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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재산권이 신탁된 저작물을 적법하게 사용하려면 신탁관리단체로부터 저작물이용허락을 받아야 한다. 이용허락계약이 없이 저작물을 이용하면 무단이용으로서 저작권침해에 해당한다.
저작물의 이용허락을 받으면 허락받은 이용 방법 및 조건의 범위 안에서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다(저작권법 제46조 제2항). 이용허락 계약에서 이용방법이나 시간적 제한을 정했는데 여기에 위반해 이용하면 저작권침해가 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용허락계약이 끝난 이후의 이용허락은 더더욱 저작권침해일 수밖에 없다.
이용허락계약이 끝난 이후라도 묵시적 이용허락이 있기 때문에 저작권침해가 아니라고 말하는 입장도 있다. 그런데 계약법에서 묵시적 계약을 인정하는 사례는 흔하지 않다. 구두계약이 인정받는 것과는 다르다. 명시적 의사표시가 없는데도 의사를 해석해 어떤 합의를 했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특히 계약(합의)의 내용을 특정하기는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계약의 내용을 특정하기 어렵다면 계약상 권리의무를 정할 수도 없다.
나아가 저작물이용을 묵시적으로 허락했다고 하려면 저작재산권자가 이용자의 저작물이용을 계약체결 상태처럼 용인했어야 한다. 그러나 계약을 새로 체결하려고 협의할 때는 계약내용과 권리의무가 정해지지 않았으므로, 저작재산권자가 저작물이용을 계약체결 상태처럼 용인했다고 말할 수 없다. 협의를 진행하면서 저작물의 무단이용을 일시적으로 묵인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협의를 더 이상 진행하기 어렵게 됐다면 무단이용을 더 이상 묵인할 이유가 없으므로, 저작재산권자는 무단이용을 중단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이러한 요구를 했는데도 저작물을 계속 이용하면 그 이용행위는 저작권침해에 해당한다. 이러한 이치는 협의가 진행되지 않는 이유와 관계가 없으나, 특히 이용자가 진지하고 성실한 협의를 하지 않았다면 그 무단이용의 성격은 더욱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다.
방송사의 허락을 받지 않은 채 지상파방송을 공중재송신하는 케이블TV사들을 상대로 방송사가 저작권법위반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에서, 케이블TV사들은 공중재송신을 방송사가 묵시적으로 허락했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그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저작권법 원칙을 그대로 따른 결론으로 참고할 만한 사례다.
계약을 체결하려고 협의하면서 저작물이용을 일시적으로 묵인한 것을 만약 묵시적 이용허락이라고 보더라도 저작재산권자는 그 묵시적 이용허락을 언제라도 철회할 수 있으므로, 결론에서는 차이가 없다.
2019년 11월 개정된 저작권법은 저작권신탁관리업자가 정당한 이유가 없으면 관리하는 저작물 등의 이용허락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 이는 신탁관리단체에 대한 감독 강화 차원에서 신설된 규정일 뿐, 신탁관리단체의 이용허락권한을 일반적으로 제한하는 취지가 아니다. 이용허락계약을 새로 체결하지 않고 계속 저작물을 이용한다면, 그 무단이용을 중단하라고 신탁관리단체가 요구하는 것은 정당하다. 계약을 체결하려고 협의했으나 더 이상 진행될 수가 없어서 무단이용을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저작재산권의 행사이고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위 규정을 자칫 잘못 해석해, 이용허락계약을 체결하려는 협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상태에서도 신탁관리단체가 저작물 무단이용을 중단시킬 수 없다고 본다면, 이는 신탁관리단체가 수탁한 저작재산권자의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는 것이다.
이응세 변호사(법무법인 바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