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스타in 조우영 기자] “면접비 받기 미안하더고요.” 최근 한 대학 실용음악과 입시 면접관으로 참여한 A 기획사 대표의 한탄이다.
그는 하루에 250여 명의 지원자를 봤다. 1인당 3분씩만 잡아도 꼬박 12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는 될성부른 떡잎을 찾고자 했다. 어느 정도 음악적 기본기를 장착한 실용음악과 입시생이라면 꽤 괜찮은 재목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컸다.
소위 ‘건질 만한 물건’은 없었다. 그는 “몸보다 정신적으로 더 피로했으나 그들의 열정과 노력을 ‘대충’ 판단해 희비를 가르고 싶진 않아 열심히 했다”면서도 “다시는 면접관으로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괴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는 “국내 대중음악 발전에 이바지해왔다고 자부한 내가 허울 좋은 심사위원 자격으로 이 자리에 앉아 대학 측의 돈벌이 수단에 이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씁쓸했다”고 털어놨다.
국내 실용음악학원 시장은 약 100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K팝의 성장과 방송사 오디션 프로그램이 성행하면서 호황기를 맞았다. 대학들도 변화의 움직임을 보였다. 최근 수년간 50여 개 대학이 실용음악과의 정원을 늘리거나 개설했다. 일부 지방대학은 법학과를 없애고 방송연예 관련 학과를 만들었다. 2013년 대입 원서 접수 결과 실용음악과(보컬)의 입시 경쟁률이 가장 높았다. 최소 30대 1에서 최고 437대 1로 집계됐다.
대학이 시대의 흐름에 부응했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한 예대가 실용음악과를 제외한 모든 과의 정원이 미달해 문을 닫기로 한 점을 떠올리면 그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이해할 만 하다.
문제는 대학이 이들 관련학과를 학생 유치 카드로만 삼는데 그친다는 것이다. 커리큘럼도 사실상 천편일률적이다. 실습실이나 역량 있는 지도자가 부족하다. 유명 가수·작곡가 등을 교수진으로 영입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들의 유명세로 졸업생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해보지만 취업률을 의식한 홍보 간판에 불과하단 지적이 나온다.
현실이 그만큼 녹록지 않다. 가수 B는 “보컬은 그나마 주목받기 쉽지만 연주자는 아무리 훌륭해도 무대 뒤에 설 뿐이다. 학창시절 정말 유명했던 선배가 내 앨범 세션맨으로 참여했다. 떠돌이처럼 살며 턱없이 부족한 대우를 받는 선배에게 미안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정작 미안해해야 하는 이는 따로 있을 듯하다. 한 실용음악과 학생은 “등록금도 다른 과에 비해 비싸다. 솔직히 그 돈이면 더 좋은 음악 장비를 마련하거나 외국 유학을 다녀오는 게 낫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발전적인 고민이 필요한 때다.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을 얹는 것은 좋으나 다 함께 맛있게 먹는 법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