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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월드컵을 2주 넘게 취재하면서 살짝 착각할 때가 있다. 여기가 혹시 한국은 아닐까. 분명 한국은 영하의 겨울 날씨이고 이곳은 여전히 한낮에 숨이 턱 막히는 뜨거운 태양이 내리쬔다. 그럼에도 그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아마도 BTS 정국 때문이 아닐까 싶다.
카타르월드컵과 관련된 모든 장소에는 BTS 정국이 부른 공식 주제가 ‘드리머스’(Dreamers)가 흘러나온다. 심지어 경기 전 양 팀 선수들이 등장하기 직전 경기장 분위기를 띄우는데 ‘드리머스’만큼 좋은 노래도 없다.
어느 대회보다 화려했던 개막 공연 이후에도 정국의 주제가는 카타르월드컵을 움직이는 심장 같은 역할을 한다. 경기장뿐만 아니라 팬페스트 등 도심 곳곳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서도 정국이 출연한 공식 뮤직비디오는 끊임없이 나온다. BTS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라도 정국의 목소리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곳곳에서 노래를 함께 따라부르거나 흥얼거리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드리머스’는 경쾌한 사운드와 정국의 청량한 목소리가 어우러진 곡이다. ‘우리가 누군지 봐, 우리는 꿈꾸는 자들’(Look who we are, we are the dreamers)이라는 노랫말로 도전과 투지의 월드컵 정신을 표현했다. 전세계 축구팬들의 눈과 귀가 집중되는 월드컵 무대에서 한국인 아티스트가 부른 노래가 흘러나오고 뜨거운 호응을 받는 모습을 현장에서 직접 느끼는 것은 너무나 감격스러운 일이다.
‘아알못’(아이돌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한국 응원단 붉은악마라면 정국의 팬이 되고 한국 사람이라는 것에 자긍심까지 생길 법하다. ‘국뽕’까진 아니더라도 경기장 등에서 흘러나오는 정국의 노래를 들을 때면 기분이 좋아지고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다.
미디어센터 안에서 히잡을 쓴 한 젊은 여성 스태프와 잠깐 얘기를 나눌 일이 있었다. 말레이시아 출신의 스태프였는데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갑자기 또렷한 한국말로 ‘오빠 사랑해요’라고 하더니 막 웃는다. 알고 보니 열렬한 BTS 팬이란다. 세븐틴, 슈퍼주니어는 물론 이름을 잘 모르는 한국 아이돌 그룹 이름이 줄줄 나왔다.
이런 일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다. 경기가 끝난 뒤 경기장 주변에선 여러 다양한 볼거리가 펼쳐진다. 대부분은 카타르의 전통문화 공연이지만 젊은 학생들의 K팝 공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슈퍼마켓 등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서 K팝 음악을 듣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제 오늘 일도 아니지만 ‘K컬처’의 위력은 카타르에서도 뚜렷하게 느낄 수 있다. 기적같은 16강 진출을 이룬 한국 축구대표팀과 마찬가지로 ‘K컬처’도 카타르월드컵을 빛내는 자랑스러운 한국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