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골프 슈퍼루키' 등극 전인지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고 싶다"

김인오 기자I 2013.05.30 14:32:29
전인지가 28일 경기도 성남에 있는 한 골프연습장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마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김정욱 기자)
[성남=이데일리 스타in 김인오 기자] 역시 국가대표 출신만이 휘두를 수 있는 스윙이다. 어드레스에서 백스윙 톱, 임팩트 순간까지 하체의 움직임도 머리 위치의 미세한 변화도 찾아보기 어렵다. 한참을 뒤에서 지켜봤지만 전혀 인기척을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그렇게 5분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드디어 눈인사를 할 수 있었다.

28일 경기도 성남에 있는 한 골프연습장에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루키 시즌을 보내고 있는 전인지(19·하이트진로)를 만났다. “아, 죄송해요. 뭔가에 집중하면 아무것도 안 보이는 성격이라….” 10대답지 않은 고도의 집중력. 전인지가 첫 프로 무대에서 쟁쟁한 선배들과 경쟁할 수 있는 ‘무기’였다.

전인지는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라는 속담이 딱 들어맞는 선수다. 국가대표 상비군, 국가대표를 모두 거쳤고 2011년 아마추어 초청 선수로 출전한 하이트진로 챔피언십에서는 단독 3위에 올랐다. 프로로 전향한 지난해에는 드림투어(2부투어) 상금랭킹 2위로 시드전을 거치지 않고 정규 투어 직행티켓을 얻어냈다.

올해 성적도 화려하다. 5개 대회를 모두 컷 통과했고, 지난주 열린 두산매치플레이 챔피언십에서는 장하나(21·KT)와 18번홀까지 가는 접전 끝에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다. 당시 장하나는 “‘슈퍼루키’를 상대로 힘겨운 승리를 거뒀다”고 전인지를 치켜세웠다.

◇맹부삼천지교, 슈퍼루키 만들다

전북 군산이 고향인 전인지는 또래들보다 늦은 초등학교 5학년 때 골프에 입문했다. 태권도 선수 출신인 아버지 전종진(54) 씨의 의지가 컸다. 당시 수학 재능자로 영재수업을 받고 있었던 전인지는 아버지를 따라 골프연습장으로 갔고, 생전 처음 보는 막대기(?)를 손에 쥐었다. 아버지는 그냥 마음대로 휘둘러보라고 했다.

볼을 맞히기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오기가 발동했다. 고개를 젓고 있는 아버지의 표정이 싫었기 때문이다. 전인지는 “주변 어른들의 스윙을 몰래 훔쳐보면서 5시간 넘게 쉬지 않고 쳤다. 손바닥에 물집이 잡히고, 몸을 가누기도 어려워지자 볼이 맞기 시작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 모습을 본 아버지는 어린 딸을 골프 선수로 키워야겠다고 다짐했고, 힘겨운 여정이 시작됐다.

학교에서는 반대가 심했다. 지금은 전인지의 열렬한 팬이 된 당시 교감 선생님은 “공부에 더 소질이 있다”며 아버지를 만류했다. 수업을 빼주지 않는 등 마찰이 생기자 아버지는 골프 환경이 좋은 제주도로 전학을 보내버렸다. 전씨는 “배고픈 운동은 시키기 싫어 골프를 택했다”며 “집안 형편이 넉넉하진 않았지만 딸을 위해 평생을 바치고 싶었다. 지금도 후회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맹부삼천지교의 끝은 제주도가 아니었다. 좋은 코치가 있고, 연습 환경이 잘 갖춰져 있는 곳이라면 마다치 않고 찾아다녔다. 제주도 한라중학교에 입학한 전인지는 몇 개월 되지 않아 전남 보성에 있는 득량중학교로 전학을 갔다. 고등학교는 신지애(25·미래에셋)의 모교인 함평골프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전인지는 엘리트 코스를 모두 밟았다. 중학교 3학년 때 국가대표 상비군이 됐고, 고등학교 1학년 때 국가대표가 됐다. 그리고 골프를 시작한 지 9년 만에 꿈에 그리던 프로 무대에 당당하게 진출했다. 아버지의 헌신과 전인지의 근성이 만들어낸 결과다. 전인지는 “프로 골퍼가 되려면 1년에 1억원 정도 든다고 한다. 1년에 산 하나씩 팔았을 것이다. 이제 아버지를 위해 살겠다”며 지극한 효심을 드러냈다.

◇“누군가의 롤 모델이 되고 싶어요.”

‘즐겁고 신나게 몰입하기’. 전인지가 자신의 야디지북(코스공략집) 페이지마다 적는 문구다. 그가 표현한 ‘잡생각’을 버리기 위한 일종의 멘탈 방법이다. 코스 공략에 큰 효과가 있다고 했다.

KLPGA 투어에서 선전하고 있는 비결도 여기에 있다. 전인지는 “스코어를 전혀 세지 않는다. 현재가 항상 시작이라는 생각을 한다. 뒤를 돌아보면 생각이 많아져서 샷이 망가진다”고 밝혔다.

두산매치플레이 챔피언십 준우승에도 큰 효과를 봤다.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매치플레이, 그리고 구름 갤러리. 더군다나 대회 경험이 부족한 신인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압박이다.

전인지는 “준우승을 예상한 사람을 아무도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며 “그냥 즐겁고 신나게 경기에 몰입했더니 좋은 결과가 나왔다. 많은 갤러리가 지켜보는 결승전도 부담보다는 재밌었다. 그 기분을 앞으로 시합에서 더 느끼고 싶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올해 5개 대회를 치르면서 상금 1억원을 넘겼다. 상금 랭킹 9위로 수준급 성적표다. 김효주(18·롯데)와의 신인상 경쟁도 치열하다. 2위로 추격전을 벌이고 있는 전인지는 “효주는 내가 ‘똑딱이’를 하던 시절에 이미 국가대표 상비군이었다. 생애 한 번뿐인 신인상에 대한 욕심은 있지만 조급하게 생각하진 않겠다. 내가 세운 목표만을 보고 뛰겠다”고 밝혔다.

전인지의 목표는 골프 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LPGA 투어 진출이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전인지는 “원래는 20대까지만 선수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요즘 생각이 바뀌었다. 투어를 뛰는 게 너무 즐거워할 수 있을 때까지 선수 생활을 하고 싶다. 50대 투어 프로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존경하는 선수에 대한 질문에는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전인지는 “특별히 닮고 싶은 선수는 없다. 모든 선수에게 배우고 싶은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건방질 수도 있지만 누구를 닮고 싶은 것보다 누군가의 롤 모델이 되고 싶다”고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전인지가 28일 경기도 성남에 있는 한 골프연습장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마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김정욱 기자)
◇전인지 선수는?

-생년월일: 1994년 8월 10일 전북 군산 출생

-신장 : 175cm

-소속 : 하이트진로

-학력 : 함평골프고등학교, 고려대학교

-프로입문 : 2012년 6월

-주요성적

2013년 두산 매치플레이 챔피언십 2위, 우리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 5위

2012년 무안CC컵 드림투어 12차전 우승 등 톱10 8회(상금랭킹 2위)

2011년 하이트진로 챔피언십 3위, 한화금융 클래식 37위, 에쓰오일 인비테이셔널 32위

2010년 강민구배 아마골프대회 3위, 에머슨퍼시픽그룹배 청소년골프대회 우승, 전국체전 공동 9위

2009년 제주도지사배 5위, 강민구배 아마골프대회 8위, 에머슨퍼시빅그룹배 청소년골프대회 우승, 일송배 아마골프대회 6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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