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제공] 스크린 밖에서 돌파구를 찾아라.
'조이 럭 클럽'(1993) '스모크'(1995)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중국계 미국 감독 웨인 왕(Wang·59)은 오늘(17일)을 손꼽아 기다렸다. 자신의 신작 '네브라스카의 공주'(The Princess of Nebraska)를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www.youtube.com/ytscreeningroom)에서 무료 개봉하기 때문이다. '네브라스카…'는 활황기 중국 본토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건너가 결핍을 모르고 성장한 중국계 소녀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 약 20만달러(약 2억4000만원)로 만든 저예산 예술영화다.
경우는 좀 다르지만, 마이클 무어(Michael Moore·54)의 신작 '게으른 자의 반란'(Slacker Uprising)도 지난 9월 23일 인터넷(www.slackeruprising.com)에서 공개됐다. '미국 거주자'라는 조건이 붙기는 하지만, 역시 무료 개봉이다. 100분 분량의 이 다큐멘터리는 지난 2004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존 케리를 지지하며 60개 도시를 순회했던 무어 본인의 강연을 편집한 것. 그는 이 영화를 "합법적으로 무료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최초의 장편 상업영화"라고 의미부여했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영화를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점에서 웨인 왕의 경우와는 다르지만, 인터넷을 스크린의 대안으로 삼았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한국에서도 새로운 실험이 시도되고 있다. KT의 IPTV(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 서비스인 메가TV는 11월 중순 4편의 장편 영화를 자신의 채널을 통해 개봉한다. 아직 공중파 방송이 나오지 않는 IPTV 입장에서는 가입자 확보를 위한 마케팅 전략이기도 하지만, 극장을 잡지 못한 영화 입장에서는 새로운 개봉 창(窓)의 확보이기도 하다. 김동욱 감독의 '죽이고 싶은 남자', 이무영 감독의 '저스트 키딩'(가제), 이철하 감독의 '스토리 오브 와인', 황병국 감독의 '오프라인'(가제)이 편당 2억5000만원 정도의 저예산으로 제작되고 있다. KT 컨텐츠 사업 담당 이치형 상무는 "흥행 부담이 큰 극장용 상업영화에서 시도하지 못했던 다양한 소재와 장르를 실험해 보겠다는 것"이라고 이 프로젝트의 의미를 요약했다. 특히 '스토리 오브 와인'은 세 가지 이야기로 제작되는 작품. 시청자의 취향에 따라 결말 등을 선택해서 볼 수 있는 방식으로,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IPTV의 특성을 십분 활용한 영화다.
기본적으로 이런 실험이 시도되는 이유는 극장 개봉을 위해 필요한 비용이 천문학적이기 때문. 필름 프린트 한 벌을 뜨는 비용만 최소 200만원이다. 300개 관에서 개봉하면 필름 값만 6억원이 훌쩍 넘는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광고 비용을 더하면 순제작비에 육박하는 액수가 된다. 지난해 한국 상업영화 평균 P & A(프린트 & 광고) 비용은 16억7000만원(영화진흥위원회)이었다. 이런 가운데 인터넷 개봉, IPTV 개봉은 그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유명 감독의 실험적 시도에 그치고 있다. 무명이던 지난 2000년 '다찌마와리'를 인터넷에서 개봉해 큰 인기를 모았던 류승완 감독조차도 조금은 회의적이다. 그는 "웨인 왕의 2억원짜리 영화는 한국으로 치면 겨우 200만원의 제작비를 들인 초저예산 독립영화다. 대단히 영리한 선택"이라면서도 "가난한 무명 감독이 이런 인터넷 개봉을 한다고 흥행에 성공할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웨인 왕은 기대에 부풀어 있다. 그는 AP와의 인터뷰에서 "음악산업에 FM 라디오가 출현하면서 발생한 혁명적 변화처럼 극장 박스오피스 톱 10에만 집착하는 할리우드를 바꾸고 싶다"고 기염을 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