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승세의 중심엔 옛 영웅들이 있었다. 2007년부터 최강 SK를 이끌었던 김강민, 박정권, 조동화, 김광현, 윤길현 등이 살아나고 있는 힘이 크다.
김강민은 시즌 초 타율이 3푼대까지 떨어진 적 있었지만 6월부터 무서운 상승세로 타율을 2할9푼2리까지 회복시켰고 최근 연이어 결승타를 때려내는 등 공수에서 단연 눈에띄는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박정권 역시 마찬가지. 시즌 초 성적 부진으로 주장 자리도 내줘야했던 그는 타율을 3할3리까지 끌어올리며 중심타자로 든든히 자리잡고 있다. 시즌 초반 기회가 없어 마음고생하고 있던 조동화도 지금은 공수주에서 맹활약을 펼친다.
선발 김광현도 후반기들어 8승 중 5승을 거두며 완연한 상승세를 타고 있는 상황. 8월 8경기에 나서 7이닝 무실점, 2홀드를 기록한 불펜 윤길현도 ‘4강 희망’을 이어주고 있는 선수다.
하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최근 타팀의 한 선수는 “예전에 강했던 모습이 지금 나오고 있다. 이 선수들이 시즌 초반부터 살아났다면 SK는 올해도 확실하게 4강은 보장하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들의 뒤늦은 상승세가 아쉽다는 이야기다. 아직 4강의 희망은 있지만 이들의 페이스가 조금만 더 일찍 올라왔다면 SK의 상황은 지금보다 훨씬 나아졌을지 모른다. 더 높은 곳에서 여유있게 순위권 싸움을 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시즌 중에 나오는 모든 문제 상황들은 준비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시즌에 임하는 모든 준비가 이뤄지는 스프링캠프 이야기다. 옛 영웅들이 뒤늦은 상승세를 보인 것에는 준비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
박정권, 김강민은 오키나와 캠프, 시범경기에서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했다. 신인급 선수들을 발굴하려는 코칭스태프들의 노력때문이었다.
실제로 지난 2월 오키나와 캠프에서 연습경기를 치르는 동안 김강민, 박재상, 박정권 등 주전 선수들은 한동민, 이명기, 박승욱 등 젊은 선수들의 경기수, 타수에 비교해 절반 이상 기회를 잡지 못했다. 시범경기도 마찬가지. 주로 경기 후반 대타, 대수비로 나서는 경우가 많았고 시즌 초반까지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물론 젊은 선수들은 그 기회를 발판삼아 1군 적응 시간을 단축시켰지만 부작용도 있었다. 기존 선수들의 경기 감각 저하로 이어졌다.
김강민 박정권 등은 노력형 선수들이다. 천부적인 재능을 믿고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선수들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많은 훈련과 숱한 실전이 그들을 만들어왔다. 그러나 가장 스퍼트를 올려야할 시기에 훈련이 부족하고 경기 기회도 줄어들다보니 당연히 경기 감각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150km의 공도 체감상 170km로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2군 투수들의 볼도 제대로 맞힐 수 없었던 게 이들의 초반 현실이었다.
또한 이번 겨울 애너하임 재활캠프에 보냈던 투수들에 대한 아쉬움도 남을 수 밖에 없다. 김광현, 송은범, 박희수, 엄정욱, 채병용, 박정배. 이 선수들은 올시즌 SK 마운드 전력의 핵심으로 꼽혔다. 자칫 이들의 재활이 늦어지거나 문제가 생기면 시즌 전력 구상에 큰 차질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구단이 많은 돈을 들여 이들만 따로 재활캠프에 보낸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겨우내 체중·체지방·근육량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해 이들은 전지훈련 장소를 자주 바꿔야했고 그 과정에서 의욕도 잃었다. 훈련지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다보니 여러모로 제대로 훈련을 소화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들 중 제모습을 보이는 건 김광현, 박희수, 박정배 정도다. 이들도 모두 초반엔 심한 어려움을 겪었다.
한 해설위원은 “세대교체를 급격히 이뤄내려고 하다보니 생긴 부작용이다. 결과적으론 해줘야할 선수들이 해주는 상황에서 신인급 선수들을 키우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모양새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SK는 올시즌은 시행착오를 단단히 겪었다. 시즌 운영면에 있어 실수라 봐야할 것 같다. 모두 가을 DNA를 갖고 있다고 하는데 지금의 성적은 이들의 능력치에 비해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결과다”고 했다.
결과적으로는 해줘야할 선수들이 해줘야 산다. SK 옛 영웅들의 상승세가 반갑긴 하지만 한편으론 씁쓸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시즌. 결국 옛영웅들의 뒤늦은 상승세는 아쉬움으로 끝맺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