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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프누의 기적' 솔샤르, 20년 만에 '파리의 기적' 완성

이석무 기자I 2019.03.07 13:21:00
올레 군나르 솔샤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이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에서 파리 생제르맹을 상대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뒤 두 주먹을 불끈 쥐면서 기뻐하고 있다. 사진=AFPBBNews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올레 군나르 솔샤르(46·노르웨이) 임시 감독은 현역 시절 ‘기적의 사나이’로 불렸다.

1996년부터 2007년까지 맨유의 공격수로 활약하며 126골을 터뜨린 솔샤르 감독은 특히 팀이 어려운 상황에 교체로 들어가 결정적인 골을 터뜨려 팬들을 열광시켰다.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캄프 누의 기적’이다.

솔샤르는 1998~99시즌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캄프 누에서 열린 바이에른 뮌헨(독일)과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후반 추가시간 극적인 역전골을 터트려 맨유의 통산 두 번째 우승을 이끌었다. 세계 최고의 명문 구단인 맨유의 화려한 역사에서도 가장 빛나는 장면이었다.

당시 선수로서 ‘캄프 누의 기적’을 일궈냈던 솔샤르는 이번에 감독으로서 ‘파리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솔샤르 감독이 이끄는 맨유는 7일(이하 한국시간) 프랑스 파리의 파르크 데 프랭스에서 열린 파리 생제르맹(프랑스)과 2018~19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원정 2차전에서 3-1로 승리했다.

지난달 13일 안방에서 열렸던 1차전에서 0-2으로 져 벼랑 끝에 몰렸던 맨유는 이날 승리로 1, 2차전 합계 스코어 3-3 동률을 이뤘다. 하지만 원정 다득점 우선 원칙 덕분에 극적으로 8강 진출 티켓을 거머쥐었다.

경기 전 누구도 솔샤르 감독과 맨유가 활짝 웃을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맨유는 안방에서 열린 1차전에서 2골 차 충격패를 당했다. 2차전 원정경기에서 최소 2골 차 이상으로 이겨야만 했다.

물론 1차전에서 대패한 팀이 2차전에서 스코어를 뒤집은 경우는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종종 있었다. 2016~17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바르셀로나(스페인)가 파리생제르맹을 상대로 1차전 대패(0-4)를 뒤집고 2차전에서 6-1로 이겨 8강에 진출했던 일도 있었다.

하지만 바르셀로나가 파리생제르맹을 상대로 거둔 대역전승은 2차전이 바르셀로나 홈경기였다. 안방에서 패한 경기를 원정에서 뒤집은 경우는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UEFA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 16강 1차서 홈팀이 0-2로 진 경우는 총 106번 있었다. 이 가운데 2차전에서 역전해 상위 라운드에 진출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이날 맨유는 정상 전력이 아니었다. 팀의 기둥인 미드필더 폴 포그바는 1차전 퇴장으로 인해 이날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네마냐 마티치, 후안 마타, 제시 린가드 등 10여명의 선수가 부상으로 쓰러졌다. 베스트11을 구성하는 것 조차 쉽지 않았다.

맨유는 ‘이 대신 잇몸으로 버틴다’는 심정으로 2차전을 준비했다. 프레드, 안드레아스 페레이라, 스콧 맥토미니 등 그동안 자주 출전하지 않았던 벤치 자원들로 선발명단을 꾸렸다. 심지어 타히트 총, 메이슨 그린우드, 제임스 가너 등 10대 유스 선수까지 출전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솔샤르 감독은 경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경기 전 인터뷰에서 여러차례 강조했던 “절대 불가능이란 없다”는 그의 말은 결코 단순한 수사가 아니었다.

2차전 시작 휘슬이 울리자마자 총공세로 나선 맨유는 로멜루 루카쿠의 전반전 2골로 리드를 잡은 뒤 2-1로 앞선 후반 추가시간 비디오 판독(VAR) 끝에 선언된 페널티킥을 마커스 래시포드가 성공시켜 ‘파리의 기적’을 완성했다.

사실 솔샤르 감독이 지금까지 맨유를 이끌어온 과정 자체가 기적이나 다름없다. 솔샤르 감독은 지난해 12월 성적 부진으로 경질된 조제 무리뉴 감독의 후임으로 맨유 지휘봉을 잡았다. 그의 신분은 이번 시즌까지만 팀을 이끄는 임시 감독에 불과했다. 솔샤르의 존재와 상관없이 다음 시즌 감독 후보로 지네딘 지단,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 등의 이름이 끊임없이 거론됐다.

솔샤르는 사령탑에 앉자마자 흔들리던 팀의 체질을 확 바꿔놓았다. 전임 루이스 반할-조제 무리뉴 감독 체제에서 답답한 수비 위주 플레이만 반복했던 맨유 축구를 짧은 시간에 화끈하고 활기찬 공격축구로 변신시켰다.

솔샤르 감독이 부임한 이래 맨유는 17경기에서 14승2무1패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뒀다. 유일한 패배가 바로 파리생제르맹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이었다. 솔샤르가 팀을 맡은 이래 원정 9연승을 달리고 있다. 구단 원정 최다 연승 기록이다. 마치 알렉스 퍼거슨 전 감독이 이끌었던 최전성기 시절을 다시 보는 듯 하다.

솔샤르 감독 대행은 지난 1월 프리미어리그 4경기에서 3승 1무의 성적을 거두면서 ‘프리미어리그 이달의 감독’으로 뽑히기도 했다. 맨유 사령탑이 이달의 감독에 선정된 것은 2012년 11월 알렉스 퍼거슨 이후 무려 6년 2개월 만이었다.

솔샤르 감독이 엄청난 성과를 이어가자 그를 정식 감독으로 선임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축구 전문매체 ESPN은 지난 1일 “솔샤르 감독 대행이 조제 모리뉴 전 감독이 경질된 맨유의 ‘풀타임 사령탑’을 이어받을 유일한 후보가 됐다. 다른 감독들은 논의 대상이 되지 않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맨유 수비수 출신 리오 퍼디낸드는 BT 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솔샤르는 10대 유망주 3명을 투입하는 용감한 선택을 했다. 그는 이 팀에 믿음을 다시 가져왔다”며 맨유가 그와 정식계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시 맨유의 레전드인 게리 네빌도 “맨유는 최근 3개월동안 환상적인 성적을 냈다. 솔샤르가 정식감독으로 승격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솔샤르 감독도 자신이 일궈낸 ‘파리의 기적’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이것이 챔피언스리그이고 이것이 바로 우리 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다”며 “내가 이 팀에 계속 있을지 아닐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맨유의 서포터이기도 하니까, 맨유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다. 두 달이든 석 달이든, 얼마를 더 하든 즐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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