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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우 "21년 선수인생 비결은 긍정적 마음과 자신감"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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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무 기자I 2009.08.18 14:44:50
▲ 은퇴 기자회견을 갖는 한화 송진우. 사진=이석무 기자


[대전 = 이데일리 SPN 이석무 기자] 전격 은퇴를 선언한 '불사조' 송진우(43)가 21년 동안 정들었던 프로야구 마운드를 떠나는 솔직한 심경을 공식인터뷰 자리에서 밝혔다.
 
송진우는 18일 오후 대전 유성 리베라호텔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열심히 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고 내 자신에게 만족한다. 은퇴는 새로운 시작이라 생각한다. 선수가 아닌 지도자로서 선수 때만큼 열심히 해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다짐하겠다"고 밝혔다.
 
1989년 한화의 전신 빙그레 이글스에 입단한 송진우는 21시즌 동안 통산 최다승인 210승, 사상 첫 2000탈삼진 및 3000이닝 투구 등의 기록을 남기며 프로야구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43살의 나이에 야구선수 인생을 접게 된 송진우는 "한 팀에서 21년 동안 프로생활을 했다. 대학졸업 후 어린 나이에 프로에 들어와 45살까지 앞만 보고 달렸다. 많은 시간 흘러 은퇴를 결정했다. 프로선수로서 기록도 많이 세웠고 좋은 선배와 지도자도 만나 좋은 성적도 냈다. 의미있는 프로생활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한화 구단은 "송진우가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최고 투수인 점과 21년간의 팀 공헌도를 감안해 2010년부터 해외 연수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은퇴 경기 역시 올시즌 홈경기 가운데 최적의 시기를 정해 치르기로 했다.
 
다음은 송진우와의 일문일답.
 
- 21년간 선수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
 
"처음 신인으로 들어와서 몇 년간 꾸준히 잘 던지다가 1997,98년에 6승씩 밖에 못했다. 상대 타자들이 '치기 쉽다', '뻔히 공이 보인다'라고 말했을 때 힘들었다. 야구를 그만 둘 생각도 했다. 그런데 이듬해 교육리그에서 체인지업을 배웠다. 처음에는 체인지업에 자신이 없었는데 국내에서 타자와 상대해보니 조금씩 먹혀들어가더라. 그 때 교육리그를 간 것이 새로운 계기가 됐고 나이 먹어도 공을 잘 던질 수 있는 전환점이 됐다"
 
- 여러가지 기록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기록은 무엇인가
 
"1989년 프로에 들어와서 데뷔전에서 롯데를 상대로 완봉승을 거뒀다. 이후 21년 동안 데뷔전 완봉승 투수가 안나왔다. 완봉승 한 번이지만 기록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200승, 2000탈삼진, 3000이닝 등 기록을 세웠는데 어떻게 했는지 나도 모르겠다. 내가 생각해도 대단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3000이닝 투구가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오래 던져 좋은 기록도 있고 나쁜 기록도 있지만 이닝수가 많다는 것은 꾸준하게 마운드에서 공을 던졌다는 기록이다. 숫자상으로 20년 동안 150이닝을 던져야 가능하다.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20년 동안 꾸준히 던졌다는게 자랑스럽다. 좋은 선배들과 지도자에게 좋은 것을 많이 배웠다"
 
- 자신의 기록에 도전하는 후배 투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대학 졸업후 1988년에 프로에 와야 하는데 올림픽 때문에 1년 유보가 됐다. 고졸선수에 비해 5년 공백이 있는 것이었다. 지금 투수들은 체격면이나 스피드, 야구하는 조건면에서 많이 좋아졌다. 그런데 김수경도 잘 던지다가 주춤하는 것 같고 배영수도 한참 좋다가 갑작스런 수술로 후유증을 겪는 것 같다. 투수가 여러 시즌 동안 제 기량을 발휘하며 뛰는 것은 힘든 일이다.
 
젊은 선수들의 기량이 좋아졌지만 너무 몸을 사리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나를 비롯해 양준혁, 전준호 등 오래 한 선수들에 비해 몸을 사리는 것 같다. 자기 몸을 혹사하라는게 아니라 내 몸을 더 강하게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좋은 선수들이 많이 있는 만큼 당분간은 쉽게 깨지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내 기록이 깨지리라 생각한다"
 
- 언제 은퇴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는가
 
"언젠가 정리해야한다는 생각은 갖고 있었다. 올시즌을 시작했고 4월말 2군행 통보를 받았다. 2군에서 훈련을 하면서 이상하게 그 때 쯤부터 팀 성적이 안좋았다. 우리 팀 성적이 거의 바닥수준까지 내려가 안타까웠다. 성적이 안좋아지면서 세대교체 얘기가 나왔고 젊은 선수를 계속 기용됐지만 계속 결과는 안좋았다. 이후 정민철은 플레잉코치로 변신했고 다른 선수들도 웨이버공시가 됐다. 나도 그 후 100일쯤 지난 뒤 결심을 했다. 한화가 더 강한 팀으로 변신하기 위해 내가 정리를 하는게 좋다는 생각을 했다. 구단과 상의해 좋게 마무리를 하고 싶었다.
 
