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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김용운 기자] “저렇게 노래하면 안 돼, 연습 다시 시켜야겠네.”
11월 마지막 주, 오는 12월 공연을 앞두고 연습이 한창인 한 뮤지컬의 연습실. 뮤지컬 무대에 오른 지 10여년 된 베테랑 배우 A는 아이돌 스타이자 뮤지컬 무대에 처음 오르는 B군을 보며 주변 스태프들과 짧은 한숨을 쉬었다. 옆에 있던 다른 뮤지컬 배우들도 A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 뮤지컬 도전 아이돌 스타 줄이어
아이돌 스타들이 영화, TV 드라마에 이어 뮤지컬 무대로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최근 슈퍼주니어의 려욱과 동해, 예성에 이어 규현도 뮤지컬 `삼총사`에 달타냥 역으로 출연하며 뮤지컬 배우로 이름을 올렸다. 천상지희 더 그레이스의 다나와 트렉스의 제이는 아이돌 그룹 무대보다 뮤지컬 무대에서 더 얼굴을 자주 볼 수 있게 됐다. 빅뱅의 승리도 뮤지컬 `소나기`를 통해 뮤지컬 배우의 경력을 남겼다.
동방신기 출신의 유노윤호는 뮤지컬 `궁`을 통해 무대에 올랐고 시아준수는 김준수라는 본명으로 뮤지컬 `모짜르트`를 통해 제16회 한국뮤지컬대상 시상식에서 신인남우상까지 받았다. SS501 출신 김형준은 그룹 해체 후 뮤지컬 `카페인`을 통해 첫 활동에 나섰다.
원조 아이돌이라 불리는 핑클 출신의 옥주현은 이미 `아이다`와 `시카고` 등의 뮤지컬에 주인공으로 출연하며 뮤지컬 배우로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S.E.S 출신 바다 또한 `브로드웨이42번가`와 `금발이 너무해` 등의 뮤지컬을 통해 뮤지컬계의 끊임없는 러브콜을 받고 있다.
이처럼 아이돌 스타 출신이나 현재 아이돌 그룹에 속해 있는 스타들이 뮤지컬 무대에 오르면서 이들에 대한 뮤지컬 관계자들의 `애증`이 교차하고 있다.
◇ 아이돌 스타 티켓파워 뮤지컬에도 파급
우선 뮤지컬계가 아이돌 스타를 사랑하는 이유는 이들이 침체한 공연계에 확실한 티켓파워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 아이돌 스타들은 충성도가 높은 팬클럽을 보유하고 있다. 아이돌 스타 팬클럽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스타가 뮤지컬에 출연하면 조직적인 사전예매에 나선다. 이로 인해 공연 제작 전 일정 부분의 티켓 판매가 보장되고 작품의 안정적인 제작이 가능해진다.
아이돌 스타 C가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뮤지컬 제작 관계자는 “C가 주인공인 회차는 공연 전 80~90%까지 사전예매를 기록하는 반면 뮤지컬 전문배우가 주인공인 회차는 예매율이 절반에도 못 미친다”고 밝혔다. 아이돌 스타 D가 조연으로 출연하는 뮤지컬 역시 D의 출연스케줄 여부를 묻는 문의가 가장 많이 온다고 한다. 또한 주말 공연이 아닌 경우에도 D가 출연하는 회차에는 관객이 몰리는 경향이 있다는 게 관계자의 말이다.
덕분에 아이돌 스타의 팬클럽에서 활동하던 팬들이 자연스럽게 뮤지컬 관객으로 흡수되는 효과가 발생한다는 것이 뮤지컬계의 분석이다. 즉 아이돌 스타의 뮤지컬계 진출은 제작비 사전 확보 및 관객층 확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 아이돌 스타 준비 부실, 뮤지컬계 갈등 원인
하지만 아이돌 스타들은 뮤지컬계 내부 갈등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먼저 다른 뮤지컬 배우보다 연습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지적받는다. 뮤지컬이 본업이 아니므로 스케줄에 있어 뮤지컬 연습이 뒷순위로 밀리는 경우가 잦다.
이로 인해 뮤지컬 출연진 사이에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연습이 부족해도 무대에 오르고 결국 작품의 질을 떨어뜨려서다. 아이돌 스타의 스케줄 때문에 전체 배우들의 스케줄을 조절해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실제로 몇몇 뮤지컬 제작 발표회 현장에서 아이돌 스타로부터 “연습이 부족해 다른 배우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듣기가 어렵지 않다.
또한 아이돌 스타들의 뮤지컬 경력에 비해 높은 출연료 역시 뮤지컬계 갈등의 불씨로 작용하고 있다. 뮤지컬 초보임에도 단순히 아이돌 스타라는 이유만으로 몇 년 차 경력의 베테랑 뮤지컬 배우보다 출연료가 높아 현장에서 위화감을 조성하고 있어서다. 이에 따라 뮤지컬 제작진과 배우들 사이에서 아이돌 스타가 대중의 우상이기보다 애증의 대상이 되고 있다.
대형 뮤지컬 기획사의 고위 관계자는 “아이돌 스타의 캐스팅 여부가 홍보에서부터 마케팅, 티켓팅까지 영향을 끼친다”며 “게다가 한류 팬을 가지고 있는 아이돌 스타는 외국 관객까지 흡수하는 위력을 지녔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아이돌 스타가 뮤지컬계의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며 “뮤지컬 시장이 더 확대되고 성숙해져서 스타 시스템이 아닌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처럼 작품 자체에 관객이 몰릴 때까지 아이돌 스타에 대한 뮤지컬계의 애증은 계속될 것 같다”고 토로했다.