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작업실에서 이데일리와 만난 그는 “곡을 쓰면서 의도했던 바와 색깔을 온전히 표현하면서 저만의 감성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는 점에서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는 요즘이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20여년간 작곡가 일을 하면서 쌓인 미발표곡이 정말 많다. 10년 정도는 새로운 곡을 쓰지 않아도 될 정도”라면서 “다른 가수의 목소리를 통해 세상에 나왔지만 빛을 보지 못하고 묻힌 곡들까지 직접 가창해 발표해볼 생각도 있다. 싱어송라이터로서 부지런하게 활동을 펼칠 계획”이라고 했다.
사실 유해준은 작곡가가 아닌 가수로 먼저 가요계에 발을 들였다. 1998년 듀오 캔의 원년 멤버로 데뷔했다가 첫 앨범 활동만 펼친 뒤 팀을 탈퇴하고 작곡가로 전향했다. 유해준은 “원래 싱어송라이터가 꿈이었고 대학에서도 보컬을 전공했다”고 했다. 이어 그는 “데뷔 이후 제가 부른 노래는 반응이 없고 작곡한 노래는 너무나 반응이 좋았다”며 “결국 당시 소속사 사장님이 작곡가로만 활동하는 게 좋겠다는 결정을 내리면서 데뷔하자마자 은퇴한 비운의 가수가 됐다”고 지난 날을 돌아보며 웃었다.
그는 “첫 히트곡은 ‘무기여 잘 있거라’였다. 당시 노래방에 방이 10개면 8개 정도는 다 그 노래를 부르고 있을 정도였다”면서 “버스비 1000원이 없어서 못 다닐 정도였는데 그 노래가 히트한 이후 삶이 바뀌었다”고 흐뭇해했다.
‘잘가요’와 ‘천년의 사랑’에 대해선 “요즘도 가끔 택시나 버스에서 흘러나올 때 들어보면 ‘내가 작곡한 노래 맞나? 진짜 잘 썼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곡들”이라며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웠을 정도로 미친 듯이 작곡을 하던 시절에 썼던 곡들이라 더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는 국내를 넘어 일본에까지 이름을 떨친 계기가 된 곡이라 각별하단다. 유해준은 “그 노래 덕분에 한동안 일본에서 ‘신’(神) 대접을 받았다. 현지에서 그 곡으로 공연도 자주 했는데 눈물을 글썽인 팬들이 정말 많았고, 심지어 ‘한국에 가지 말고 이곳에서 살아달라’고 하는 팬 분도 있었다”는 추억담을 꺼냈다. 그는 “지금까지도 응원을 보내주는 일본 팬 분들이 있다”며 “코로나19 전 마지막 공연 때도 일본 팬분들이 현장을 찾아주셨고 덕분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도 했다.
싱어송라이터 활동에 집중하고 있는 유해준은 ‘나에게 그대만이’, ‘미치게 그리워서’, ‘내 소중한 사람에게’, ‘왜 이렇게 난 니가 보고 싶은지’, ‘단 하나의 사랑’ 등 직접 부른 곡들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가창까지 맡은 곡 중에선 ‘나에게 그대만이’를 향한 반응이 특히 뜨겁다. 싱어송라이터 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전 드라마 ‘다함께 차차차’ OST로 만들고 불렀던 곡인데 입소문을 타고 서서히 인기를 얻은 끝 유해준의 대표곡으로 자리 잡았다.
유해준은 “오직 입소문만으로 많은 분께 알려진 노래”라며 “한 팬이 유튜브에 올린 ‘나에게 그대만이’ 영상 조회수는 어느덧 2000만건쯤 되더라.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놀랍기도 하고, 하늘에 절을 하고 싶을 정도로 감사한 마음도 든다”고 했다. 이어 “‘혼술’하다가 생각나서 듣고 울고 간다고 하는 댓글을 많이 봤다. 여성 분들은 언젠가 사랑하는 남자가 자신에게 불러줬으면 하는 노래라면서 단 한 사람만을 향한 사랑을 노래한 가사 내용을 좋아하시더라”고 곡에 대한 반응을 소개했다.
짙은 음색과 진솔함이 느껴지는 깊이감 있는 감정 표현력은 유해준 보컬의 특장점이다. 유해준은 “테크닉보단 감정에 호소하는 스타일의 보컬이다 보니 곡 내용에 감정이입하며 공감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옆집 오빠가 불러주는 것 같아 친근함이 든다’는 반응도 많다”며 웃었다.
그는 “‘나에게 그대만이’를 작업할 땐 감정이 안 살아서 고생을 많이 했다. 3일째가 되어서야 첫 소절 부를 때 가슴에서 울컥하는 게 느껴져 녹음을 시작했다”는 뒷이야기를 전했다. 이어 “20대 때 겪은 연애 경험담이 제 노래 가사의 영감 원천이다. 그때 당시의 순수했던 감성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라며 “어쩔 땐 아픈 기억을 꺼내 가사를 쓰고 난 뒤 감정을 너무 많이 소비해서 탈진할 정도가 되기도 한다”고도 했다.
최근 발표한 신곡 ‘그대 바보’의 경우 아픈 사랑 이야기가 아닌 사랑이 찾아온 따뜻한 봄날을 주제로 한 발라드곡이다. 유해준은 “봄과 어울리도록 평소보다 힘을 빼고 노래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지금은 발라드곡만 내고 있지만, 향후 록, EDM 등 다양한 장르의 곡들도 들려 드릴 계획이다. 신나는 분위기의 신곡을 써볼까도 생각 중”이라고 했다.
인터뷰 말미에 유해준은 베스트 앨범 발매를 준비 중이라는 계획도 밝혔다. 그는 “직접 가창한 곡들 중 팬 여러분이 가장 좋아해주신 10곡 정도를 수록해 5월 중 발매할 계획”이라면서 “유해준 이름을 내건 피지컬 음반을 제작하는 건 처음이라 감회가 새롭고 가슴 벅차다. 또 6월 4일과 5일에는 서울에서 콘서트를 열고 연말에는 앨범을 LP 바이닐로도 발매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유해준은 “음악도, 보컬 스타일도 예스러운 가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점점 팬들이 늘어나고 있다. 제 노래 ‘왜 이렇게 난 니가 보고 싶은지’를 컬러링을 쓰고 있다는 개그맨 지상렬 씨가 팬이라면서 전화한 적도 있다”며 “앞으로 싱어송라이터로서 공연과 방송 활동도 적극적으로 해볼 생각이다. 즐겁고, 행복하게 음악 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