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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홍콩 현지 매체들의 보도에 따르면, 고인의 유족은 정패패가 지난 17일 지병으로 별세했다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유족은 이날 고인의 SNS 등을 통해 고인이 파킨슨병과 유사한 신경퇴행성 질환을 앓다 세상을 떠났다고 알렸다.
또 고인의 뇌를 미국의 비영리 의료 연구 기관인 ‘뇌 지원 네트워크’에 기증했다고도 덧붙였다. 보도들에 따르면, 고인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은 성명에서 “우리는 무거운 마음으로 소문이 사실임을 밝힌다. 우리의 어머니 정패패는 사랑하는 가족들에 둘러싸여 집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고인은 1960~80년대를 풍미한 액션 영화의 아이콘이다. 1946년 상하이에서 태어난 고인은 1962년 홍콩으로 이주했다. 이후 홍콩 쇼브라더스 스튜디오의 배우 양성소 남국실험극단에 입학, 2년간 무술과 연기 수업을 받고 배우로 거듭났다. 이후 단역 경험을 거쳐 1964년 영화 ‘정인석’의 주연으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그는 1966년 호금전 감독의 영화 ‘대취협’이 세계적으로 흥행하며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대취협’은 어린 시절부터 발레를 배웠고, 검술이 뛰어났던 고인을 통해 베이징오페라 형식에 음악 등을 접목한 새로운 액션 영화로 호평을 받았다. 그렇게 고인은 ‘서유기’(1966), ‘철선공주’(1966), ‘여걸비호’(1967), ‘홍콩야상곡’(1967) 등 쇼브라더스의 황금기를 이끈 톱 액션 스타로 거듭났다. 당대 남성 배우들이 주도했던 무협 장르에서 뛰어난 액션 실력으로 두각을 드러내 ‘검의 여왕’, ‘여검객’이라 불리며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다 1972년 쇼브라더스와 결별, 1974년 영화 ‘호변자’를 끝으로 고인은 미국으로 떠났다. 결혼과 동시에 캘리포니에아 정착했다. 이후 네 자녀를 키우며 캘리포니아주립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러다 1980년대 말부터 다시 연기 활동을 재개, 2000년 이안 감독의 영화 ‘와호장룡’으로 배우로서 금의환향에 성공한다. 2014년 영국 드라마 ‘릴팅’, 2020년 실사 영화 ‘뮬란’이 그의 마지막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