잇쇼’ 출연 기회를 얻게 된 일화도 유명하다. 당시 영화 ‘벤허’에 출연했던 배우 찰턴 헤스턴이 행사 시간에 맞춰 도착하지 않자 자니윤이 20분이 넘는 대기 시간 동안 즉석에서 쇼를 진행한 게 자니 카슨에게 좋은 인상으로 남았다고 전해진다.
그의 영어 이름 ‘자니’는 한국 이름 ‘종승’을 미국인들이 발음하기 어려워해 존(John)이란 이름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애칭 ‘자니’로 발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자니윤은 1989년에서 1990년까지 한국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자니윤 쇼’를 진행했다. ‘자니윤 쇼’는 한국 토크쇼의 뿌리가 됐다. 그의 클로징 멘트였던 ‘이제 잠자리에 들 시간입니다’는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미국에서 자유자재로 구사하던 농담은 군사정권 시절 굳어진 경직된 사회 분위기와 맞지 않았고 결국 방송은 1년 만에 폐지됐다. 고인은 이후 KBS2 예능 ‘승승장구’에 출연해서도 “당시 언론의 자유가 없었고 방송에서도 제한된 것들이 많았다. 열심히 방송을 해도 편집당하기 일쑤였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자니윤은 이후에도 SBS ‘자니윤, 이야기쇼’, iTV 토크쇼 ‘자니윤의 왓츠업’, KBS ‘코미디 클럽’ 등에 출연하며 활발히 활동을 이어갔다.
정치권과의 인연도 깊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헤 당시 후보의 선거캠프 재외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고 2014년 한국관광공사 감사로 임명됐다. 그러나 2016년 뇌출혈로 감사직에 물러난 뒤 미국으로 돌아갔다. 지난 2017년 12월에는 자니윤이 알츠하이머 투병 중이라는 소식도 전해졌다.
한편 고인의 시신은 평소 고인의 뜻에 따라 UC어바인 병원에 기증됐고 장례도 가족장으로 간소하게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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