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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선진국 끄트머리까지 갔다. 스포츠 강국으로 위상은 더 커졌다. 세계 곳곳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 늘었다. ‘OOO 보유국’이라는 자부심도 생겼다. 스포츠는 여전히 대한민국의 자랑이다. 2024년 파리올림픽에서도 금메달 13개를 성취하며 스포츠 강국의 입지를 지켰다. 특히, 국민들은 목표치를 훌쩍 넘어선 결과보다는 젊은 선수들의 주는 긍정적인 에너지에 열광했다. 선수들의 기량을 유지하기 위한 스포츠 과학, 스포츠 심리학의 발전도 조명받았다. 성과보다는 성취에 주목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스포츠 행정은 거꾸로다. 오히려 30~40년 전보다 더 후퇴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시대의 조류가 바뀌었는데, 거버넌스(governance)는 그대로이기 때문에 후퇴의 현저성(salience)이 심각한 것이다.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체육계 수장(首長)들의 행태가 특히나 더 그렇다.
국회까지 불려 나간 체육계 수장들의 행태는 ‘조직의 사유화’, ‘태도 논란’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사돈을 체육회 요직에 기용하고, 유례없는 장기간 보직 독점, 파격 초고속 승진 등의 특혜를 베풀었다는 의혹에 휩싸여있다. 이 밖에도 ‘청탁금지법 위반 의혹’, ‘일감 몰아주기·불법수의 계약 의혹’, ‘개인 비리 의혹(운영 회사 불법 행위 및 자선 재단 실존 여부)’ 등의 문제가 제기됐다. 태도 논란도 있었다. 국회에 출석해서는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했고, 국회 출석 명령도 이행하지 않았다. 이기흥 회장에 대한 안하무인, 무소불위라는 평가를 그대로 보여주는 행태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3선 도전에 나섰다.
연임을 노린다는 점에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도 비판받고 있다. 정몽규 회장은 4선 도전을 공공연하게 밝혀왔다. 그러나 정 회장은 ‘홍명보 감독 선임 논란’, ‘아내 식당 법인카드 몰아주기 의혹’, ‘축협·현대산업개발 유착 의혹’, ‘축구 마피아 의혹’ 등의 문제가 국정감사에까지 다뤄지면서 연임을 반대하는 국민들의 여론이 커졌다.
‘안세영 폭로 사태’로 각종 비리 의혹이 수면 위로 드러난 대한배드민턴협회도 마찬가지이다. 대한체육회나 대한축구협회처럼 회장의 독재 체제는 아니지만, 파리올림픽 여자 단식 금메달리스트 안세영 등 국가대표, 꿈나무 선수들을 동의 및 출연료 지급 없이 후원 기업에 강제 동원 했다는 내용이 골자인 폭로 문건이 국정감사 자료로 공개돼, 배드 거버넌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그 와중에 국정감사에 출석한 김택균 대한배드민턴협회장도 불성실한 답변 태도로 공분을 일으켰다. ‘기분이 태도’가 되는 전형적인 장면이었다.
‘회장님들의 착각’에 대한민국 스포츠는 후진국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회장님들의 착각은 “나 아니면, 안된다”라는 것이다. 이기흥 회장이나 정몽규 회장의 행태가 그렇다. 구시대적 발상이라 비판받은 겨울 ‘해병대 캠프’ 훈련으로 인해 좋은 결과를 냈다는 인식이 대표적이다. 출생률 감소로 인한 인구 절벽이 시작됐는데, 엘리트 스포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저변을 확대하고, 스포츠 인구를 늘리는 것이 대한민국 스포츠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스포츠 거버넌스가 주도해야 할 핵심 의제이다. 학업을 수행하면서, 전문적인 일을 하면서도 올림픽에 참가해 메달을 따는 얘기가 해외토픽에서만 다뤄져선 안 된다. 대한민국의 스토리가 돼야 한다. 그러나 ‘권위에 취한 회장님’들은 ‘자리 지키기’에만 몰두 중이다. ‘대한민국 스포츠의 미래가 없다’, ‘스포츠 후진국으로 전락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게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대한민국 스포츠는 새롭게 시스템을 세워야 한다. 구시대적인, 권위적인 인물, 조직으로는 한계가 있다. 오히려 배드 거버넌스가 널리 알려진 지금이 기회가 될 수 있다. 새 판을 짜야 한다.
한국외대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전 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