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일대일’ 홍일점 안지혜, “김기덕 감독은 천재다”

강민정 기자I 2014.05.15 10:50:11
영화 ‘일대일’의 홍일점 안지혜가 이데일리 본사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방인권기자)
[이데일리 스타in 강민정 기자] 누구의 전략인지 계략인지, 알수 없지만. ‘영화계 이단아’로 인식되는 김기덕 감독. 그의 스무번째 영화 ‘일대일’이 화제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 대한민국에 대한 영화다. ‘나 역시 비겁하다’는 것을 먼저 고백하면서 이 시나리오를 썼다. 나는 이 땅에 살면서 매일 충격을 받는다. 부정부패도 성공하면 능력이 된다. 사회를 미워도 해봤고, 증오도 해봤고, 용서도 해봤고, 비워도 봤다. 영화 도입부에 살해되는 여고생 ‘오민주’는 누구인가? 이 영화를 보는 각자의 살해된 ‘오민주’가 있을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 누구든 각자의 ‘오민주’가 있어야만 이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다. 그리고 결말을 동의하든 부정하든 할 것이다. 살해 당한 기분이 없다면 이 영화를 볼 필요가 없다. 누군가 이 영화를 이해할 것이라 믿어 만들었다. 그러나 아니어도 어쩔 수는 없다. 그게 바로 지금이고 우리다.”

김기덕 감독
김기덕 감독이 밝힌 ‘일대일’에 대한 작의에서도 남다른 기운이 느껴진다. 언론배급 시사회로 베일을 벗은 ‘일대일’은 보는 사람은 물론 직접 연기한 배우들에게도 생경한 경험이었다. 관객 입장에선 ‘좀 어렵다’, ‘복잡하다’, ‘무슨 의미일까’ 등의 인상을 받았다면 배우 입장에선 ‘역시 김기덕 감독이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모니터링이 없는 김기덕 감독 현장의 특성상, 촬영을 했음에도, 현장에 있었음에도 어떤 그림이 나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일 터. ‘일대일’에서 그림자4 역으로 유일한 여배우로서 김기덕 감독 현장에 녹아들었던 배우 안지혜. 그가 받은 영화의 첫 인상은 ‘이 사람, 천재다’였다.

김기덕 감독, 천재이자 수학자이자 시인.(사진=방인권기자)
“말은 들었지만, 정말일까 싶었어요. 딱 10일. 10회차에 걸쳐 찍더라고요.(웃음) 게다가 밥도 하루에 세끼 다 먹고, 간식도 먹고, 밤참도 먹었어요. 잠까지 심지어 잘 잤고요. 이게 가능한 현장일까, 영화가 만들어질까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현장이었죠. 저는 더욱 경험이 적었으니 그랬을 거예요. 시사회에서 처음 영화를 보고 감독님이 천재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어요.”

안지혜가 김기덕 감독을 ‘천재’라고 표현하는 건 다만 그가 제 시간에, 제 분량의 영화를 만들어내서만은 아니다. 아티스트로서, 영화를 만드는 장인으로서, 느껴지는 아우라가 달랐다고 했다.

“‘뭐지?’ 싶을 때가 많았어요. ‘지금 7시쯤 됐지?’ 이렇게 말씀하시면 정말 시계가 7시였고요. 5월 9일이라는 영화 속 시간 설정이랑 등장인물의 이름에 ‘오’나 ‘구’가 들어가는 것들이랑, 다 연결돼 있고요. 시나리오가 기본이었지만,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구현하셨고요. 천재 수학자이면서 감수성 풍부한 시인이랄까요. 예술가로서의 순수함이 느껴졌어요. 왜 배우들이 감독님과 만나고 싶어하는지 알겠더라고요.”

김기덕 감독의 홍일점, 안지혜.(사진=방인권기자)
사실 안지혜는 김기덕 감독의 러브콜을 받은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조민수, 이정진이 주연한 영화 ‘피에타’, 정우와 김유미가 주연한 영화 ‘붉은 가족’으로도 김기덕 감독과 연을 맺을 뻔한 전례가 있었다. 그때마다 타이밍이 맞지 않아 다음을 기약해야했던 아쉬움을 ‘일대일’로 풀 수 있었다. 김기덕 감독은 ‘일대일’을 작업하며 ‘그림자4 역으로 안지혜 밖에 생각나는 사람이 없다’는 속내를 안고 있었다는 후문이다.

“감독님이 절대 대놓고 칭찬하진 않는 분이에요. 그런데 김기덕 감독님을 잘 아는 분들은 ‘그만의 표현 방식으로 너는 최고의 찬사를 들었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정말 영광이고 감사한 일이죠. ‘일대일’에서도 남자 배우들만 나올 수도 있었지만, 이건 진짜 우리 사회를 보여주는 영화니까. 세상에 존재하는 연약한 여자로서의 모습을 저를 통해 그려내주신 거잖아요. 다시 생각해도 김기덕 감독님께 감사해요.”

‘나는 누구인가’, 회피하려던 생각과 마주하게 된 시간.(사진=방인권기자)
‘일대일’로 1년 반만에 배우의 모습으로 돌아온 안지혜는 아쉬움도 많이 남는다. 더 느끼고 배우고 싶은 부분이 많았지만 촬영도 워낙 빨리 끝났다. 하지만 시간과 배움의 관계가 비례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안지혜는 ‘일대일’에 임하면서 그동안 자신이 회피하려고 했던 생각에 직면했다고 했다.

“‘일대일’엔 복잡한 인간관계가 존재해요.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그 가해자를 가해하는 또 다른 가해자.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가끔 살다보면 내생각이 내 스스로를 배신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저는 감독님이 전하려는 메시지, ‘나는 누구인가’에 맞춰서 자신을 마주하려고 노력했어요. 행복하고 싶고 욕심부리고 싶고 이기고 싶어서 회피했던 신념들이 많았는데, ‘일대일’이 변하게 했어요.”

“배우로서 긴 시간, 앞으로도 자신있다.”(사진=방인권기자)
이렇게 자신을 찾게 된 ‘1979년생의 안지혜’는 어느덧 20대 철없던 시절을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왔다. 데뷔가 절대 늦지도 않았고, 작품이 절대 없었던 것도 아니었던 안지혜. 알고보면 ‘이효리의 친구’라는 수식어도, ‘붉은 바캉스 검은 웨딩’의 주인공이라는 프로필도, 사람들이 이슈로 생각했던 화제의 표현이 모두 안지혜의 것이다. ‘배우’라는 본질을 누구도 의도치 않게 가려온 표현들이었지만 이젠 조바심도, 걱정도 없다.

“배우로서 제가 시간을 짧게 보는 것도 아니고 자신 있으니까요. 배우들은 용기있는 선택을 하는데 보는 눈이 오히려 보수적일 때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지금 제 나이가 정말 좋아요. 이제 저는 뭐든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때가 된 것 같아요. 안돼는데는 이유가 있고 다 제 문제였더라고요.(웃음) 인생은 운이고 타이밍인데, ‘일대일’로 다시 좋은 시작을 한 느낌이에요.”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