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월드컵 통해 드러난 세계축구흐름의 큰 변화

이석무 기자I 2014.07.15 11:19:48
새로운 형태의 스리백 전술로 네덜란드의 돌풍을 이끈 루이스 판 할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 사진=Gettyimages/멀티비츠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전차군단’ 독일의 우승으로 막을 내린 2014 브라질월드컵은 세계 축구 흐름의 변화가 고스란히 나타난 대회였다. 특히 전술적인 면에서 새로운 바람이 몰아치면서 더욱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번 브라질월드컵을 통해 드러난 축구 전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살펴보도록 하자.

▲퇴물 전술이었던 스리백(3-back)의 화려한 부활

3명의 중앙 수비수를 배치하는 스리백 시스템은 ‘최고의 리베로’라 불리는 프란츠 베켄바워의 등장과 함께 1990년대까지 세계 축구를 지배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이룬 한국의 ‘4강 신화’도 홍명보라는 걸출한 리베로를 중심이 된 스리백으로 이룬 성과였다.

스리백은 2000년대 들어 포백 시스템에 밀려 설 자리를 잃었다. 4명의 수비수를 일자로 배치하면서 좌우 측면 풀백이 활발하게 공격에 가담하는 형태의 포백은 스리백보다 훨씬 공격적이다. 미드필드 싸움을 벌이는데 훨씬 수월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후 포백은 최근까지도 당연한 수비 전술로 받아들여졌다. 스페인의 ‘티키타카(짧고 세밀한 패스 위주의 점유율 축구)’ 축구가 월드컵과 유럽선수권대회를 정복하면서 포백의 전성기는 절정에 이르렀다.

하지만 브라질월드컵에서 스리백은 화려하게 부활했다. 3위를 차지한 네덜란드와 중남미 돌풍의 주역 칠레, 코스타리카, 멕시코 등이 스리백을 구사해 재미를 봤다.

네덜란드는 기존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공격적인 스리백이었다. 3명의 중앙 수비수는 단순히 최후방에서 골문 앞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미드필드까지 과감히 올라와 적극적인 압박을 했다. 중앙 수비수가 자리를 비우면 좌우 윙백이 내려와 그 자리를 유기적으로 메웠다. 상황에 따라 3백이 됐다가 5백으로 바뀌었고 수비가 잘 풀리지 않을때는 4백이 되기도 했다.

양 쪽 진영을 끊임없이 오가야 하는 윙백의 스피드와 체력이 필수였다. 그래서 루이스 판 할 네덜란드 감독은 전문 공격수 디르크 카윗(페네르바체)를 왼쪽 측면 윙백에 배치했다. 카윗은 경기당 14km를 뛰면서 상대 측면 공격을 완전히 지워버렸다..

코스타리카, 칠레, 멕시코 등 중남미 국가들은 전통적 스타일의 리베로를 활용했다. 칠레의 가리 메델(카디프시티), 멕시코의 라파엘 마르케스(클럽 레온) 같은 노련하고 능력 있는 리베로의 역할이 컸다.

이들은 왕성한 활동량과 남다른 터프함으로 강력한 수비를 만들었다. 보통 때는 좌우 윙백까지 내려와 5백을 유지하며 웅크리다가 역습 시에는 마치 스프링처럼 일사분란하게 튀어 나갔다. 빠른 스피드와 정확한 패스능력이 뒷받침됐기에 역습은 더욱 위력을 발휘했다.

▲‘느리면 죽는다’ 더욱 빨라진 역습 속도

이번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팀들 대부분의 공통점은 탄탄한 수비를 바탕으로 역습에 능했다는 점이다. 네덜란드는 물론 준우승을 차지한 아르헨티나, 돌풍의 주인공인 코스타리카, 칠레, 콜롬비아 등이 그랬다. 조별리그에서 한국에 뼈아픈 상처를 남긴 알제리도 마찬가지였다.

역습은 강한 압박에서 출발한다. 스페인의 전성시대를 가능케 한 ‘티키타카’ 전술을 무력화시키는 전술이다. 상대 진영 미드필드서부터 공을 따내기 위해 2~3명이 적극적으로 달라붙었다. 그래서 공을 빼앗으면 이는 곧 절호의 득점 찬스로 이어졌다.

하지만 무조건 달려들어 공을 뺏는다고 역습이 성공하지는 않는 법. 상대가 더 빨리 자기 진영으로 돌아와 수비 대형을 갖추면 공격 효과를 보기 어렵다, 역습의 속도를 높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나타난 현상이 ‘얼리 크로스’다. 쉽게 말하면 공을 잡자마자 전방으로 길게 넘겨주는 것을 뜻한다. ‘뻥축구의 부활’이라 불러도 틀리지 않다

과거에는 역습 상황에서 단독돌파나 스루패스, 또는 전방으로의 로빙패스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에선 공을 측면으로 뺀 뒤 일찌감치 대각선 크로스로 올리는 장면이 자주 나타났다. 상대 수비가 정돈되기도 전에 전방의 빠르고 능력있는 공격수가 이를 골로 연결한다.

특히 네덜란드는 투톱으로 나선 아르옌 로벤(바이에른 뮌헨)의 스피드와 로빈 판 페르시(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골결정력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이번 대회에서 가장 강력한 공격력을 과시했다. 물론 공격수들에게 정확히 롱패스를 연결할 수 있는 정확한 패싱능력은 필수다.

전통적인 골키퍼 역할을 넘어 최후방 수비수 역할까지 소화해낸 독일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 사진=Gettyimages/멀티비츠
▲‘최후방 수비수까지’ 골키퍼 역할의 재정립

브라질월드컵은 골키퍼의 활약이 어느 때보다 돋보인 대회였다. 특히 독일의 월드컵 우승을 견인하며 골든글러브상을 수상한 마누엘 노이어(바이에른 뮌헨)는 ‘스위퍼형 골키퍼’라는 새로운 골키퍼상을 탄생시켰다.

노이어는 단지 골문 앞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페널티지역 바깥까지 뛰어나와 상대 공격을 막아냈다. 상대 공격수와 맞선 상황에서 태클로 위기를 넘긴 장면도 여러차례나 됐다. 사실상 최종수비수인 스위퍼 역할까지 책임졌다.

그전에도 골문을 비우고 앞으로 올라왔던 골키퍼는 여럿 있었다. ‘골넣는 골키퍼’로 유명했던 칠레의 호세 루이스 칠라베르트, 콜롬비아의 레네 이기타, 멕시코의 호르헤 캄포스 등이 대표적인 선수다.

하지만 노이어는 무모하고 공을 바깥으로 종종 끌고 나와 종종 낭패를 봤던 이들과는 달랐디. 철저히 골문을 지키는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다. 다만 골문 방어의 반경이 훨씬 넓을 뿐이었다. 정확한 판단과 탁월한 축구 센스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독일 요아힘 뢰브 감독도 “노이어는 필드플레이어들과 똑같이 볼을 다룬다. 당장 미드필더로 뛰어도 손색이 없다”며 그의 축구 재능을 극찬했다. 미국 뉴욕타임스 역시 “노이어는 경기장의 30% 이상의 영역을 커버한다. 그가 골키퍼의 개념을 바꿔놓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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