- 은퇴를 결심했을때 가족과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
 
"가족들은 큰 충격을 받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정리를 하는구나하는 반응이었다. 주변에서도 아쉽지만 좋은 선수생활을 했으니까 좋은 지도자가 되길 바란다고 반응을 보였다. 나도 제일 많은 시즌을 보낸 선수인만큼 정리할 때도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자회견을 하면서 은퇴를 한다는 것도 내게는 영광스럽다. 선수가 아닌 지도자로서 좋은 모습을 보일 것을 다짐한다"
 
- 초대 프로야구 선수협회장을 맡았는데 우여곡절도 많았다. 어떤 일이 있었고 과정을 이겨냈는가
 
"처음 있었던 일이라 쉽지는 않았다. 간단히 말한다면 선수들이 많이 도와줬다. 주위에서도 많은 지지를 해줘 결과는 좋게 나온 것 같다. 구단과 선수가 예전과 같은 불미스런 사이가 아니라 서로 도와주는 관계가 되면서 프로야구가 더 발전하는 것 같다. 많은 팬들이 야구장을 찾아준 덕분에 선수들이 힘내서 더 열심히 뛸 수 있었다. 프로야구가 좋은 스포츠로서 우리나라 국민들의 여가생활에 많은 도움될 것으로 생각한다"
 
- 21년 선수생활을 하면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나
 
"200승이나 3000이닝 기록할 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그런데 롯데와 한국시리즈를 할 당시 로마이어가 3루타를 쳤을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이후 장종훈이 외야플라이를 쳐 로마이어가 홈에 들어와 우승이 확정됐을때 전 선수들이 울었다. 늘 2위에 머물러 아쉬움이 많았는데 그 때 롯데에 재역전했을때 많이 울었다. 우승 시상대 위에 올랐을 때도 계속 눈물이 났다.
 
- 프로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지도자는 누구인가
 
"특별히 어떤 분을 지목하기가 쉽지 않지만 프로와서 제일 처음 맞이한 분이 김영덕 감독이었다. 그 당시 많은 것도 배웠고 지금도 통화하면서 좋은 말씀을 해주신다. 그 때 내가 혹사를 했다는 말도 들었고 그것이 오히려 마이너스가 돼 당시 MVP를 놓쳤다는 얘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 감독님으로부터 선수로서 좋은 걸 많이 배워서 여기까지 오게 됐다. 더 공부를 해야겠지만 선수를 믿고 선수단이 운동장에서 야구를 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지도자가 될 생각이다. 어떤 야구가 옳은지는 정답은 없을 것이다"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오래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내가 야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선수생활이 짧았다. 30대가 넘어서면 은퇴를 해서 지도자로 변신했다. 나도 대학에 온 뒤 7년 정도 선수생활을 생각했는데 그 세 배를 했다. 프로야구가 많이 발전했고 선수관리 등의 방법이 좋아졌다. 선수들도 노력을 많이 해 선수수명이 많이 늘어났다. 내가 오래 할 수 있었던 것은 타고난 몸도 있지만 노력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스케줄에 의한 훈련이 아니라 본인이 생각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특히 정신적으로 운동장에서 긍정적인 생각으로 즐기면서 했던 것이 중요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자신감이다. 항상 상대를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오래 선수생활을 할 수 있는 원인인 것 같다. 자신감은 그냥 붙는게 아니라 꾸준한 훈련과 노력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 프로에서 가장 까다로운 타자는 누구였나
 
"프로에 들어와서 늘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 자신감 덕분에 데뷔전 완봉승도 했다. 잘 치는 타자들이 나오면 승부욕이 더 타올랐다. 어려운 타자들에게 오히려 몸쪽 승부를 펼쳤다. 그런데 우리 팀에 있다가 다른 팀으로 간 선수들이 더 까다로웠다. 양용모나 김호, 김인호 같은 선수들에게는 10번 맞붙으면 거의 7-8할은 안타를 허용한 것 같다. 화려했던 선수보다 이들 선수들에게 많이 맞아 기억이 더 많이 남는다"
 
-한화가 다시 부활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2군에 있으면서 TV를 통해 게임을 봤다. 스포츠에서 이기는 것과 지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초반에는 의욕적으로 했지만 계속 지면서 사기가 떨어졌고 게임에 이기려는 의지가 부족했다. 그전에도 지면 지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할 만큼 몸에서 반응을 한다. 반대로 KIA의 경우는 이기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 선수들이 몇 게임 안남았는데 경기장을 찾는 많은 팬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 올해 성적이 내년에 더 잘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니까 올해를 본보기로 삼아 열심히 훈련한다면 훨씬 발전된 선수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등번호 21번을 달고 뛰었는데 21번을 쓰게 된 배경이 있는가. 21번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내가 어려서부터 21번을 달았고 유난히 좋아라했다. 아마시절 원래 21번을 달았는데 입단 당시 21번을 달고 있던 선배가 그만 두면서 21번을 달게 됐다. 월급날도 21일이고 아이들도 이 번호를 좋아한다. 21번 달고 야구를 할 때 잘 된 것 같다. 영구결번은 구단이 결정할 문제다"
 
- 어떤 선수로 기억에 남고 싶은가
 
"그동안 화려함 보다는 꾸준함으로 야구를 한 것 같다. 비록 20승은 못했지만 10승씩은 꾸준히 했다. 계속 팬들에게 꾸준한 선수로 기억에 남고 싶다. 특히 나이를 먹고 나선 40대 중년분들이 내게 많은 응원을 보내줬고 큰 힘이 됐다. 끝까지 나를 사랑해준 한화팬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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